와이브로, 日 전자산업처럼?…위기감 고조

일반입력 :2012/11/12 16:51    수정: 2012/11/13 09:18

정윤희 기자

“7년만에 100만명 모은 와이브로냐, 1년만에 700만명이 쓰는 LTE냐.”

와이브로 기술이 갈라파고스화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트렌드 적응에 실패해 몰락 중인 일본 전자산업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더 이상 ‘국산 기술’이라는 점에 집착하기 보다는 기술 진화에 발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추세다.

특히 와이브로(글로벌명 모바일 와이맥스) 기술의 글로벌 최고 이슈는 LTE-TDD로의 전환이다. 와이브로 보다 더욱 빠른 LTE 상용화로 기술 생존과 활성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 지면서 LTE-TDD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전 세계 곳곳에서 와이맥스 사업자들의 LTE-TDD 전환 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반면 국내 상황은 조금 다르다. 통신업계와 학계에서는 와이브로의 LTE-TDD 전환을 주장하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완강하다. “와이브로를 서비스하지 않겠다면 주파수를 반납하라”는 통에 통신사업자들로서는 와이브로 관련 발언을 내놓기조차 조심스럽다.

이원철 숭실대학교 교수는 “소니, 샤프, 닌텐도, 노키아, 코닥 등 글로벌 트렌드에 따라가지 못해 시장에서 도태되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며 “와이브로 역시 빠른 기술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LTE-TDD 전환에 대한) 정책적 결단과 기술력 기반 구축을 위한 생태계 조성 등이 빠른 시일 내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와이브로 엑소더스, 방통위만 미련

현재 국내 와이브로 가입자는 약 100만여명(KT 94만명, SK텔레콤 6만7천명)에 불과하다. 서비스가 시작된 지 7년만의 성적이다. KT가 올해 들어서만 기존 와이브로 표준요금제 데이터 제공량을 늘리는가 하면, 와이브로 이용자에게 유클라우드 50GB를 제공하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난 2010년까지는 증가하던 와이브로 수출액도 지난해부터는 방통위가 아예 수치를 공개치 않고 있다.

해외서는 이미 LTE-TDD로의 전환 물결이 거세다. 와이맥스 글로벌 1위 사업자 미국 클리어와이어는 지난해 8월, 3위 사업자 러시아 요타는 지난 2010년 5월 LTE 전환을 발표했다. 또 전 세계 이동통신 1위 사업자(가입자 기준) 차이나모바일과 4위 사업자 인도 바르티 역시 LTE-TDD를 도입할 예정이다. 인텔, 삼성 등이 주축이 된 와이맥스 포럼 회원사 숫자도 6년 만에 절반 이하로 줄었다. (2005년 480개사→2011년 186개사)

해외 조사기관들은 오는 2015년 와이맥스는 글로벌 시장에서 약 10% 내외의 가입자를 확보하는데 그치는 반면, LTE-TDD는 약 30%까지 증가할 것이란 전망들을 앞 다퉈 내놨다.

유일하게 미련을 못 버린 곳이 방통위다. 방통위는 지난 3월 KT와 SK텔레콤에 와이브로 주파수 재할당을 의결해 향후 7년 동안 서비스를 계속하게 했다. 당시 양사에 할당 조건을 걸며 오는 2017년까지 와이브로 가입자를 340만명까지 끌어올리라는 조건도 내놨다.

이계철 방통위원장은 지난 7월 KT의 와이브로 LTE-TDD 전환 건의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와이브로 사업을 하기 싫으면 주파수와 사업권을 반납하면 될 것 아닌가”라고 못 박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와이맥스 포럼은 이달 초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4G 월드 컨퍼런스’에서 LTE-TDD와의 연동을 골자로 하는 ‘와이맥스 어드밴스드 로드맵’을 내놨다. 해당 로드맵은 표준화 단체 IEEE를 통해 내년 ITU 총회에서 정식 표준화될 전망이다.

이원철 교수는 “지난달 불가리아에서 열린 와이맥스 포럼 멤버회의에서도 차세대 와이브로를 LTE와 일치시키기로 하는 아젠다를 채택했다”며 “향후 와이브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LTE-TDD 전환 방안은

국내서는 와이브로의 LTE-TDD 전환에 대해 제4이동통신을 통한 방안과 기존 사업자인 KT와 SK텔레콤의 주파수 용도변경을 허용하자는 방안 두 가지가 거론되고 있다.

한국모바일인터넷(KMI)이 와이브로-어드밴스드 기술을 내세워 제4이통 사업권 획득에 도전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KMI는 지난달 12일 방통위에 기간통신사업(휴대인터넷, 와이브로) 허가신청을 접수했다.

업계에서는 KMI가 사업권 획득 이후 LTE-TDD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로아컨설팅은 “지금처럼 전용 단말기 확보가 요원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와이브로에서 진화한 와이브로-어드밴스드를 제4이동통신의 기반 기술로 선택한다 하더라도 서비스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키도 했다.

KT는 방통위에 주파수 용도변경 건의 의사를 내비친 상태다. 표현명 KT 사장은 지난 7월 와이브로의 TD-LTE 추진을 전환해야 한다는 발언을 내놨다. 그는 와이브로 사업의 걸림돌로 장비 수급과 단말기 문제를 들었다.

당시 표 사장은 “와이브로는 KT 등 사업자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활성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며 “글로벌 트렌드를 회피하지 않고 방통위가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줄 시점이 됐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김진영 로아컨설팅 대표는 “전국망은 기존 LTE-FDD로, 데이터 트래픽이 많이 발생하는 도심 지역은 LTE-TDD를 활용해 데이터 트래픽을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기존 와이브로 주파수 대역의 재활용과 기존 3G용으로 분배된 주파수 대역의 LTE-TDD용으로의 활용 가능성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원철 교수 역시 “우리나라는 LTE 관련 원천기술 보유율 세계 2위, 와이브로 관련 특허 보유율이 세계 1위인 기술 강국(특허청 자료)”이라며 “글로벌 LTE 시장이 개화 중인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강점이 있는 TDD 기술력을 LTE 분야에 접목해 수출 경쟁력 확보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LTE-TDD란?

4G LTE는 방식에 따라 LTE-FDD와 LTE-TDD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LTE 서비스 국가의 90%가 도입한 것이 LTE-FDD로 주파수 분할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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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분할 방식의 LTE-TDD는 최근 모바일 데이터 트래픽 폭증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하나의 주파수를 시간 단위로 나눠 송수신을 모두 처리하기 때문에 데이터 트래픽 처리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와이브로, 와이맥스는 같은 시분할 방식을 쓰기 때문에 LTE-TDD로의 전환이 쉽다. 기존 와이브로 장비와 호환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LTE-TDD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중국 기술’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중국 기술인 TD-SCDMA와 달리 LTE-TDD는 처음부터 3GPP 표준화 작업의 일환으로 결정된 기술이다. TD-LTE라는 용어도 중국에서 TD-SCDMA와 유사하게 자국 기술인양 만든 마케팅 용어에 불과하다. 다만 중국 정부를 비롯, 차이나모바일 등은 LTE-TDD 등에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