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태블릿으로 PC시대 종언을 예고하고, 구글이 모토로라를 집어삼켰다. HP가 PC 사업 분사 가능성을 내비쳤고, CEO가 갈렸다.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도 태블릿으로 시장몰이 중이다. 숨가쁘게 변하는 PC시장에서 델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주문형 컴퓨터 ‘델닷컴’으로 혁신을 선보였던 델의 시대가 이렇게 저무는 것 아니냐는 전망마저 나왔다.
델코리아도 조용했다. 연초 컨수머와 중소기업 부문을 하나로 엮은 ‘CSMB’ 사업부를 출범하고 모토로라 출신 임정아 부사장을 영입했지만 언론 노출은 꺼렸다. 연초 선보인 태블릿폰 스트리크의 후속작도 없었다. 와신상담, 주변 정세를 살피며 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런 가운데 임정아 부사장이 인터뷰를 자청했다. “한 템포 쉬었”으니 이제 입을 열 때가 됐다는 것이다. 14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만난 임 부사장은 “델에 PC는 아직도 중요하다”며 “모바일 시장도 궁극적으로 PC와 연계해 생각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이날 임 부사장이 던진 메시지는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PC시장은 죽지 않는다. 둘째, 출혈적인 가격경쟁은 하지 않겠다. 셋째, 내년에는 기업용 태블릿을 선보이겠다이다. 태블릿이 고성장세이긴 하지만 PC 시장을 위협할 수준은 아니며, 델에는 아직 튼튼한 PC 자산이 있다는 말로 풀이된다.
■델 체질 개선 점유율보다 수익성
눈길을 끄는 부분은 두 번째 대목이다. 점유율에 연연하느라 출혈적인 가격 정책은 펴지 않겠다는 것. 최근 3분기 글로벌 PC 출하량에서 레노버가 델을 따라잡은 것을 염두한 발언이다. 지난 3~4년새 PC 가격이 눈에 띄게 떨어지면서 넷북 등 저가 제품을 앞세운 대만 회사들이 눈에 띄게 성장했다.
임 부사장은 델코리아의 국내 PC 시장 점유율은 5% 남짓이라며 그렇지만 수익이 제대로 나는 80만원 이상 고가 제품군에서 점유율은 9%로 높다고 말했다. 경쟁사들이 저가 제품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는데 비해 델은 그간 고수익 모델에 집중했다는 것. 소비자들이 비싼 PC를 살 때는 델의 제품을 선택지에 포함시킨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최대 경쟁자인 HP도 겨냥했다. HP는 수익성을 이유로 PC 사업부 분사라는 초강수를 고려 중인데 지난 2년간 델의 수익성은 크게 개선됐다고 강조했다. 특히 HP가 유통을 위한 채널 관리에 너무 많은 비용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델이 그간 '다이렉트 판매' 영업방식을 고수하느라 국내 채널 관리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임 부사장도 한국에서 채널 관리가 중요하다는 부분은 인정한다.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면 유통채널 관리가 필수적이란 이야기다. 그럼에도 델이 채널 확보를 위한 무리한 비용지출을 앞으로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분명히 했다.
몇년 전만 해도 PC를 팔아 얻는 수익이 굉장히 높았죠. 시장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젠 적은 수익을 내는 단말을 많이 파는 것보다 수익성 높은 제품을 공급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태블릿 애플과는 다른 길… 기업용 가능성 높아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델의 태블릿 전략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긴 이르지만 '기업 고객을 겨냥한 태블릿'을 내년 선보일 것을 언급했다.
지난해 5인치 태블릿폰 스트리크를 선보였고 그 후 두 분기가 지나도록 신제품이 없었습니다. 한 템포 쉬었죠. 그 사이 시장이 많이 바뀌었고 델 전략도 변화가 불가피 했습니다.
임 부사장은 델이 그간 체질개선을 거치며 시장 변화를 주목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얻은 결론은 델만의 독특한 전략으로 수렴된다. 경쟁사들은 이미 10년이 넘게 휴대폰 단말 시장에 투자해왔다. 똑같은 전략으론 델이 승부를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신 델에만 있는 자산을 생각했다. 최근 델이 집중 투자하며 성장시킨 기업 시장이다.
애플이 잘 나가는 이유는 아이튠스에 있죠.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생태계를 구축했어요. 따지고보면 델도 다른 회사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장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컴퓨팅으로 시작했다는 장점이 있어요. 애플이 하고 싶어도 못하는 기업용 시장에 델은 진출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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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아직 발표되지 않은 델의 신작 태블릿은 기업용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델이 이미 갖고 있는 기업용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등을 태블릿이란 개인 단말에 붙인다면 기업 CIO들도 환영할 것이란 이야기다. 특히 스마트폰이 업무용으로 많이 사용되지만 보안이 문제가 됐는데 이 부분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강조했다. 시장 확보를 위해선 적절한 투자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단말 하나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호환성과 솔루션을 같이 제공한다면 기업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을 겁니다. 델이 이 시장에 분명히 투자하고 있고요. 지난해 델의 매출이 한국 돈으로 70조 남짓입니다. LG전자와 비슷한 규모죠. 이 중 10조원은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어요. 얼마든지 투자할 여력이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