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32년 헤드폰 장인 "음질이란..."

일반입력 :2012/11/02 09:02    수정: 2012/11/02 15:10

봉성창 기자

이어폰이나 헤드폰 만큼 가격의 폭이 넓은 제품도 찾기 어렵다. 저렴하게는 1천원부터 비싸게는 수천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가격도 천차만별이지만 기능적인 차이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볼륨조절과 같은 간단한 부가 기능과 내구성 및 완성도 등을 따져볼 수 있지만 이 역시 일정 수준만 되면 대동소이하다. 결국 남은 차이는 단 한가지 뿐이다. 바로 음질이다.

음질이란 무엇인가? 누구라도 이 물음에 쉽게 답하기 어렵다. 각종 음향기기를 살펴보면서 저마다 고유의 음질을 객관적인 글로 표현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마치 와인이나 초밥의 맛을 설명하는 것처럼 주관적이면서도 추상적인 표현 만이 가능할 뿐이다.

공간감이나 해상력, 균형감과 같은 그나마 객관적인 형태를 취한 기준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을 평가하는 것 역시 인간의 귀다. 그리고 그 귀는 사람에 따라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소니에서 32년간 이어폰 및 헤드폰만을 만들어 온 코지 나게노 소니 수석 엔지니어를 지난 16일 코엑스 오크우드 호텔에서 만났다. 이 분야에서는 장인이자 ‘마스터’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소니 2대 이형(耳形, 귀모양) 장인이자, 우리나라에서는 명기로 유명한 MDR-E888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경건하면서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그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

“과연 음질이란 무엇입니까?”

■ 좋은 음질은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가 내린 가르침은 유연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느끼는 방식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콘서트홀의 느낌을 좋아하고, 또 다른 사람은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느낌을 좋아합니다. 이러한 주관적인 취향을 최대한 많이 아울러 즐겁게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좋은 음질입니다.”

흔히 음질이라는 표현 대신 음색이라는 말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이 가진 저마다 소리의 개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음질은 이러한 음색을 뛰어넘어 하나의 이어폰 혹은 헤드폰으로 누구나 만족할만한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과연 좋은 이어폰 혹은 헤드폰은 무엇일까?

“음악 제작자들이나 작곡가 혹은 엔지니어들은 무엇보다 음악을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음악을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헤드폰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이들이 의도한 느낌을 듣는 사람에게 동일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좋은 헤드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단 1대의 모니터 스피커를 통해 결과물을 확인하게 되는데, 그 소리를 그대로 헤드폰으로 옮겨오는 것이 이어폰이나 헤드폰이 가진 궁극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비유하자면 배 위에서 잡은 싱싱한 횟감을 그대로 멀리 떨어진 도시의 횟집에서도 그대로 맛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란 이야기다.

■헤드폰, 초심으로 돌아가다

소니는 1979년 최초로 아웃도어 헤드폰을 세상에 선보였다. 당시 최초 모델이 바로 MDR-3다. 그전까지 헤드폰은 쓰고 다니기에는 지나치게 무거웠다. 1979년은 소니가 워크맨을 내놓은 해이기도 하다. 소니는 워크맨과 궁합을 이룰 수 있는 제품 생산을 원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MDR-3이다.

그리고 32년이 흐른 지금 소니는 MDR-1R이라는 새로운 헤드폰을 세상에 내놨다. 이 제품은 헤드폰 마니아들 사이에서 상당히 큰 화제가 됐다. 기존 100만원에 가까운 고가 헤드폰에 사용된 부품을 그대로 쓰면서도 가격을 30만원 대로 낮췄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이 제품을 들어본 사람들의 평가도 상당히 후한 편이다.

MDR-1R 개발을 진두지휘한 코지 나게노 수석 엔지니어의 각오도 남다르다. 당장 모델명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그동안 제품 이름에 두 자릿수 혹은 세 자릿수의 큰 숫자를 붙여온 써온 소니가 다시 시작의 의미인 ‘1’을 붙였다.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입니다. 새롭게 오디오 역사를 쓰겠다는 각오이기도 합니다. 지난 30년 동안 음악은 많이 변했어요. 템포가 더 빨려졌고 저음이 보다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헤드폰은 여전히 30년 전 음악에 맞춰져 있습니다. MDR-1R은 이러한 변화에 맞춰 새로운 표준을 정립했습니다.”

이러한 설명은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실제로 최근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헤드폰은 저음이 강조된 제품이다. 대표적으로 비츠바이닥터드레가 있다. 그러나 MDR-1R은 단순히 저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저음과 고음의 균형은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 중심 축을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음악의 템포가 빨라졌다는 점에서도 MDR-1R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진동판 소재로 액정 폴리머 필름이 사용됐다. 액정폴리머 필름은 성형이 어렵고 가격이 비싸 그동안 고가 제품에만 사용돼 왔다. 공기가 나가는 구멍도 신경써 응답성을 더욱 높였다.

“액정폴리머필름은 전달되는 전기 신호에만 정확하고 빠르게 반응하고 쓸데없는 진동은 최소화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빠른 템포의 음악도 정확히 표현하고 쓸데없는 미세한 잔향은 지워줍니다.”

이외에도 코지 나게노 수석 엔지니어는 MDR-1R을 만들면서 무엇보다 가볍고 튼튼하게 만드는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헤드폰은 이어폰에 비해 거추장스럽고 무거워서 휴대가 불편하다는 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 시대에 맞게 헤드폰도 변해야 산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영상은 그야말로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다. 아바타로 알려진 3D입체는 물론 풀HD를 넘어 4K와 같은 초고해상도도 조만간 대중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귀로 듣는 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옛 것이 좋다며 일부러 진공관 앰프나 레코드를 고집하는 음악 애호가도 적잖다.

“오디오 테크놀로지는 지금도 계속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디지털과 어쿠스틱의 융합 그리고 첨단 녹음 기술 및 사운드 등으로 인해 더욱 새로운 음악이 탄생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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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더 자연스럽고 생생한 음악을 보다 간편하게 들을 수 있게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소니가 추구하는 것 방향도 이와 같다.

“당대 추구되는 음악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 그것이 헤드폰의 본질이자 시대가 원하는 제품이 될 것입니다. MDR-1R부터 이러한 변화는 시작됐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