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쓰면 열두권쯤 되는 삶의 질곡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자서전을 쓰지는 못한다. 출판엔 돈이 든다. 돈이 있다쳐도 출판사 문턱은 높다. 어느 정도 알만한 사람이어야 자신의 얘기를 세상에 펴내는 게 허락됐다.
온라인은 인간의 말하고 싶은 욕구에 불을 댕겼다. PC만 있으면, 인터넷만 연결되면 누구나 세상에 내 이야기를 꺼낸다. 그래도 아직 장벽은 있다. 텍스트 중심의 블로그는 잘 짜여진 스토리 있는 정보를 요구했다. 블로거, 그것도 '파워블로거'가 되는 일은 어려웠다.
장벽은 모바일 시대에 와 허물어졌다. 140자 단문 서비스인 트위터의 등장은 긴 글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루의 흔적같은 소소한 내용부터 촌철살인 메시지까지 다양한 의견이 공유된다. 페이스북을 통해선 친구끼리 정보를 나누고, 핀터레스트로는 이미지를 돌려본다. 글, 이미지, 동영상 등 모든 콘텐츠들이 개인의 역사를 담아 세상에 공개하는 소통창구가 됐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개인의 역사를 쌓는데 혁신적인 도구다. 예컨대 에버노트는 컴퓨터와 휴대기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지' 기록하고 활용할 수 있는 앱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3천만명 이상이 쓰고 있는데 이 중 4%가 우리나라 사용자다. 이들은 서로 서로 앱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즐거움을 찾는다. 새로운 기술이 가져다 준 문화다. 일상의 혁신을 일구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일상의 혁신'
김해 외국어고등학교의 박승훈 교사는 에버노트의 '열혈' 이용자다. 수업시간에 에버노트를 쓰임새 있게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세를 탔다.
지난해 7월부터 에버노트를 본격적으로 사용했어요. 그런데 자꾸 쓰다보니 수업자료를 관리하거나 수업안 작성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이번 학기부터는 거의 모든 자료를 에버노트로 작성하고 저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수업을 준비하면서 에버노트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기도 하고 차시별 수업안을 작성하기도 한다.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한 곳에 모아두니 출력도 간편하고 교실에 들어가선 에버노트 링크만 열면 되니 번거로움을 덜었다. 에버노트를 쓰면서부터 USB는 백업용으로만 사용한다.
특히 수업 시간에 썼던 자료들을 학생들이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공유하고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만들어 낸 결과물들을 취합해 에버노트에 담아놓는 것은 그가 주로 하는 일이다. 곧 진행할 수행평가에선 아이들에게 에버노트를 통해 과제를 공유토록 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도 실시간으로 제공할 생각이다.
학생들의 저작물 대부분이 채점되고 버려지죠. 저는 이것들이 꼭 대학진학을 위한 스펙이 되진 못하더라도 개개인의 역사라는 관점에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입시만을 위해 내달리는 학생들에게 지금 하고 있는 수업이 얼마나 소중한 기억이 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어요.
이런 이유로 그는 원하는 학생 10명 가량을 모아서 에버노트 파일럿 팀도 운영 중이다. 점심시간 등을 활용해 비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학생들이 에버노트에 기반해 계획적으로 학교생활을 하도록 지도한다.
저는 학생들이 훌륭한 평생학습자로서 자신이 배우고 익힌 바를 제대로 정리해 나가길 바랍니다. 특히나 지금의 학생들은 전세대와는 달리 더욱 많은 ‘디지털 족적’을 남기게 되는데 이런 것들을 잘 기록해두면 훌륭한 포트폴리오가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들 뿐 아니라 동료 교사에게도 틈나는 대로 에버노트 사용이 가져다주는 편리함이나 유익함을 전한다. 수업목표 설정, 자료 수집 및 정리, 수업활동 구성, 수업안 작성, 수업자료 제작 과정이 에버노트를 쓰면서 한결 효율적으로 변했다는 설명이다.
물론 보수적인 학교 현장에서 당장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쯤은 그도 잘 알고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휴대폰이나 컴퓨터 사용이 제한되는 데다 클라우드 서비스나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수업을 모든 교사가 단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에버노트를 '설파'하려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소통'이다.
수업의 중심은 학생과 교사의 상호작용이죠. 이들 간 소통을 더 원활하고 더 매끈하게 하기 위해선 반드시 에버노트와 같은 새로운 기술이 필요합니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는 당연히 시간이 좀 필요하겠죠. 그렇지만 고무적이게도 학교는 꾸준히 변하고 있습니다.
■SNS, 이젠 '집단지성'이다
페이스북의 힘은 '끼리끼리 논다'에 있어요. SNS 친구를 잘 살펴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는 거죠. 최근 연구결과를 보면 친구끼리는 '비만'도 공유한답니다. SNS도 유사한 특징이 나타나요. 예컨대 IT를 좋아하는 사람은 IT인들끼리,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은 또 그들끼리 친구 관계를 확산해 가죠.
강학주 이투커뮤니케이션즈 대표㊴는 SNS 박사다. 지난 2008년 SNS전문업체인 '이스토리랩'을 창업하곤 한국소셜네트워크협회장을 맡았다. 개발자 출신인 그는 1997년엔 데이터베이스(DB) 전문업체로 인터넷 창업대열에 합류했다.
강연도 꾸준히 나간다. 그의 SNS 이야기를 원하는 청중이 많아서다. 그는 마이크를 잡으면 항상 '협업'을 논한다. SNS에 능숙한 세대에 '소통'만 강조하는 건 이미 한물간 이야기다. SNS 이용자들은 이미 자기도 모르게 남들과 협업해 지식과 감성을 네트워크에 쌓는다.
SNS가 폭발적으로 성장한데는 '관심 공유'란 배경이 있다. 오프라인에서 만난 친구들은 나와 취미가 같을 확률이 비교적 적다. 온라인은 다르다. 내가 원하는 키워드를 검색하거나 링크를 타고 친구를 맺는다. SNS 활동에 적극적일수록 관련 정보를 가진 사람도 많다. 친구가 추천하는 정보는 포털사이트의 지식 검색보다 신뢰도도 높다.
그러나 SNS가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강 대표가 처음 이스토리랩을 설립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SNS를 낯설어 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투자자를 찾긴 힘들었다. 대기업에선 아이디어는 좋은데, 너무 이상적이다. 이게 과연 실현 가능하냐는 답변만 돌아왔다.
상황은 최근와서야 달라졌다. 국내서도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유명세를 타고 핀터레스트에 대한 관심이 커진 덕이다. 그런데 강학주 대표는 억울했다. 따져보면 아이디어는 원조인데 사람들은 외산 SNS에만 관심을 갖는다. 뭔가 제대로 된 국산 SNS를 만들어보자는 것도 그래서 나온 각오다.
처음엔 많이 답답했죠. SNS 플랫폼이 뭔지, 투자자들한테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사람들이 이제 '아, 이게 어떤 서비스구나'라는걸 알아요. 우리가 먼저 핀터레스트를 만들 수 있었는데, 시기적으론 아쉽지만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 승부할 겁니다.
강 대표가 보는 SNS의 핵심은 소통보단 '협업'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SNS에 자기 '깔대기'를 댄다. 어제 본 영화, 오늘 만난 사람 이야기는 모두 내가 뭘 했는지, 어떤 사람인지 '자랑'하는 활동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할수록 쓸만한 정보를 SNS에 털어낸다. 이렇게 생긴 정보들은 쌓여 집단지성이 된다.
때문에 그는 SNS를 통해 소통되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공유하는데 '링크(URL)'를 꼽는다. 이달 중 새단장해 공개하는 '마이픽업'은 링크에 집중한 SNS다. 사람들이 그간 블로그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 온갖 온라인 네트워크에 만들어 놓은 결과물을 링크로 공유하게 한다는 게 핵심이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을 링크로 공유하는 건 또 다른 이름의 집단지성이다.
강 대표는 미래를 낙관한다. 한국판 SNS 미래에 반신반의하는 목소리는, 그 가능성을 이미 절반쯤 덮어놓고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베타 서비스 때, 사용자 50명 만으로 트래픽이 유명 포털을 넘어서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이미 사람들은 새로운 서비스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습니다.
SNS 혁신은 이미 사람들의 습관을 바꿨다. SNS는 모든 이들의 자서전이자, 거대한 백과사전이다.
[연재 순서]
①소통, 21세기 천재들의 키워드
②게임, 보더리스를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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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일상의 혁신, 습관을 바꾸다
④숨어 있던 고수들, 세상에 나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