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업체들의 문제요? 자기들이 뭘 만들어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환경은 자꾸 변해 가는 데 오프라인 시절 성공 문법만 되풀이 하려는 게 가장 큰 문제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도 최근에는 하드웨어 이슈에 매몰된 분위기에요. 아이폰이나 갤럭시용 앱 하나만 만들어 놓으면 자동적으로 일이 해결되는 줄 알죠. 그게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내 콘텐츠의 특성에 걸맞게 활용할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국내 콘텐츠 생태계가 활성화되지 않은 것은 구조적인 모순 때문이기도 하지만 콘텐츠 업체 스스로의 자기 혁신이 부족했던 탓도 있다. 콘텐츠 업체들이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않으면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기는 점점 힘들어질 것이란 지적도 많다.
애플이 일으킨 앱스토어식 콘텐츠 생태계 열풍은 관련 업계에 기회와 위기로 동시에 다가온다. 기회가 커진만큼, 경쟁도 심해졌다. 경쟁은 내수를 넘어 글로벌 시장을 놓고 펼쳐진다. 어설픈 콘텐츠 업체는 바로 아웃당할 수 있는 구조다.
이같은 상황은 비단,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킬러 콘텐츠로 급 부상한 소셜네트워크 게임, 전자책, 3D 영화 등 '신상 콘텐츠'에 전반적으로 해당하는 얘기다.
세상은 달라졌지만, 국내 콘텐츠 업계는 아직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는 못한 모습. 헤매는 장면도 속속 목격된다. 취재차 만났던 한 전자책 개발업체의 임원은 아직 성공 사례가 없으니 어느 정도 가격을 책정해야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조차 모른다며 답답한 마음을 털어놨다. 시장이 열릴 것은 뻔한데, 아직 그 어느누구도 속시원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죽어야 사는' 콘텐츠 업체들
우선 많은 콘텐츠 업체들이 변화를 적극 수용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실행파일을 만들 수 있는 역량도 부족한 편이다. 그런만큼 콘텐츠 업체들이 죽어야만 살아날 수 있다는 대단히 역설적인 진단도 나온다. 새로운 디지털 콘텐츠들은, 제작 문법 자체가 오프라인 시절과는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영화 감독 출신인 손대균 작가는 최근 애플리케이션 소설 '흑백인간의 탄생' 발매에 앞서 모바일 게임 앱을 먼저 선보였다. 게임에 앞서서는 QR코드를 이용해 소설 예고편을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반기에 소설이 출간되면 그 안에 동영상과 게임 등을 덧붙여 극대화된 멀티미디어 체험을 독서경험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이뿐 아니다. 일부 출판사들은 이미 멀티미디어를 전담하는 부서를 갖췄다. 전자책 전송권 확보에 나선 것과 더불어 실험적인 전자책 개발 계획도 앞세웠다. 1인 출판을 기획하는 저자작가들도 늘고 있다. 장르소설 작가들 중 일부에서는 전자책과 종이책을 병행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도 속속들이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실험적인 시도는 아직 소수에 한정될 뿐이다. 최근 들어선 애플과 안드로이드 앱스토어에도 국내 작가들의 서적도 더러 발간되고는 있지만 대체로 종이책을 그대로 전자책으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이에 대해 한 출판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전자책 앱을 선보인 이후 여기저기서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면서 그러나 전자책으로 성공하려면 자기 출판사가 펴낸 책들의 정체성과 개성을 잘 표현한 후 기획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라고 지적했다.
3D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스테레오 스코프라고 불리는 아바타 같은 3D 영상을 구현하기 위해선 기존 2D촬영과 문법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작인력양성팀 주봉현 차장은 3D영화에서 가장 선호하는 장르 중 하나가 호러물이라며 극적 긴장감을 강화하기 위한 촬영 기술과 공간감 구성 자체가 2D와는 확연히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개봉을 준비 중이거나 크랭크인에 들어간 3D영화는 '제7광구' '기생령' '미스터GO' 등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편수가 적다.
이중 일부는 3D 촬영이 아니라 2D로 찍은 후 입체로 변환하는 작품이다. 물론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헐리우드 영화 산업의 수익구조에서 3D 비중이 점차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국내서도 3D 콘텐츠 활성화에 대한 장기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콘텐츠 부활,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사람'
한국에서 콘텐츠를 만드는것은 매력적인 일일까? 아쉽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다. 인력 기근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 3D 입체 영화를 찍을 만한 촬영 전문가를 꼽으라면, 10명도 채 안됩니다. 그나마 일명 '대작' 영화 촬영을 경험해 본 사람은 거의 없죠. 현업 촬영감독들과 신예 감독들이 골고루 3D쪽에 투입돼야 앞으로 한국에서도 3D로 경쟁할 수 있을 겁니다.
주봉현 차장은 국산 3D 콘텐츠 활성화를 위해선 테스트베드로 삼을만한 '소작'들이 꾸준히 나와야 한다고 역설한다. 10분~20분 길이의 단편 3D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제작인력들도 꾸준히 양성돼야 함은 물론이다.
요즘 뜨고 있다고 하는 소셜 게임도 마찬가지다. 소셜 게임 업체 선데이토즈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소셜네트워크 게임에 대해 이해가 높은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게 가장 큰 문제죠. 게임을 만들고 싶어 사람이 없어서 못 만듭니다. 기존 대작 게임과 비교했을 때, 소셜 게임쪽의 복지나 처우가 크게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기존 개발자들이 이쪽으로 선뜻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에요.
SNS를 활용한 게임에 대한 투자는 일어나고 있는데, 오히려 분야에 대한 이해와 비전을 가진 사람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콘텐츠 업체들 스스로도 조금씩 시대의 변화에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이다. 3D나 게임 뿐만 아니라 아날로그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종이책 출판업체들도 지난해부터 공중송신권 확보를 비롯해 디지털 시대에 발을 맞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분위기다. 아직은 종이책에 더 익숙하다고 말했던 한 기성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읽히지 않는 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죠. 지금의 20대 중반 이하는 종이책보단 전자책에 더 익숙한 세대가 될 겁니다. 이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라도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그 자체부터가 먼저 변화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홀로서기를 낙관하기에는 아직은 중량감이 부족해 보인다. 그만큼, 국내 콘텐츠 업체들의 체력은 떨어져 있다. 정부와 대기업들의 관심이 요구되는 이유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대기업들은 전략적으로 콘텐츠 생태계 구현에 나섰고 정부도 콘텐츠를 새롭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관련기사
- 출판-교육-콘텐츠 대박의 길을 보여주마2011.01.17
- TGIF 열풍, 지금 한국 콘텐츠 생태계에 필요한 것은…2011.01.17
- "콘텐츠 없는 스마트 혁명 종착역은 무덤속"2011.01.17
- 인터넷 사용자 65%, 유료 콘텐츠 돈 낼 의사 '있다2011.01.17
얼마만큼 조화를 이루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대기업과 정부 노력이 콘텐츠 업체들의 자기 혁신과 맞물린다면 대한민국 콘텐츠 생태계는 크게 한방을 터뜨릴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대기업과 콘텐츠 업체간 갑을관계가 여전한 가운데, 정부 특유의 전시와 탁상행정이 밀려들어온다면, 하나마나한 결과를 만들었던 과거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도약의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 모바일 시대에도 한국 콘텐츠 생태계가 변신에 실패할 경우, 우물한 개구리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많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정부와 대기업 그리고 콘텐츠 업체 내부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향한 행보들이 그 어느때보다 주목을 끄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