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믿는 HTML5에 발등 찍히나?

일반입력 :2012/01/15 09:07    수정: 2012/01/15 09:15

애플 경쟁사들이 아이패드, 아이폰의 사파리 브라우저를 이용한 iOS 생태계 침투를 가속하는 추세다. 스티브 잡스가 어도비 플래시를 배척하며 끌어안은 HTML5 기술이 오히려 기존 생태계를 공격받게 만드는 헛점으로 비쳐 귀추가 주목된다.

애플은 지난 2008년 아이폰을 출시한 이래 어도비에 대해 까칠한 태도를 고집해왔다. 플래시가 허용되지 않아 불편한 건 아이폰 사용자들이었다. 플래시가 돌아가는 단말기 브라우저로 표시되는 콘텐츠가 아이폰 사파리에선 텅 빈 자리로 표시됐기 때문이다.

■플래시 외면한 애플, HTML5 사랑은 진행형

어도비 플래시는 지금도 데스크톱 환경에서 동적인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구현하거나 브라우저와 독립적으로 돌아가는 애플리케이션용 개발 플랫폼 기술 요소로 활용된다. 어쨌든 과거 어도비는 윈도모바일, 블랙베리 등과 마찬가지로 애플의 iOS 기반 스마트폰에도 플래시 플러그인이 제공되길 원했다. 같은 바람을 가진 아이폰 사용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애플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다 지난 2010년 4월 당시 애플 창립자 겸 회장이었던 故 스티브 잡스가 HTML5를 대놓고 띄우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플래시에 대한 단상'을 애플 공식사이트에 게재하면서다. 이 글에서 잡스는 플래시를 팽개치고 HTML5를 자사 기술전략상 비장의 카드로 묘사한다. 플래시는 버그가 많고 배터리소모도 크고 터치스크린 조작에 최적화가 안돼 모바일에 안 맞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후 어도비는 애플을 사랑한다며 애정공세를 펼치기도 하고, 플래시를 외면할테면 해 보라며 HTML5 변환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다만 이같은 여유는 지난해 11월 어도비가 모바일용 플래시 플레이어 개발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사라졌다. 어도비는 향후 모바일 앱과 PC 브라우저 안팎의 콘텐츠를 표현할 기술로 HTML5 분야 투자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iOS용 플래시를 끝까지 배제하려던 잡스의 판단이 옳았음을 방증하는 사례로 길이 회자된다.

애플이 HTML5에 힘을 실어 준 흔적은 윈도, 맥PC용과 아이폰, 아이패드용으로 개발되는 사파리 브라우저에서 찾을 수 있다. 애플이 iOS뿐 아니라 여러 모바일 플랫폼 업체들의 내장 브라우저 바탕기술인 오픈소스엔진 '웹킷' 개발을 주도하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 애플이 iOS에서 HTML5 기반 웹앱을 만들게 유도한 시점은 앱스토어 생태계를 구축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아이폰과 아이팟터치는 외부 개발자들에게 iOS용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를 열어주지 않았다. 사파리 브라우저로 돌아가는 웹앱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API를 개방한 것은 아이폰에서 전화 기능을 뺀 아이팟터치 단말기가 MP3플레이어 시장에서 한창 인기를 끈 뒤부터다.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팟터치 사용자 기반이 충분해진 다음에야 앱스토어에 올릴 앱을 만들어줄 개발자들을 끌어모았고, 그 결과는 가장 성공적인 모바일 앱 생태계라는 평가로 요약된다.

그리고 애플은 앱스토어 성공 이후에도 모바일 사파리에 최신 HTML5 지원 기능을 꾸준히 반영해왔다. 초기 iOS용 브라우저보다 최신판의 내장 사파리에 구현되는 웹기술이 훨씬 다양하고 그 성능도 낫다는 게 현업 웹기술 전문가들의 증언이다.

■HTML5, iOS 앱-e북 침투…멀티미디어는 아직

이런 가운데 타사가 이런 iOS 환경의 특성을 이용해 애플의 특정 사업을 보호하는 진입장벽을 돌아들어가기 시작한 정황이 나타나고 있어 눈길을 끈다. HTML5를 이용해 애플 생태계에 침투하려는 기업에는 페이스북이나 아마존같은 유명 인터넷 업체도 있다.

우선 지난 2010년 하반기 '오픈 앱 마켓'이라는 아이폰용 앱 장터가 문을 연 사례가 있다. 외부 개발자들이 만든 iOS용 앱을 사고 판다는 개념이 애플 공식 앱스토어와 똑같다. 다만 iOS용 사파리 브라우저로 돌아가는 웹앱만 유통되고, 애플측에 개발자 등록비와 앱스토어 판매 수수료를 떼일 필요가 없는 구조다. 초기 등록된 유료 앱 품질에 불만을 표한 사용자도 있었지만 폐쇄적인 애플 플랫폼 정책을 우회하는 시도에 반향이 컸다.

iOS용 오픈 앱 마켓의 등장은 구글이 자사 PC브라우저 전용 웹앱 장터 '크롬 웹스토어'를 내놓은 시기보다도 앞선다. 모질라도 현재 크롬 웹스토어와 비슷한 개념인 개방형 웹앱 스토어를 준비중이다. 모질라 웹앱스토어는 초기 크롬 웹스토어와 달리 웹표준을 지원하는 브라우저를 모두 지원한다는 계획을 내걸고 준비되고있다.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 페이스북도 지난해 6월말 유출된 계획을 통해 iOS 플랫폼에 자체 웹앱 실행환경을 갖추려는 준비를 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오픈 앱 마켓처럼 HTML5 기술로 애플 통제를 받지 않아도 되는 웹앱 플랫폼 '스파르탄'을 만들 것이란 내용이 국내외 모바일 웹개발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웹개발자들이 가진 표준 웹개발 기술로 자사 플랫폼에서 돌아가는 페이스북용 앱을 만들 수 있도록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클라우드 사업자이자 인터넷 도서업체 아마존도 올초 자체 전자책 형식을 만들고 이를 위한 e북 개발툴을 공개하며 자사 콘텐츠 시장을 넓히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아마존은 지난해 10월부터 킨들파이어 단말기를 밑지고 파는 대신 콘텐츠 수익에 주력할 전망이다. 그 전자책 형식인 '킨들포맷8(KF8)'이 HTML5 기반이며 킨들파이어 이전의 전자책 파일도 대체케 된다.

아마존이 이로써 겨냥한 '시장'은? 애플 아이패드 등 HTML5 지원 브라우저가 포함된 모든 태블릿 단말기다. 회사는 지난해 자사 전자책을 읽을 수 있는 웹앱 '킨들 클라우드 리더'를 내놨다. 킨들젠 업그레이드판 공개와 함께 아이패드용 킨들스토어도 선보였다. 일반PC용 킨들스토어에 비해 아이패드에 최적화된 전자책 구입, 결제 인터페이스를 지원해 영락없이 애플 '아이북스'를 노린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웹기반이라 애플 수수료 30%를 떼이지 않으며 등록과 유통 전과정에서 애플 통제를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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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애플이 HTML5 기술로 자사 플랫폼을 이용당할 여지를 남겼지만 현재 구축된 생태계를 위협할 수준으로 당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꾸준히 자사 플랫폼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해왔던 애플이 직접 강조하고 장려해온 HTML5 실행환경 때문에 앱내결제(IAP) 수수료나 앱스토어 등록심의를 회피하게 된 점까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진 않을 것이다.

애플이 이런 흐름에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 배경에는 HTML5 기술의 성숙도도 작용하는 듯하다. 아직까지 HTML5 기술이 높은 그래픽 성능을 요구하는 게임 앱이나 동영상 서비스, 음악 스트리밍같은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공에 한계를 보이는 상황이다. 아이패드를 비롯한 애플 플랫폼 전반이 확고한 입지를 갖춘 시장은 통상적인 전자책 콘텐츠 환경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성격의 온라인 콘텐츠 소비와 게임 실행 환경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