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놀음’ 된 KBS 수신료 인상

일반입력 :2010/11/20 16:31    수정: 2010/11/21 10:16

정현정 기자

5개월을 끌어오던 KBS 수신료 인상 논의가 월 3천500원으로 인상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광고는 현행 수준을 유지키로 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에서 KBS 이사회의 합의안이 시청자들의 의견 수렴 없는 정치적 합의였다는 거센 문제제기에 나서고 있어 후폭풍이 예상된다.

KBS 이사회는 19일 “방송 시스템의 디지털 전환,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보편적 서비스 제공, 고품격 프로그램 제작, 지역방송 활성화 등 공영방송의 책무가 확대되고 있다”면서 “그러나 지난 1981년 월 2천500원으로 책정된 수신료가 30년 동안 동결되면서 공영방송의 재원이 크게 왜곡됐다”고 수신료 인상의 배경을 설명했다.

수신료 인상을 통해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공공성, 다양성이 확보되고 방송품질이 향상되면 그 혜택을 국민들이 누리게 될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KBS 수신료 인상안은 당초 취지로 내세웠던 공영성 강화 방안과 멀어진, 수신료 인상 폭에 대한 정치적 합의의 결과물이 됐다.

아울러 그동안 실현되지 못했던 KBS 수신료 인상을 이끌어내면서 김인규 사장의 인사 논란 이후 불거졌던 KBS의 내부 불만을 일정정도 잠재울 수 있다는 여당 측의 기대감이 만들어 낸 산물이기도 하다.

KBS 수신료 인상을 통해 KBS를 일본 NHK 같은 제대로 된 공영방송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정치놀음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광고 유지하면서 수신료 인상…공허한 공영방송론

KBS 이사회가 수신료를 인상하면서 광고도 현행대로 유지하겠다고 합의하면서, 광고 없이 공영방송의 위치를 가져가겠다는 당초 목표는 빛이 바랬다.

이는 KBS가 기존에 점하던 방송광고 비중을 종편이 흡수해서 또 다른 친정권 매체를 만들 수 있다는 야당 측 이사들의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수신료 인상이 종편채널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야당 측의 불안감을 수용한 합의의 산물이다.

그동안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미디어 업계 빅뱅의 단초가 수신료 인상"이라는 입장을 밝혀 온 바 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미디어 빅뱅을 통한 방송산업 발전 방향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없었다.

이 같은 KBS 이사회의 수신료 인상 결정에 대해 시민사회에서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다.

‘KBS 수신료 인상저지 범국민행동’은 19일 낸 성명에서 “KBS가 수신료 인상에 앞서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되찾는 노력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촉구해 왔으나, 이사회는 이같은 요구를 무시한 채 수신료 인상폭만 놓고 논란을 벌이다 3천500원 인상안을 의결했다”고 비판했다.

범국민행동 측은 “야당 이사들은 '3500원 인상에 광고비중 유지'라는 기형적 타협안을 제출함으로써 수신료 인상 논의의 본질을 흐렸다”며 “수신료 납부거부운동을 포함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수신료 인상에 맞설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언론사유화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미디어행동)’ 역시 성명을 내고 “국민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인상 액수를 최소화하자고 했을 뿐”이라며 “광고 비중 유지 문제는 이사회의 결정으로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닌 만큼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에 대해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사회 합의는 끝났지만…후폭풍 남아

KBS 수신료 징수가 강제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불만도 거세질 전망이다.

KBS가 모델로 삼고 있는 일본의 NHK를 비롯한 해외 선진국들의 사례와 달리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포함시켜 강제징수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40% 인상에 대한 부담은 시청자가 안게 된다.

이미 80%가 넘는 시청자들이 유료방송을 시청하고 있음에도 보편적 방송 서비스의 대가를 인상시켜 시청자에 부담시킴으로써,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공기업의 배를 불려 줬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아울러, 무료 보편적 서비스인 KBS1의 시청료 인상으로 방대한 경영으로 인한 내부적 문제를 구조개편 없이 시청자들의 돈으로 해결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한편, KBS 수신료 인상 논의가 합의에 이르면서 종합편성·보도채널 선정 작업은 힘을 받을 전망이다.

지난 10일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신규 종편·보도 채널 선정을 위한 세부심사기준이 확정되면서 본격적인 사업자 선정 과정에 진입했다.

야당 측 위원들은 종편채널 선정을 앞두고 ‘KBS 수신료 인상, 미디어법 부작위 판결, 홈쇼핑 채널, 미디어렙 등 새로운 방송 플랫폼을 승인하기 전 최소한의 의문들을 제거하고 가야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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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중 위원장이 올 연말까지 종편 채널 선정을 마무리하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종합편성채널 선정기준이 의결된 직후 5개월을 끌어오던 수신료 인상안이 의결되면서 종편채널 선정의 걸림돌 중 하나가 제거된 셈이다.

하지만 광고 비중을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이사회에서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불구, 광고 비중 유지 문제는 이사회의 결정으로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KBS에서 빠져나간 광고가 종편채널로 흘러갈 것이라는 의혹은 계속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