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방송콘텐츠’ 그 뒤에서는...

일반입력 :2011/11/14 13:48    수정: 2011/11/14 13:49

정현정 기자

지난 8월 연기자 한예슬씨의 출연거부 사태로 방송프로그램 제작구조의 문제점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고조되면서 음지에서 일하는 방송문화산업 기술인들의 현실도 수면위로 드러났다.

방송문화산업 종사자들은 방송프로그램 제작 시 무대 설치, 조명, 음향, 구조물, 전시, 특수효과, 영상, 안전경호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제작인력으로 이른바 ‘현장 스탭’을 총칭하는 용어다. 화려한 무대와 연예인 뒤에 가려졌던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나섰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1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한국방송문화산업기술인협회와 간담회를 갖고 방송기술인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맺혔던 응어리들을 쏟아냈다.

국내 방송문화산업기술 산업의 매출 규모는 3조원으로 종사자만 3만여명에 달하지만 과도한 제작일정과 업무량으로 각종 안전사고에 노출돼 있는 게 현실이다. 열악한 근로조건 탓에 전문 인력의 해외유출과 신규인력의 공급 부족이 심화되면서 산업의 근간이 약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전문인력 풀의 붕괴를 가장 염려했다.

이병우 감사(파일피플 대표)는 “비용절감을 위한 무리한 대관일정으로 야간 작업을 밥먹듯이 하고 휴일에 제대로 쉬지 못하다 보니 젊은 인재들이 한 달도 못버티고 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서 “장비는 발전했는데 인력이 수급이 안돼 회사가 문을 닫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고 느낌을 전달하려면 말이 통해야 하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는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업계의 관행적인 도제식 훈련을 통한 기술전수가 우수 인력 양성에 한계점을 노출하면서 해외시장 진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외에도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현재 국내에는 대중공연만을 위한 전문 공연시설이 전무하다. 때문에 대규모 공연을 체육시설에서 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다보니 안전 관리에 대한 법 규정이나 관리 체계가 전혀 없어 안전사고에 대한 위험 부담을 떠안을 수 밖에 없다.

기획사나 대행사들은 이윤을 못 남겼다고 생각하면 돈을 안주고 넘어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대형업체가 하청에 재하청을 주면서 하부 업체에 돌아가는 몫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최저가 입찰제 도입으로 인한 경쟁 심화도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는 부분이다.

한승훈 무대설치부문 이사(아트빈 대표)는 “지금의 한류 열풍에는 드라마의 그림이나 미술적 분야나 하드웨어 시스템이 많은 공헌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이름이 거론된적은 없다”면서 “음지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지만 양지화 시키려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90년대 중반까지고 해외 아티스트의 내한공연이나 국내 행사 때마다 일본 등에서 스탭과 장비를 임대해와야 했던 국제의 제작 시설은 이제 거의 100%에 육박하는 내수 시스템이 갖췄다. 최근에는 해외에 장비와 기술을 서비스하는 수준까지 올라있다.

하지만 장비와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공연 제작 현장의 안전과 스탭들의 안정적인 작업환경을 지원하는 관련 시스템은 그 동안 간과돼왔다. 전문 인력 수요 역시 1만3천여명에 이르지만 실제 종사자는 약 7천여명 밖에 되지 않아 인력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관련 종사자들이 권익보호와 산업진흥을 위해 모여 설립한 ‘한국방송문화산업기술인협회’는 지난 9월 방통위 산하 협회로 등록됐다. 협회는 안전관리, 사고대책, 시스템아카데미 운영을 통한 전문인력 교육, 법률지원 등의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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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달영 협회장(주미라클스페셜이펙트 설립자)은 “해외 선진국들은 방송문화산업 기술과 관련된 협회가 일찍이 있어서 노동 관련 규정을 체계화 하는 등 체계적인 프로세스에 의해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면서 “향후 방송문화산업 종사자들이 한 군데 모여 작업하고 연구할 수 있는 단지를 마련해 준다면 인력수급이나 교육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건의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최재유 방통위 방송통신융합실장은 “방통위는 법률과 언론의 관심에서 소외된 방송문화산업기술인의 근로조건 개선과 종사자들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협회를 설립을 하게 됐다”면서 “방송제작 현장기술에 대한 표준화된 업무 매뉴얼과 안전 가이드라인 제정, 체계적인 인력양성을 통해 방송문화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