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로 예술과 과학, 이 두 가지가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위대한 예술가이자 과학자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채석장에서 돌을 자르는 방법에 대해 엄청난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아는 가장 뛰어난 컴퓨터 과학자들은 모두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 1999, 타임
스티브 잡스의 말은 옳았다. 역사상 유명한 어느 예술가도 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인체 비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아는 다빈치의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과학자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과학적 발견이 순간의 예술적 영감에서 탄생했다.
다빈치의 시대는 갔다. 그러나 21세기의 과학과 예술의 관계는 더 직접적이고 긴밀해졌다. 아니, 경계 자체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때때로 웹페이지는 캔버스가 되고 휴대폰은 붓이 된다. 그간 예술가들이 기술을 창작의 도구로 사용했다면 이젠 기술 그 자체가 예술이 되고 있는 세상이다.
우리는 이를 ‘통섭’이라고 부른다. 통섭은 몇 해전부터 기술과 예술, 인문과 과학, 동양과 서양을 합종연횡하는 화두로 떠올랐다.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시도도 계속된다. 그리고 이는 우리의 일상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우리의 사업에서 혼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이제는 팀을 만들어야 합니다. 당신은 팀의 업무에 대해서 성실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 1995, 컴퓨터 월드 스미스 소니언 인터뷰 中
번뜩이는 천재 한 명의 아이디어로 세상을 뒤집는 시대는 갔다.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아이폰도 기술혁신의 귀재 잡스 혼자서 만든 것은 아니다. 아이폰을 비롯한 애플의 히트작들은 디자인 신이라 불리는 조너선 아이브, 관리의 달인 팀 쿡 등 ‘잡스의 사람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그들의 소통이 전세계 사람들의 소통을 이끌었다.
통섭, 그것은 곧 협업이자 소통이다. 심미안의 골방에 갇혀 있던 예술가들도 협업과 소통을 고민하게 됐다. 지난 2006년 7월, 런던의 작가 폴 피셔가 시작한 ‘100만 걸작 프로젝트’는 1백만명이 그린 그림을 온라인에 모아 세계서 가장 큰 작품을 만드는 시도다.
일종의 온라인 모자이크인 셈인데 현재까지 174개국 2만9천여명의 사람이 참여했다. 사람들은 주변 그림의 주인과 거리낌없이 친구가 되거나 이들의 프로필을 쉽게 검색할 수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이들의 그림을 공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웹을 넘어 모바일의 대두는 이 같은 소통의 속도를 더 빠르게 했다. 아이폰은 단순히 잘 만든 휴대폰이라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아이폰은 애플리케이션을, 애플리케이션은 앱스토어를, 앱스토어는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를 불러왔다.
일상의 커뮤니케이션 양식은 더 폭넓어졌다. 소설가들은 이제 앱을 통해 스스로 출판을 하고 출판만화 작가들도 디지털 어법을 익힌다. 사람들은 블로그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이를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 퍼나른다. 또 페이스북을 통해 지인 그룹을 만들고 핀터레스트를 통해 이미지를 재생산한다. 콘텐츠 생산과 소비의 핵심으로 소통이 떠오른 것이다.
변화의 기저에는 ‘기술’이 있다. 세계를 단일 네트워크로 묶어내고 언제나 내 얘기를 털어 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은 기술의 진보 없인 불가능한 일이다. 그 저변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가 깔려 있다. 문화를 빼고 애플, 페이스북의 성공을 논할 수는 없다. 본지는 21세기 기술과 예술의 결합과 소통의 변화상에 대해 4회에 걸쳐 다루려고 한다.
[연재 순서]
①소통, 21세기 천재들의 키워드
②게임, 보더리스를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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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일상의 혁신, 습관을 바꾸다
④숨어 있던 고수들, 세상에 나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