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려는 오라클의 공세가 거세다. 유닉스 서버사업의 미래를 둘러싼 두 회사의 피튀기는 접전은 이달말 본격 심리를 앞두고 법정 밖에서도 치열함을 더하는 모양새다.
오라클은 16일(현지시간) HP 내부에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작성된 문서 12건을 공개했다. 이 문서들은 HP가 아이태니엄 CPU의 단종을 원하는 인텔을 설득하고, 유닉스 사업의 출구전략을 구상하는 임원들의 움직임을 담았다. 오라클은 이를 이용해 고객에게 해온 HP의 거짓말들이라며 공격했다.
오라클은 지난해 3월 인텔 아이태니엄 프로세서 차세대 버전부터 SW지원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출시되는 오라클 데이터베이스(DB) 12c, 퓨전미들웨어 12g, 마이SQL 5.6, 비즈니스인텔리전스 12g, 피플소프트 9.2 등을 아이태니엄 기반 유닉스 서버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현재 아이태니엄 기반 유닉스 서버는 HP에서만 생산된다.
오라클은 인텔이 아이태니엄보다 x86인 제온에 더 집중하기로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오라클은 MS와 레드햇이 이미 아이태니엄 지원을 중단한 지 오래란 점을 설명했다.
HP는 오라클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수만 고객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라고 비난하며 지난해 6월 법정소송을 제기했다. 오라클이 HP와 체결한 소프트웨어 지원 계약을 위반했다는 게 골자였다.
오라클도 지난해 12월 맞소송을 제기했다. 오라클이 아이태니엄 SW지원 중단을 발표하기 전부터 HP도 인텔이 아이태니엄 단종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이를 입증하는 근거로 인텔과 HP 간의 수익보전 거래사실을 폭로했으며, 이번에 HP 내부문건까지 대중에 공개한 것이다.
■HP “인텔이 우리에게 폭탄을 떨어뜨렸다”
오라클이 공개한 12개의 문서는 이메일과 임원미팅요약문, 각종 보고서 등으로 2007년부터 작년까지 작성됐다.
2007년 8월 마틴 핑크 HP BCS 수석부사장은 “인텔이 폴슨(올해 출시될 아이태니엄 CPU 코드명)을 취소하려 한다”라며 스콧 스탈라드 당시 스토리지서버그룹 수석부사장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는 이어진 메일에서 “인텔이 지난밤 우리에게 폭탄을 떨어뜨렸다”라며 “인텔이 폴슨을 취소하려는 것에 대해 중재가 필요하다”고 적었다.
2007년 9월 발송된 스콧 스탈라드 부사장의 메일은 더 급박한 상황을 드러낸다. 그는 “아이태니엄 로드맵이 끝난다는 신호를 세계에 내보내지 말 것”이라며 “CPU팀을 유지하고, 그들을 바쁘게 해라, 그렇지 않으면 18개월 내에 투퀼라와 폴슨 팀 전체를 철수시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2007년 9월 28일 인텔과 HP 고위임원 간 5대 5 미팅 내용에 대한 요약문이다. 이날 미팅에는 ▲폴 오텔리니 인텔 CEO와, 당시 HP CEO였던 마크 허드를 비롯해 ▲HP의 셰인 로빈슨, 스콧 스탈라드, 조 리 ▲인텔의 신 말로니, 톰 킬로이, 팻 겔싱어, 진앤 니콜스 등이 참석한 것으로 나온다.
이날 미팅에서 폴 오텔리니 인텔 CEO는 “아이태니엄 사업으로 더는 막대한 손실을 보지 않아야 한다며 아이태니엄 CPU 단종 의사를 분명히 했다.
톰 킬로이 인텔 부사장은 아이태니엄 CPU 로드맵에 대한 두가지 대안과 그에 따른 비용분석을 제시한다. 대규모 지출계획이나 불시착 등 두가지 대안 모두 매출 급감을 수반하는 계획으로 언급된다.
톰 킬로이 부사장은 “2002년 나온 맥킨리(아이태니엄2의 코드명)의 핵심 아키텍처가 투퀼라 라인에서 한계에 근접했다”라며 “2011년 이후 강력한 로드맵을 창조해야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마크 허드 당시 HP CEO는 “아이태니엄 CPU기반 시스템에서 그동안 90억달러 매출을 올렸다”라며 “고객들에게서 도망치기란 어렵다”라고 밝힌다.
톰 킬로이 부사장은 “SGI가 아이태니엄에서 이탈했고, 일본 기업도 머지않아 떠날 것”이라며 규모의 경제를 잃은 아이태니엄 CPU의 현재를 전한다. 이후 폴 오텔리니 CEO는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아이태니엄의 미래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라며 “인텔은 아이태니엄 제조라인에서 돈을 잃는 것을 유지할 수 없고, 강력한 마이그레이션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콧 스탈라드 HP 부사장은 “HP가 아이태니엄으로부터 HP-UX를 이전할 어떤 계획도 갖고 있지 않으며, 미션 크리티컬 아키텍처로서 X86을 개발하는데 헌신했다”고 재확인시켰다. 그는 “제온과 리눅스의 역량을 세우는 작업을 계속할 계획인데, 이는 2010년보다 2013년에 고객에게 더 쉽게 팔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HP-인텔, 아이태니엄 유지 합의
2007년 11월 셰인 로빈슨 HP 부사장이 마크 허드, 앤 리버무어, 스콧 스탈라드 등에게 보낸 메일이 이어진다. 이 메일은 HP가 인텔에게 제안한 아이태니엄 수익보전 계획을 담았다.인텔이 더는 손실을 볼 수 없다고 밝힌데 따른 대응책이었다. 오라클은 지난 2월 이같은 사실을 이미 공개했다.
이어진 메일은 2008년 11월 인텔과 HP가 아이태니엄 CPU 수익보전 계약에 합의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인텔이 아이태니엄 CPU 생산을 계속하며, HP는 인텔에 5년간 4억8천800만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데 합의했다는 것이다. 메일은 4억8천800만달러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걱정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다른 문건은 HP가 2009년 2월 26일 작성한 보고서다. 당시 HP가 썬마이크로시스템즈 인수를 고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는 “아이태니엄의 궤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HP-UX가 죽음의 행진(march of death) 중이다”라고 표현한다.
이 자료는 BCS사업부에서 아이태니엄에 대한 사업을 유지하느냐, 중단하느냐에 대한 예측을 보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두 시나리오 모두 BCS사업과 테크놀로지서비스(TS) 사업의 매출 급감을 예견한다.
보고서는 이를 대비하기 위해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인수해 솔라리스 운영체제와 스팍CPU를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x86서버 사업이 고부가가치가 아닌 만큼 마진 증대를 위해 스토리지업체를 인수하며, 네트워크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솔라리스가 서버와 스토리지,네트워크 장비의 운영체제로 활용가능하다는 점도 언급됐다.
하지만 썬을 인수하려던 HP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오라클이 썬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말라”
7번째 문서는 2009년 3월 핑크 부사장이 데이브 도나텔리에게 보낸 메일이다. 이 메일에서 핑크 부사장은 MS와의 논의를 전하고 있다. 당시의 데이브 도나텔리는 HP에 합류하기 직전이었다.
당시 MS는 윈도서버의 HP 인테그리티 서버 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한다. 이 사실을 인지한 핑크 부사장은 “아이태니엄의 끝이 보인다”라고 적었다. 이미 레드햇이 리눅스 지원을 끊은 상태였다.
핑크 부사장은 “MS가 윈도8에서 아이태니엄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의 목표는 일러도 내년 히드라진을 발표할 때까지 이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지연시키는 것”이라고 적었다.
여기서 히드라진은 작년 HP가 발표했던 오딧세이 프로젝트에 대한 언급이다. 핑크 부사장은 “아이태니엄에서 빠져나와 8/16소켓 x86서버를 HP 칩셋에 포함시키는 ‘히드라진'으로 이동하는 시나리오를 밥 켈리 MS 부사장이 좋아했다”고 적었다.
그는 이어 임원진에게 메일을 보내 “MS가 윈도8의 아이태니엄 지원을 끊으려 하므로 윈도7탑재 인테그리티 서버 판매에 주력하면서, 시간을 지연시키고 하이엔드 x86 솔루션이 인테그리티의 90%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공개할 것”라고 조언한다.
다음 문서는 핑크 부사장이 데이브 도나텔리의 HP 합류 직후 보낸 메일이다. 그는 인텔과 거래한 수익보전 계약의 내용을 전하면서 해당 내용의 비밀유지를 강력하게 당부한다.
핑크 부사장은 2009년 11월 엔터프라이즈 그룹의 재무를 담당하던 빈센트 필레테에게 보낸 메일에서 “인텔에게 약속한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인텔이 폴슨과 킷슨 개발을 중단하고 아이태니엄에서 나와 하이파이브하게 된다”라고 적었다. 서둘러 인텔에 돈을 지급할 것을 독촉하는 내용이다.
또한 2010년 열린 BCS리뷰에서 핑크 부사장은 유닉스 시장에 대한 여러 대안을 언급하며 “아이태니엄의 마지막 프로세서 킷슨과 함께 유닉스 시장에서 나오라”라고 조언한다.
다음 메일은 마틴 핑크 부사장이 2011년 3월 23일 커크 스카우젠 인텔 부사장에게 보낸 메일이다.
핑크 부사장은 “인텔이 오라클에게 아이태니엄에 변화가 있다는 점을 알려준 사실이 없다고 밝히라”고 요청한다. 그는 “이는 중대한 이슈이며, 인텔이 오라클에게 아이태니엄 종료계획을 말한 적이 결코 없다는 것을 시장에 말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적고 있다. 이는 오라클이 아이태니엄 지원중단을 선언한 직후였다.
마지막 열두번째 메일은 2011년 4월 핑크 부사장이 도나텔리 부사장에게 전달한 문서다. 이 메일은 HP가 중국 화웨이에 HP-UX 소프트웨어 라이선싱을 논의한 결과를 담았다.
문서에서 화웨이는 HP의 제안에 매력을 느끼지 않은 것으로 표현된다. 메일 원본을 작성한 동 웨이 HP 엔지니어는 “인텔이 화웨이에 아이태니엄 라인이 차후 2세대로 종료되고 오직 제온으로 간다고 말했다”라며 “오라클이 인텔에게 들었다고 밝히는 것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사실이다”라고 적었다.
■'오라클 VS HP' 대외 공방 과열
오라클은 12종의 문서를 홈페이지 상에 공개하며 “HP가 고객들에게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잘못된 사실을 전하는 것은 유죄”라고 주장했다.
제브 다스틸 오라클 수석 부사장은 “HP 내부의 아이태니엄 상태에 대한 언급을 담은 문서가 다수 있다”라며 “이 문서를 읽고 난 후 오라클의 결정에 동의할 것이라 자신한다”라고 밝혔다.
HP는 이에 공식 자료를 발표하고 “오라클이 공개한 문서는 인텔이 아이태니엄 지원을 지속하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HP는 “인텔은 명확하게, 그리고 반복해서 아이태니엄의 생명이 끝나지 않음을 밝혀왔다”라며 “오히려 오라클이 공개한 문서들은 인텔의 아이태니엄 로드맵이 장기적이고 지속적임을 보여준다”라고 강조했다.
오라클은 공개한 자료를 통해 인텔이 아이태니엄 프로세서를 단종시키려 했던 사실을 HP가 알고 있었고, 비밀 거래를 통해 아이태니엄 CPU 수명을 늘렸다는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더구나 HP가 아이태니엄을 유지하려는 이유가 x86 시스템보다 더 많은 서비스비용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HP 내부 문건의 보고서로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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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클이 대외 문건을 공개한 시점이 묘하다. 이날 법원은 HP에서 제기한 소송을 각하해달라는 오라클의 요청을 거절했다.
지난해 3월 시작된 오라클과 HP 간 아이태니엄 소송은 오는 31일부터 확정판결을 위한 심리를 통해 결판을 짓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