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투치 EMC 회장의 CEO 임기만료 1년을 앞두고 후계자에 관심이 쏠렸다. IT산업의 격변기 속에서 낙오되지 않고 성공을 이끌 인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 IT미디어 더레지스터의 11일 보도에 따르면, 조 투치 회장은 미국 월스트리트 언론사, 애널리스트들과 만난 자리에서 펫 겔싱어 부사장과 데이비드 굴든 최고재무관리자(CFO)를 언급했다. 전략적인 비전을 갖고 EMC의 지속적인 성장과 전진을 이끌 인물이 누구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펫 겔싱어 수석부사장과 데이비드 굴든 CFO는 제품과 기술, 회계와 M&A 등으로 극명히 대비되는 인물이다. 조 투치가 제품이냐 재무냐를 두고 여전히 고민중이란 점을 보여준다.
EMC 차기 CEO로 거론되는 인물은 4명이다. 펫 겔싱어 정보인프라사업부 사장, 폴 매리츠 VM웨어 CEO, 하워드 엘리아스 클라우드서비스 최고운영책임자(COO), 데이비드 굴든 CFO 등이다.
■인텔맨, 펫 겔싱어
펫 겔싱어 수석부사장은 인텔 출신으로 하드웨어 냄새를 짙게 풍기는 인물이다. 30년간 인텔에서 근무하며 서버, 스토리지 등 인텔 엔터프라이즈 시스템 총괄 담당자를 지냈다. 그는 인텔 재직 당시 프로세서 핵심 기술 개발 및 전략의 수장이었다.
그는 현재 EMC에서 정보 스토리지 제품 사업을 비롯, RSA 정보보안, 콘텐츠 관리 및 아카이빙 등의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인텔에서 쌓은 명성은 겔싱어에게 약점이기도 하다. 명성에 비해 EMC에서 제품에 대한 업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존 제품의 비즈니스는 여전히 성공적이지만 강력한 한 방을 아직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경영자로서 위기를 돌파하는 능력도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겔싱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강직함과 고결함을 앞세운 그의 업무 스타일이 때때로 CEO직에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지난친 고결함이 흠으로 작용할 수 있다.
펫 겔싱어는 아직 트로피를 갖지 못했다. 그는 EMC에서 실패하지 않았지만 성공하지도 않았다.
■다크호스, VM웨어 폴 매리츠
EMC 자회사 VM웨어의 CEO인 폴 매리츠는 SW분야에 깊은 이해를 갖고 있다. 하드웨어 회사의 성격이 더 강한 EMC에 SW의 영혼을 불어넣을 수 있다.
펫 겔싱어 사장과 달리 폴 매리츠는 CEO로서 능력을 검증받았다. 그는 가상화 시장에서 MS 하이퍼V를 잊게 만들 정도로 VM웨어 하이퍼바이저를 반석에 올렸다.
그의 약점은 EMC의 제품 포트폴리오가 하드웨어 성격이 짙다는 점이다. 그는 EMC 입사 직후 줄곧 VM웨어에 있었다. 폴 매리츠의 EMC 이력에서 EMC 사업 경험이 전무하다. 기존 제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다.
폴 매리츠는 EMC에 대해 충분히 잘 알지 못한다는 점 때문이라도 VM웨어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다른 경쟁자 3명이 주춤한 순간 단번에 선두주자로 올라설 인물 1순위다.
■무난한 선택, 하워드 엘리아스
하워드 엘리아스는 EMC가 차세대 분야로서 삼은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2009년까지 회사의 시스템사업부를 총괄했던 그는 펫 겔싱어 합류 후 클라우드 사업부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경쟁자들과 달리 EMC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다. 서비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등을 경험했고, VCE이사회 멤버로서 V블록 개발에도 관여했다.
그가 CEO를 맡게 될 경우 경영조직에 대한 그림은 임원을 제어하는 형태다. 제레미 버튼 CMO가 마케팅을, 펫 겔싱어가 하드웨어와 SW를 총괄하면, 하워드 엘리아스는 그들을 통제하게 될 것이다.
한 회사에 충성을 다한 엘리아스는 조 투치 회장에게 최고의 선택은 아니지만 좋은 선택이다. 특히, 신규 사업에 대한 도전정신과 미련없이 적임자에게 양보하는 성향이 강점이다.
■재무전문가, 데이비드 굴든
재무를 맡고 있는 데이비드 굴든 CFO는 세일즈와 마케팅, 인수합병(M&A)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그는 기술자나 서비스맨은 아니다.
CFO의 경험을 살려 데이비드 굴든은 재무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할 것이다. 또한 조 투치의 회계사로서 EMC가 전략적으로 이득을 보도록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EMC CEO로서 장기적인 비전을 가졌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그는 펫 겔싱어처럼 제품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고, 하워드 엘리아스처럼 클라우드 서비스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VM웨어는 말할 것도 없다.
CFO는 사랑받는 직책이 아니라 악역에 속한다. 그가 CEO를 맡게 되면, EMC의 경영방향이 안전제일주의로 갈 소지가 높다.
■EMC가 밝은 미래를 위해 넘어야 할 산 '클라우드'
EMC는 명백히 한 지점의 도전에 직면했다. 업계 화두로 떠오른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IT분야는 최근 두갈래의 큰 흐름을 맞았다. 기업 데이터의 증가에 따라 스토리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퍼블릭, 프라이빗,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데이터 저장소가 이동할 조짐을 보인다.
퍼블릭 클라우드를 이용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상황은 EMC에게 유리하지 않다. 스토리지 구매자들의 수가 전보다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는 구매자가 전보다 훨씬 강력한 가격결정권을 갖게 됨을 의미한다. 적은 고객을 두고 여러 스토리지 업체들이 치열한 가격경쟁을 벌이게 되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
EMC는 결국 대기업의 프라이빗 클라우드를 공략해야 한다. 하이엔드제품인 VMAX 매출을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EMC가 직접 기업들에게 클라우드 스토리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까? 자사의 스토리지를 기업용 서비스로 제공하는 사업모델이다. EMC는 클라우드 스토리지 서비스업체인 너바닉스(Nirvanix)와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자로의 변신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클라우드가 EMC에 던진 또 다른 과제는 저장매체다.
비용절감에 초점을 둔 클라우드인 만큼 저장매체로서 테이프의 강점이 부각되고 있다. 디스크나 플래시 메모리보다 훨씬 싸기 때문이다. 반면, EMC는 스토리지 제품을 디스크 중심으로 구성한다. 테이프 스토리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백업제품인 데이터도메인, 아바마는 테이프 대신 디스크를 사용하는 시스템이다.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미래를 확신할 수 없다.
데이터웨어하우스(DW)와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는 유망분야지만, 그린플럼을 EMC의 메인으로 걸기에 아직 부족하다. EMC의 핵심사업은 아직 VMAX와 VNX 스토리지 라인이다.
■컨버지드 인프라의 유행, EMC의 선택은?
IT업체 사이에서 유행중인 컨버지드 인프라 역시 EMC가 넘어야 할 산이다. VM웨어, 시스코시스템즈와 손잡고 VCE를 창설해 V블록을 만들었지만, 아직 완벽한 통합을 이뤄냈다고 보기 힘들다. 서비스, 유지보수 등에서 HP나 IBM, 오라클보다 늦다는 평을 받는다.
여기서 끝없는 질문이 쏟아진다. EMC는 시스코와 계속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까? 직접 서버를 만들거나, 서버 회사를 인수해야 할까? 만약 자체 서버를 만들기로 결정한다면, 시스코와의 관계는 유지해야 할까? 또 다른 EMC의 네트워크 파트너는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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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서비스도 EMC의 약점이다. 델은 스토리지 라인업 강화와 함께 페롯데이터시스템을 인수해 IT서비스를 보강했다. 통합발주 프로젝트에서 스토리지 전문업체 EMC는 IT서비스의 역량한계를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후보자 중 낙마한 인물들에 대한 처우문제가 남는다. HP로 이직한 데이브 도나텔리처럼 CEO직을 따내지 못한 핵심 임원들이 회사를 떠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