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전자책, 생존하려면 킨들과 싸워야만 한다"

일반입력 :2010/11/04 15:36

남혜현 기자

내수 시장만 바라봐서는 한국 전자책 시장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시장 조사를 해보면 외국말로 번역된 한국책을 소화할 해외시장이 내수의 42배 규모란 결과가 나와요. 세계를 상대로 이런 국산 콘텐츠를 팔 플랫폼이 지금은 아이북스나 아마존 같은 해외 플랫폼 밖에 없습니다. 단말기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콘텐츠 제작자 등 업계가 합심해 글로벌 시장을 노린 자체 플랫폼을 만들어야만 승산이 있지요. 포기하긴 아쉽지 않겠어요?

전자책이 국내서 미처 싹도 틔우지 못했는데, 해외 시장을 노려야 한다는 주문은 너무 때 이른 얘기일까. 장기영 한국전자출판협회 사무국장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전자책 시장에 아쉬운 점은 내수시장 기반으로만 각축적인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한국형 글로벌 시장을 만들어 확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영 사무국장은 전자책 업계에선 나름 유명인이다. 20대 청년시절은 출판계에서, 30대엔 IT분야에 몸을 담았고 지금은 그간의 경험을 모아 한국전자출판협회 살림을 10년 가까이 도맡고 있다. 종이책 업계에선 IT적 시각을, IT업계에다가는 인문학적 시각을 보탤 수 있는 균형감을 갖고 있다는 게 그를 두고 내리는 세간의 평이다.

그의 얘기를 허투루 넘기기는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측면도 있다. 플랫폼은 이미 전자책 시장에서 최대 격전지로 떠올랐다. 그 중심에는 아마존 킨들과 애플 아이패드가 있다. KT나 SK텔레콤도 한국에선 힘좀 쓰고 있지만, 글로벌 플랫폼이 되기에는 한참 역부족이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플랫폼이 생존하기는 그만큼 어렵다.

그런데도 한국형 글로벌 플랫폼을 외친다? IT기술의 특징을 알고 있다면 쉽게 할 수 없는 얘기다. 장기영 국장에겐 독자적인 플랫폼은 한국 출판 업계의 미래가 걸린 이슈였다. 어렵더라도 한번 시도해볼 필요는 있다는 것이었다. 협회도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한국전자출판협회는 전자책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훨씬 전인 1992년에 생겨나 남들이 잘 모르는 새에 18년간 꾸준히 성장해온 국내 유일 전자책 관련 협단체다. 협회에서는 전자책도 종이책처럼 부가세 면세를 받도록 하는 인증제도와 전자책 개발, 창업 등에 대한 교육과정을 진행 중이다. 한국 출판계가 전자책 시장으로 발 빠르게 전환하는데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구글이나 애플과 차별화하기 위해 제조사, 유통업체, 콘텐츠 제공자 등 업계 관련자들이 합종연횡해 자꾸만 혁신적인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한다면서 협회에서는 이를 위해 컨설팅을 비롯, 전자책 시장화 활성화를 위한 전체적인 분위기 조성과 전체적인 발란스를 조율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협회가 ‘출판교육’에 공들이는 이유

종이책은 앞으로 더 가파르게 감소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출판사 직원들은 또 이직을 할 수밖에 없게 되겠죠. 그런데 한 평생을 출판업에서 일한 사람들이 어디로 옮길 수 있을까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미래를 찾을 수 있는 건 전자책밖에 없습니다.장기영 사무국장은 협회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를 전자책 개발과 창업에 관련된 교육으로 꼽았다. 협회는 파주에 위치한 아시아 정보문화센터에서 지난 2006년부터 전자책 교육을 시작했다. 대세는 이미 전자책인데, 이를 기존 출판업계가 무리없이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협회가 앞장서겠다는 거다.

종이책 출간은 돈이 많이 들고, 또 흥행한다는 보장도 안돼있죠. 전자책의 특징 중 하나는 내 노동력과 기획력만 있으면 무자본으로도 얼마든지 창업할 수 있다는 겁니다. 출판사 재직자나 저자 작가, 또는 다른 업종이어도 콘텐츠 생산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죠.

다행히 전자책 교육에 대한 호응도 달라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200명 수준에 머물렀던 교육 신청이 올해는 두 배인 500명에 달했다. 산업 트렌드부터 모바일을 포함한 전자책 개발, 전략 비즈니스 등을 다루는 다소 생소한 교육에도 참가자들이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한 것. 지난해까지만 해도 출판사 관계자들이 대다수였던 교육에 1인 차업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참가자 비율도 절반에 달했다.

장 사무국장은 당시만해도 출판사들이 전자책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낮았을 뿐만 아니라 적대적이기까지 했다면서 아마존 킨들이 이같은 인식을 바꿔놨다고 설명한다.

협회가 1인 창업에 집중한 이유에는 한국 경제가 수출주도형으로 성장했다는 점도 하나의 원인이 된다.

매년 최대 수출호황을 이루고 있다는 한국 경제지만 노동 유연성과 해외 현지 법인 전략을 더 중요시 하다보니 국내서는 돈이 안돌고 있다는 것. 그렇다고 선진국처럼 서비스 산업이 적극 육성된 것도 아니다. 청년백수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도 이때문이란 설명이다.

그는 전자책은 시장 특성상 내수 서비스 산업을 육성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애플 앱스토어에서 보듯이 글로벌 시장도 열려 있다면서 1인 창업은 '창조성, 기획력, 열정'만 있다면 얼마든지 승부를 볼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강조한다.

장 국장은 전자책을 게임산업과도 비교했다. 기획과 개발, 마케팅에 모두 대자본이 들어가는 게임에 비해 전자책은 얼마든지 혼자서 뚝딱거려 해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도전해 볼 수 있는 분야라는 거다. 종이책 시장이 기우뚱 하는 시점에서 출판이라는 특별한 분야를 살릴 수 있는 하나의 기회가 1인 창업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출판사 효자였던 번역서가 전자책 시장에선 아킬레스건

장 사무국장에 따르면 현재 국내 등록된 출판사는 3만1천여곳에 이른다. 그러나 이 중 1년에 단 한권이라도 종이책을 발간하는 곳은 8~9%에 불과한 2천700군데로 한정된다. 자세히 따지고 들면 이도 허수에 불과하다. 제대로 출판활동을 진행하는 곳을 추리면 1천여 곳으로 다시 줄어든다. 전체 출판 시장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독자들이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메이저급은 다시 300여 곳으로 압축된다.

다시 말해 서점에 진열된 대다수 도서는 3만여 출판사 중 1%밖에 안되는 곳에서 펴낸다는 얘기다. 소수의 출판사가 전체 출판계를 쥐락펴락 하는 것 외에 문제는 또 있다. 장 사무국장은 국내 출간되는 서적의 30%가 해외작품이라고 지적했다. 매출은 전체 판매액의 절반에 다다른다.어쩌다가 국내 출판계가 이런 이상한 구조가 됐을까.

출판 르네상스는 80년대 였어요. 사회과학 서적에 대한 수요가 어마어마하게 높았죠. 그런데 동구권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출판시장도 상업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 단행본 시장이 계속해서 줄어들게 된 거에요. 그러다 보니 출판사에서는 외부에서 검증된 작품을 사다가 팔면 백발백중이라는 의식이 퍼지게 됐어요. 외국 번역 도서 비중은 계속해서 늘어났고, 그걸로 수익을 보면 다시 판권을 사는 방식으로 안전한 길만 택하게 됐죠. 반대급부로 해외 저작물의 라이선스 비용은 높아지고 국내 창작물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게 된 거에요.

장 사무국장의 지적은 뼈아프다. 90년대 후반 이후로 출판계가 걸어온 길은, 나쁘게 보면 국내 저자층을 하청 노동자로 전락시킨 과정이란 설명이다. 이같은 현실은 전자책 시장이 형성되는 요즘, 출판사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와 아킬레스건이 돼버렸다.

그러다 전자책 시대를 맞았어요. 여기서 출판사들에게는 두 가지 딜레마가 생겨요. 외국도서도 (전자책) 전송권을 라이선스 해야 하는데, 값이 올라버렸어요. 종이책에 육박할만큼 해외 출판사서 값을 높게 부르죠. 선진국에서는 한국이 불법복제가 성행하거나 정산이 투명하지 못한 사회로 보는 경우가 많아요. 전자책 판매는 무한정 속일 수 있다는 거죠. 이 때문에 판권 확보도 쉽지 않고요. 지금 전자책 판매 사이트 들어가보면 해외 번역도서가 많지 않아요. 출판사 입장에선 이제서야 저자작가의 중요성이 보이기 시작한 거죠.

출판사 입장에선 이제 국내 창작물의 비중에 관심을 가질 때가 왔다. 그러나 이젠 저자작가도 위치가 달라졌다. 종이책처럼 출판의 장벽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유명 작가들이 전자책 플랫폼을 통해 1인 출판을 하는 경향처럼 왠만한 저자작가들은 언제든 자가 출간하는 것이 가능해서다.

그는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출판사들에 '매니지먼트'라는 새로운 역할을 제시한다.

MP3가 활성화되면서 음반 제작사들이 가졌던 헤게모니가 기획사로 다 넘어갔어요. 책도 마찬가지에요. 무명의 저자작가에 투자해 그들이 성과를 낸 후에 수익을 나눠갔는 상생전략을 출판사도 펴야해요. 이미 많이 늦었어요. 1~2년 사이애 시장 패러다임도 바뀌고 상황자체가 복잡해질텐데, 이같은 상황차이를 출판사가 미리 준비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전자책과 종이책 '상생모델' 만들어야

그는 최근 일고 있는 DRM 이슈나 전자책 형식 표준화에 대해서도 본질을 피해가는 이야기라고 일축한다. 이미 e펍이라는 스마트폰을 포함한 모든 전자책 단말기에 적용하기 쉽도록 개발된 형태가 있다는 거다. e펍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멀티미디어 재생 문제도 독일 등 해외 선진국을 중심으로 해결에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독일에서는 HTML5와 e펍의 호환성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멀티미디어 요소도 해결되죠. 내년 상반기에는 규약이 나올 예정입니다. 따라서 표준화 논의는 의미가 없게 되는 거죠. 사실상 표준화 논의는 아마존 킨들 때문에 생겨난 거에요. 킨들은 아마존 자체 포맷이니까요. 아마존이 영어권 전자책 시장을 독식하기 위해 내놓은 아이디언데, 아이패드 출시 이후에 아마존도 타격을 입었죠. 지금 보세요. 아마존도 아이폰, 아이패드용 킨들앱을 내놓으면서 다른 디바이스에서도 킨들에서 구입한 전자책을 보는데 아무 불편없도록 가고 있잖아요.

장 사무국장은 내친김에 출판사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전자책 시장을 대비하도록 주문했다. 유럽의 예를 들었다. 역사가 100년이 넘는 출판사를 여럿 보유한 유럽에선 서적의 데이터베이스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거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다녀와서 느낀 점이 많아요. 전시장 내에 핫 스팟 존을 만들고 디지털 저작물을 전시했어요. 왠만한 전시홀에는 다 디지털 핫스팟이 있었어요. 독일은 거의 100%가 전자책과 종이책이 동시 출간돼요. 유럽 같은 경우 디지털 출판에서 출판사가 가져 가는 몫이 커요. 이건 출판사가 전자책에 거부감을 갖기보단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승하려 노력했기 때문이에요. 한국도 시간의 문제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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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협회도 이같은 전자책 확산 흐름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앞으로 협회의 무게중심도 지원에 실릴 예정이다.

산업이 빨리 가야하므로 아예 모든 정보를 확 열어놓고 좋든 싫든 마구 퍼주려고 합니다. 협회가 할 일은 글로벌 전략과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형성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들어 주는 거에요. 교육에도 신경을 많이 쓸거고요.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더 빨리 가지 않겠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더 많은 관점과 가능성을 가지고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가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