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가 차세대 오피스부터 HWP 형식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무용 문서 파일을 읽고 쓸 수 있게 지원한다. 오랫동안 자사 오피스 제품의 자체 파일 포맷에 집중해온 MS가 태도를 바꿔 경쟁사와 오픈소스 진영의 문서 표준을 끌어안는 모습이다.
주초 MS는 오피스 다음버전 공식 블로그 '오피스넥스트'에 현재 개발중인 오피스2013(코드명 '오피스15') 버전 워드 프로그램이 '스트릭트 오픈XML'과 '오픈다큐먼트포맷(ODF) 1.2' 형식을 쓸 수 있고 어도비 PDF파일 읽기와 편집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는 비즈니스 환경에 문서 기능을 위해 쓰이는 거의 모든 파일을 오피스 프로그램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회사는 이처럼 차기 오피스가 위 3가지 문서 형식을 다루는 범위를 늘림으로써 산업계 전반에 널리 쓰이는 표준 문서형식을 두루 지원할 전망이다. 차기 제품 사용자들은 기존 워드(DOC), 엑셀(XLS), 파워포인트(PPT) 등 오피스 포맷이나 주로 국내 정부 조직과 관공서, 학교를 포함한 공공기관에 한정돼 통용되는 한글과컴퓨터의 한컴오피스 한글 포맷(HWP)이 아닌 산업표준 파일 형식으로 문서를 저장해 MS 제품을 쓰지 않거나 못하는 환경의 사람들에게도 '상호운용성'을 보장할 수 있게 된다.
MS 차세대 오피스 파일포맷 표준 논의에 참여한 짐 태처 MS 오피스 표준 수석 프로그램 매니저 리드는 MS는 앞으로도 사용자들에게 파일 표준 형식과 상호운용성 측면의 선택권과 유연성을 제공해갈 것이라며 MS 오피스는 이제 ISO/IEC 29500(스트릭트 오픈XML과 트랜지셔널 오픈XML), ISO32000(PDF), 오아시스 ODF 1.2를 포함한 대다수 문서규격 표준으로 파일을 온전히 읽고 쓰는 기능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ODF는 썬을 인수한 오라클이 아파치소프트웨어재단(ASF)에 넘긴 오픈오피스나 그 분기 프로젝트인 리브레오피스 등에서 기본으로 다루는 개방형 표준 전자문서 형식이다. 오피스2007과 오피스2010이 앞서 ODF 1.1 버전을 읽고 고치고 저장할 수 있었는데 차기작은 ODF 1.2 버전을 지원할 예정이다.
또 PDF는 어도비 아크로뱃 프로그램으로 제작되고 여러 산업분야에서 출판용 문서 저장 형식으로 널리 쓰이는 파일포맷이다. 오피스2007과 오피스2010까지는 외부 PDF 문서를 '저장'만 할 수 있었는데 새 오피스에선 파일을 읽어들이고 '편집'까지 할 수 있다.
오픈XML은 오피스2007과 2010에서 덜 엄격한 '트랜지셔널(Transitional) 오픈XML' 방식으로 열고 편집하고 기록될 수 있었다. 오피스2010부터 이보다 표준 저장방식이 엄격한 '스트릭트(Strict) 오픈XML' 문서를 열고 편집할 수 있었는데 저장할 땐 트랜지셔널 방식만 가능했다. 차세대 오피스는 저장할 때도 스트릭트 방식을 지정할 수 있게 된다.
■차세대 오피스, 개방형 표준 적극 지원…경쟁사 호재?
즉 오피스2013부터는 프로그램이 다루는 어떤 문서든지 그 형식 그대로 편집하고 저장할 수 있게 된다. MS 프로그램 사용자들에게 작업 결과물을 오피스 프로그램에 호환되는 형식으로 강제하지 않는단 뜻이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전까지 MS가 자체 오피스로 생성되는 파일 저장방식을 바꿔가며 독점수준의 시장 장악력을 발휘하던 전략에 일대 변화를 예고한 셈이다.
클라우드 기반 생산성도구를 제공하는 구글이나 한글과컴퓨터 또는 오픈오피스 기반 IBM 로터스 심포니와 어도비 아크로뱃 등 설치형 오피스 문서 솔루션 업체들에게 호재로 비친다. 이제껏 시장점유율이 높은 오피스 프로그램의 문서 형식에 대한 호환성을 지원하는데 투입해온 자원을 달리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번 MS의 새로운 행보는 과거 국제문서표준형식을 놓고 치렀던 기술업계의 거대 전쟁사를 다시 쓰는 한 걸음이다. 한때 오픈XML 형식 자체를 MS가 자사에 유리한 쪽으로 통제할 욕심을 부렸던 이력 때문이다.
미국 보스턴의 기술산업계 전문로펌 '게스머 업디그로브' 설립파트너인 앤드류 앤디 업디그로브는 MS의 계획을 '조심스러운 발표'라 묘사하면서 이는 MS와 IBM, 구글과 오라클 등 몇몇 거대 기술기업들간 7년에 걸쳐 벌어진 오래된 싸움을 떠올리게 한다고 언급했다.
■MS가 만든 산업표준 문서포맷 '오픈XML'의 한계
그가 지적한 사례는 오픈소스 진영과 독점SW 회사들이 세계 수백만명의 관심을 끌면서 기술 표준의 중요성을 일깨우곤 하는 지적재산관련 분쟁가운데 상징적인 것들로 묘사된다. 특히 오아시스(OASIS)가 만들고 ISO/IEC에 채택된 오픈소스 포맷 ODF와, MS가 만들고 비영리표준화기구 ECMA에 공동개발을 유도한 뒤 ISO/IEC에 채택된 오픈XML도 그 지지기반이 오픈소스와 독점SW기업으로 갈린다는 설명이다.
업디그로브는 (MS 입장에서) 일이 잘 풀려 단 한번의 국제적 싸움으로 오픈XML이 국제표준 문서형식으로 채택됐지만 이는 어쩌면 표준화 위원회 모임이 진행되는 곳 바깥에서 가두시위를 벌이는 공개 항의 군중을 만들어낸 셈일 수도 있다고 비유했다.
이를 전한 미국 지디넷은 결국 업계선 오픈소스진영의 ODF와 MS의 오픈XML 둘다 산업표준으로 인식돼 ODF가 리브레오피스와 오픈오피스같은 오픈소스기반 생산성SW스위트 제품에서 기본 문서 형식으로 쓰인다며 얄궂게도 이는 MS로하여금 6년넘게 4천쪽 이상 분량인 오픈XML 규격 문서를 완전히 지원하면서 ODF와 PDF를 무시하게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업디그로브는 MS가 오픈XML을 세계표준으로 채택시키려던 엄청난 노력을 은밀히 기울여왔지만 (세계표준 채택 이후에도) 오피스2007 이후에도 문서를 열고 편집하면서 저장시켜주진 않는 등 그 규격을 완전히 구현하진 않았다며 오피스2010에서도 스트릭트 오픈XML이라는 새 형식을 만들어 추가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문서포맷 영역의 독점SW vs. 오픈소스SW 전쟁 종지부
이어 이는 다소 당황스러운 일인데 왜냐면 당시 MS가 ISO/IEC에 제2의 문서 표준을 제시한 이유가운데 하나가 100경(10억 제곱)건에 달하는 기존 오피스 문서를 아울러 다루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라며 결국 ISO/IEC에 제출된 오픈XML 구현기술들은 이런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신기하게도 MS가 오피스 프로그램에서 지원해온 포맷을 더 많이 활용토록 지원한다는 소식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께 전자문서 표준 포맷을 둘러싼 이슈가 현재 모바일 관련 기술특허나 클라우드 구현 이념논쟁 만큼이나 뜨겁게 달아올랐던 것과 상반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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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서 상호운용성이나 벤더 중립성은 일상생활이나 업무환경에 종이문서가 사라져가는 지금이 이전보다 훨씬 더 중요해진 상황이다. 문자 그대로 인간의 지식들이 모두 전자적 저장공간에 담기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만일 지금보다 문서를 쉽게 주고받으며 필요할 때 곧 꺼내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다면 지식은 모든 시대에 걸쳐 통용될 것이다. 이는 공통 적용 가능한 문서 형식의 포괄성이 없다면 실현될 수 없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