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이 HP 내부문건을 공개하자, HP도 오라클 내부문서를 공개하며 맞불을 놨다. 오라클이 HP의 유닉스 서버를 시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편법을 쓰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모습이다. 인텔 아이태니엄 CPU를 둘러싼 두 회사의 대결은 여론전으로 번지고 있다.
HP는 지난 16일 오라클 내부 메일과 인스턴트메시징(IMS) 등 7건의 문서를 공개하고 역공을 가했다. HP가 공개한 문서 7건은 3종으로 구분된다. 인텔의 아이태니엄 CPU 개발에 대한 확고한 의지, 오라클 내부의 썬에 대한 평가, HP 유닉스의 시장 퇴출을 위한 오랜 시간에 걸친 오라클의 치밀한 계획성 등이다.
오라클이 지난해 3월 인텔 아이태니엄 CPU에 대한 SW개발 중단을 발표한 이래 HP와 오라클은 1년여 기간동안 법정소송과 언쟁을 벌여왔다. 아이태니엄 CPU는 HP의 유닉스 서버인 슈퍼돔2, 인테그리티 등에 채택되는 프로세서다.
오라클은 작년 3월 아이태니엄 CPU 차세대 모델부터 SW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오라클 데이터베이스(DB) 12c, 퓨전미들웨어 12g, 마이SQL 5.6, 비즈니스인텔리전스 12g, 피플소프트 9.2 등을 아이태니엄 기반 유닉스 서버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오라클은 인텔이 아이태니엄보다 x86인 제온에 더 집중하기로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MS와 레드햇도 이미 아이태니엄 지원을 중단한 지 오래란 점도 들었다.
HP는 오라클의 발표에 대해 썬 하드웨어 매출을 끌어올리고 HP를 유닉스 시장에서 몰아내기 위한 편법이라고 비난해왔다. 또한 오라클이 HP 유닉스서버에 대해 SW지원을 계속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를 어긴 것이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HP는 공개한 문건을 통해 오라클이 썬 하드웨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어떤 목적으로 아이태니엄 CPU 지원중단을 발표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인텔이 아이태니엄 CPU 개발에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고, 유닉스 사업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논의하는 내용을 담은 HP 임원 메일들도 함께 제시했다.
■인텔은 아이태니엄을 포기하지 않았다
첫번째 문서는 2011년 3월 16일 HP의 로레인 바틀렛 부사장이 직원 전체에게 보낸 메일이다. 이 문서는 HP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HP가 인텔에 '키네틱'이란 프로젝트를 소개한 것으로 나온다. 메일은 키네틱의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진 않다.
HP는 키네틱에 대해 작년 발표한 오딧세이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유닉스 운영체제인 HP-UX를 인텔의 x86 CPU인 제온에 포팅하고, 인티그리티와 슈퍼돔을 확대하는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로레인 바틀렛 부사장은 이날 애널리스트 서밋에 참석해 키네틱 프로젝트를 소개하자 찬사가 쏟아졌다며 고무적인 상황임을 전한다.
그에 따르면 HP의 키네틱 프로젝트를 접한 애널리스트들이 환호하며 HP-UX is Cool을 외쳤다고 적었다. 같은 자리에서 인텔의 커크 스카우젠 부사장이 나서 투퀼라, 폴슨, 킷슨, x86 CPU 등에 대해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이 메일은 두가지를 보여준다. 일단 오라클의 발표가 있기 전 HP는 유닉스 사업에 변화를 주려고 준비중이었다는 점, 그 발표가 임박했었다는 점이다. 메일은 3월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언론 등에 공개할 계획이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오라클의 아이태니엄 발표 이래 이 프로젝트는 11월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또 다른 문서는 2010년 7월 16일 마크 허드가 HP CEO 자리에서 쫓겨나기 전 데이브 도나텔리 부사장에게 보낸 메일이다.
마크 허드는 짧게 ‘엑설런트 뉴스’라고 답하는데, 이는 데이브 토나텔리가 마틴 핑크 부사장으로부터 받은 메일에 대한 답장이다.
마틴 핑크 부사장은 데이브 도나텔리 부사장에게 “인텔 커크 스카우젠 부사장과 K22에 대한 논의를 끝냈고, 마크(허드)와 폴(인텔의 CEO 폴 오텔리니)가 오는 8월 경 이벤트에서 이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적었다. K22는 2014년 인텔에서 출시할 아이태니엄 CPU의 코드명이다.
HP는 이 문서에 대해 “인텔이 아이태니엄 계획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으며, 새로 개발되는 CPU가 개선된 성능과 새로운 기능을 보여 준비를 완료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오라클 썬은 죽었다, HP가 죽을 것
다음 문서는 오라클의 세일즈 담당자들이 시스코의 협업용 메시징 프로그램인 재버를 통해 주고받은 대화를 담았다. 앤지 도슨, 케이스 블록 등 오라클의 부사장들은 썬 매출에 대한 압박을 노출하고 있다. 마크 허드 사장에 대한 혐오도 드러난다.
케이스 블록 부사장은 “누구도 썬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선 고객조차도”라며 “썬은 죽었다(It's dead, dead, dead)”라고 표현한다. 이어 “아무도 썬을 팔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그는 마지막엔 Pig with lipstic라고 표현한다. 이는 미국 슬랭으로 ‘진실을 감추려는 무의미한 시도’를 뜻한다.
HP는 이에 대해 “오라클이 썬을 절름발이 개로 표현했고, 유닉스 시장에서 스팍 플랫폼 점유율을 높이려 시도해야 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다른 메일엔 래리 엘리슨 CEO가 등장한다. 오라클의 CEO는 토마스 쿠리안이란 직원과 사프라 카츠, 마크 허드 등에게 '아이태니엄'이란 제목의 메일을 보냈다. 이는 2011년 2월 14일 작성됐다.
래리 엘리슨은 “앞으로 아이태니엄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지원 정책에 대해서 업데이트 됐나? 플래티넘부터 브론즈까지 새로운 지원 정책이 발표돼야 한다”는 적었다.
이는 아이태니엄 CPU 지원중단을 발표하기 1개월 전 시점으로 HP 유닉스 사업에 피해를 주기위해 전략을 준비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다른 오라클 내부 직원들끼리 주고받은 메일은 오라클 내부에서 아이태니엄 계획을 공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메일들은 2011년 2월 8일부터 14일 사이 수차례 주고받은 메일이다.
메일 상에서 오라클 SW 담당 실무자는 HP-UX 플랫폼 상 오라클 SW에서 보안 취약점이 발견돼 패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이어진 답장에서 HP-UX에 대한 패치를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된다. 다음 패치가 4월에 이뤄질 계획이지만, 그때 HP를 제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HP는 “오라클 실무자는 아이태니엄 고객에 SW 보안패치를 기꺼이 제공하려 했지만, 결국 HP-UX에 대한 지원을 포기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 오라클의 직원은 이 결정이 고객에게 충격을 주는 어리석은 것이란 견해를 보여주지만 매니지먼트 레벨에서 명령됐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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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클 케이스 블록이 2010년 2월 28일 AIM을 통해 토니야리카란 세일즈 담당자와 나눈 채팅 내용도 공개됐다. 이 문서엔 “썬 하드웨어를 위해 전략이 필요하다는 토니야리카의 지적에 ”HP는 죽을 것이라고 밝히는 케이스 블록의 답변이 나온다. 당시 썬 매출에 대해 오라클 직원들이 심한 압박을 느끼는 가운데 어떤 반전을 위한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문서는 팀 켈리 오라클 부사장이 작년 3월 27일 사라 헌터, 데이비드 사이먼, 마크 모레티 등에게 보낸 메일이다. 오라클이 아이태니엄 지원중단을 발표 한 후 HP 플랫폼에서 썬 하드웨어로 이전해주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