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컴퓨터상가의 잔인한 여름 나기

일반입력 :2011/07/29 09:06    수정: 2011/07/29 09:14

남혜현 기자

용산서 CPU나 메인보드 등 부품을 구매해 PC를 조립해 쓰던 시대가 저물어간다. 상당수 조립PC 업체들이 부품 판매량 하락과 금융권의 여신 압박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용산 PC 판매량이 2분기 들어 급속히 감소하는 추세다. CPU같은 핵심 부품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떨어졌다. 2분기가 전통적인 비수기임을 감안해도 그 하락폭이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분석이다.

PC 판매가 주춤하자 은행권서도 재고 등을 담보로 빌려줬던 여신 압박에 나섰다. 특히 상대적으로 여신 규모가 큰 대형 유통업체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조립업체 타격 커…CPU 매출 '뚝'

요즘 용산도 몫 좋은 곳은 휴대폰 매장이 점령했다. 업주 중 상당수는 예전에 PC 매장을 하던 사람들이다. 수익이 안나다 보니 업종을 전환하는 것이다. 특히 조립PC 매장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22일 용산 유통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올 2분기 CPU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0% 가량 줄었다. 예전과는 달리 CPU가 업그레이드 부품이 아닌 PC 내장품으로 인식되면서 매출 감소폭이 상당한 것으로 풀이된다.

CPU 외에도 메인보드와 그래픽카드 등 조립PC에 사용되는 부품 판매량이 전체적으로 감소했다. 다만 그래픽 카드의 경우 아직까지 고성능 제품을 선호하는 사람들에 의해 고가 제품 위주로 판매돼 타 부품 대비 판매 감소폭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올해 내 조립PC 업체 상당수가 정리될 것이란 이야기가 많다며 특히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매점의 비중이 빠르게 줄어드는 추세라 설명했다.

때문에 용산 대형 유통업체들은 소매점보다는 비교적 수요변동이 적은 소규모 조립업체나 PC방에 주력하면서 완제품 유통 등 새로운 사업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업체에 따라 내비게이션 등을 자체 브랜드로 판매하는가 하면,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해외서 직접 론칭해 판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제이씨현시스템즈 관계자는 회사 사업 방향이 재작년부터 많이 달라졌다며 PC 등 기존 IT 제품은 현상 유지를 하고, 자체 브랜드 내비게이션으로 일반 소비자 시장을, PC 완제품으로 정부조달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원CTS 역시 국내서 소개되지 않은 제품을 국내 들여와 한국지사 역할을 겸하기로 했다며 기존에 대원이 했던 것과는 달리 부품보다는 완제품과 솔루션 비중을 차츰 늘려가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 설명했다.

■매출 줄자 은행도 표정 바꿔

매출이 줄자 은행권도 표정이 달라졌다. 실제 상당수 업체들이 현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5월 경) 신용보증기금(이하 신보)측에서 대출을 줄이는 등 움직임을 보였다며 매출액 기준으로 대출을 주는 데 올 2분기 PC 판매량이 줄자 자금 회수에 나선 것이라 말했다.

신보를 비롯, 금융권이 발 빠르게 나선 데는 PC 판매량이 급속도로 떨어진데 대해 불안감 때문인 것으로 업계는 해석했다. 이 관계자는 예컨대 신보에서 6억원을 대출해 쓰던 업체가 일방적으로 일시상환 통보를 받고 3억원을 상환해야 한다면 바로 현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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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에서 대출을 줄 때 기준이 되는 고과정책 변화도 이같은 분위기에 한 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보가 기존에 대출을 많이 하던 업체 비중을 줄이고 신규 중소기업 지원비율을 높이는 정책이 이같은 상황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여신정리로 부도가 난 업체는 없다면서 다만 대출상환 날짜가 한꺼번에 닥치면서 용산 PC 부품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은 것만은 사실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