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방송통신위원회의 통신료 인하 발표가 딱 이 상황이다. 통신업체들의 수천억 손실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한나라당의 압박에 손을 들었다. 승자는 국민이 아닌 한나라당이다.
애초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기본료 인하가 대표적이다. 지난 달 18일 국회서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이 “여당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면 용납하지 않겠다”고 신용섭 방통위 상임위원에게 호통을 치자 생겨났다.
이 의장은 “가만히 안 두겠다”,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이런 식으로 하니까 민심이반 현상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 등의 격양된 표현을 쓰며 스스로 ‘MR 버럭’이란 별명까지 만들었다.
덕분에 이통사들은 연 6천억원 매출 손실이 생겼다. 한나라당의 인기(포퓰리즘) 관리에 이용됐음을 성토한다. 이 과정에서 수조원대 규모의 차세대 이동통신 망에 대한 투자나 시장 경쟁 주도 훼손 등 ‘기본’들이 한나라당에게는 배제됐다.
양문석 방통위 상임위원이 “방통위를 한나라당 정책위 소위 정도로 간주해 참담하다”며 “통신료 인하는 한나라당 정략의 결과”라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통신료 인하 압박은 더 거세질 것이 뻔하다. 통신료 인하=표심이라는 기형적 공식까지 생겼다.
여기서 기본료를 1천원 더 내려도 국민들이 만족할 가능성은 미미하다. 방통위 관계자들은 최소 1만원은 내려야 ‘티’가 난다고 본다. 결국 ‘티’가 날 때까지 코너로 몰아갈 것이다. 1천원을 깎아도 6천억원이 줄어드는데, 1만원 인하는 사업을 그만 두라는 소리다.
게다가 통신료는 기름 값과는 달리 한 번 내리면 결코 올라가지 않는다. 기름 값 내렸으니 통신료 내리라는 논리가 억지인 이유다.
무조건 기업 편을 들자는 것이 아니다. 이용자 입장에서 통신료가 내려가면 당연히 환영할 일이다. 우리나라 통신료 구조에 문제가 적잖은 것도 주지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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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전시 행정일 뿐, 진정성 부족한 통신료 인하가 국가 IT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에 대한 우려를 감출 수 없다. 이득을 보는 것이 국민인가 한나라당인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이통사들의 신기술 도입 경쟁은 우리나라가 IT 강국에 올라서는 데 막대한 공헌을 했다. 정치권은 이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대중 현혹을 위한 도구로 써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