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슈미트 '알현(?)' 줄서기 민망하다

기자수첩입력 :2011/11/08 10:56    수정: 2012/03/08 11:00

김태정 기자

방한한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과 만나려는 국내 거물들의 줄서기가 도를 넘었다. 이 정도면 ‘면담’이 아니라 ‘알현’이자 ‘짝사랑’이다. 마케팅 쇼(show) 이상의 가치가 없다.

7일 슈미트 회장은 서울 모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한국서의 본인 위상을 제대로 확인했다. 휴대폰 제조와 이동통신, 금융계까지 최고경영자 7명이 반나절 만에 그와 차례로 만났다. 많아야 1시간 정도인 슈미트 회장과의 면담을 위해 대기업 수장들이 호텔 복도에 줄섰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이날 슈미트 회장과 1시간가량 만났음을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렸다. 사실상 국빈 대우다.

그렇다고 슈미트 회장이 대단한 선물을 들고 온 것도 아니다. 데이터센터 설립을 비롯해 한국에 대한 인프라 투자 얘기는 쏙 뺐다. 구글은 2004년 한국 지사 설립 후 스스로를 위한 연구개발(R&D)센터 설립 외에 우리나라에 크게 해준 것이 없다. 아시아 데이터센터도 싱가포르와 홍콩, 대만에만 세울 계획이다. 구글 안드로이드 탑재 스마트폰을 수천만대 만든 한국 기업들이 허탈해하는 부분이다.

슈미트 회장은 이 대통령에게 한류 문화 확산과 IT 벤처를 지원하겠다고 말했지만 큰 의미는 없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 내용은 뺐으며, 구글이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계가 해야 할 일이다. 한국이 구글에 바란 것은 분명 그 이상이다.

최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슈미트 의장이 선물을 갖고 오지 않으면 비행기에서 내리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뼈있는 농담을 던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슈미트 회장은 “한국은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라고 반복해서 말했지만 기자의 경험상 의례적 얘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을 찾는 글로벌 기업 수장들 누구나 하는 립서비스다.

자기네 결제 서비스 ‘구글 월릿(Wallet)’을 함께 키우자는 제안도 냉정하게 봐야 한다. 어디까지나 구글이 구글의 이익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일 뿐, 대단한 파트너로 본다는 해석은 근거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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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슈미트 회장의 덕담 한마디 듣고 유명세를 얻겠다고 대한민국 산업계가 ‘호들갑’을 떤 모양새다.

구글은 전 세계 IT, 더 나아가 산업 전반을 지배할 기세다. 한국이 ‘구글 만세’나 외치는 경제 사대주의의 패배자가 될지, 아니면 슈미트 회장에게 보인 대우 이상을 받을지 기로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