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의 원인이 게임에 있다며 너도나도 나서서 규제하겠다니... 완전 ‘규제 셔틀’이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왜 노스페이스는 청소년유해물로 지정하고 착용 제한 안하나요?”
최근 기자와 만난 한 중소 게임 업체 사장은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조롱과 푸념이 한데 섞인 목소리는 격앙됐다. 그는 자신이 만드는 창작물이 학교폭력의 온상이 된 것에 자괴감이 든다고도 했다.
규제 셔틀은 신종 학교폭력으로 불리는 ‘빵셔틀’ ‘와이파이 셔틀’ 등을 빗댄 것이다. 셔틀이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를 뜻한다고 하니 지금의 게임업계 현실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도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정부의 게임업계 ‘구타’는 지난해 본격화됐다. 셧다운제로 대변되는 청소년보호법이 통과되면서 게임산업에 ‘빨간 줄’이 그인 것이 시작이었다.
‘게임은 청소년 유해매체, 게임 개발자들은 유해산업 종사자’라는 낙인을 찍은 셧다운제는 어느덧 도입 3개월차에 접어 들었다. 그런 사이에 청소년 본인과 부모가 요청하면 시간과 상관없이 게임에 접근 자체가 어려운 선택적 셧다운제도 국회를 통과해 시행을 앞뒀다.
게임업계 연간 수익을 거둬 게임중독기금을 조성하자는 논의도 틈틈이 불거졌다. 정부의 게임업계 ‘간보기’와 ‘길들이기’ 행보가 번갈아 반복되어 온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교육과학기술부까지 학교폭력대책의 일환으로 이른바 ‘연령별 게임 셧다운제’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는 질타가 쏟아졌다.
한 누리꾼(ivoo***)은 “교과부도 게임을 규제하면 학교 폭력이 없어질거라 믿을 정도로 XX은 아닐 거다.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으니 뭐든 하긴 해야 할테지. 항상 반성보다 면피를 선택하니 화가 난다”고 했고 또 다른 누리꾼(ksoo***)은 “문화부, 여가부, 교과부의 삼중드립! 정부 부처간 공조가 이렇게 잘될수 있다는걸 알았다는 것에 그나마 희망을 가져야 할까. 저출산문제나 입시문제를 이런자세로 좀 해보지”라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게중에는 업계 오피니언 리더들도 여럿 눈에 띈다. ‘리니지’ 개발자 송재경씨는 “항의의 표시로 게임 개발자는 전부 파업하고 앞으로 게임은 정부가 직접 만드는 걸로”라는 글을 올렸고 최관호 게임산업협회장은 “학원폭력 사태 해결을 위해서 게임업계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게임을 학원폭력의 원인으로 지목해서 합리적이지 않은 규제를 하려는 분위기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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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트위터 여론은 산업을 전방위에서 규제하려는 정부에 맞서 해외에 본사나 서버를 이전해 규제 폭탄을 피하자는 ‘기술 이민’이 대안으로 제시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분노가 체념으로, 체념이 무력감으로 번진 업계 최후의 절규다.
정말로 이 정부는 “정책입안자들이 규제 중독에 빠진 것 같다”는 조롱섞인 비판이 들리지 않는 것인가. 게임을 볼모로 과연 무엇을 해결하고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게임산업에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규제가 꼭 어른들이 저지르는 학교폭력의 모습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