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지역에 국한됐던 뉴욕타임스가 전세계에서 사랑받게 된 이유를 아십니까? 우선 스타벅스에요. 스타벅스가 전 매장에 뉴욕타임스를 깔면서 사람들은 그 지역 일간지보다 이 신문을 먼저 보게 됐죠. 그 다음 공은 '킨들과 아이패드'입니다. 이제 세계 어디서든 콘텐츠 품질에 따라 신문을 선택해 보게 됐어요. 트위터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잘 활용하면서 전문 칼럼니스트를 기용해 깊이 있는 뉴스를 제공한 게 뉴욕타임스가 뜨게 된 원인입니다.
김홍선 안철수연구소 대표는 IT업계에서 대표적인 얼리어답터중 한명으로 꼽힌다. 국내에 전자책 바람이 불기 직전이던 지난해 이미 아마존 킨들을 구입했다.
미국 출장길이었어요. 옆에 앉은 사람이 킨들을 쓰더군요. 내가 써보니 너무 좋다, 너도 한 번 써봐라 그러면서 추천을 하는거에요. 출장 갈 때 원하는 만큼 책을 다 담아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하냐는 거죠. 막상 봐보니 e잉크라는 게 이런 거구나, 볼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킨들을 샀어요. (종이)책으로 읽는 거랑 틀릴까 생각했는데 이젠 익숙해져서 그런지 더 편하고 좋더라고요.
이쯤되면 김홍선 대표도 한국 전자책 산업에 대해 한마디도 해도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출판사, 하드웨어 업체, 대형 서점 관계자들의 목소리만으로 한국 전자책 산업의 현주소를 대변할 수는 없는 법이다. 초창기인 만큼, 사용자 얘기를 직접 들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보안 전문가가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개인 자격으로 김홍선 안연구소 대표를 만났다.
■한국 온라인 서점, '킨들 UX' 배워라
눈치빠른 분들은 짐작했겠지만 김홍선 대표는 '킨들 예찬론자'에 가깝다. 아이패드가 나와도 킨들에 대한 애정에는 변함이 없다. 업무차 수시로 해외출장을 다니는 그가 보기엔 킨들은 이미 하나의 대세다. 해외에만 나가면 킨들 사용자를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거다.
무엇보다 아마존에서 저렴하게 원서를 사서 보고, 킨들에 내장된 사전을 통해 쉽게 번역할 수 있으며, 필요한 메모를 단말기에 수시로 적을 수 있어 편리하단다. 사무실에선 PC, 집에선 이미 아이패드를 들여다 놓고 쓰지만 이동하면서 책읽기에는 킨들만한 단말기가 없다고도 강조한다.
전자책을 향한 김 대표의 애정은 아직까지는 킨들에만 해당되는 얘기일 뿐이다.김 대표는 한국 전자책 단말기와 온라인 서점에는 불만이 있다는 표정이다. 킨들외에 한국 단말기를 살 생각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킨들 애플리케이션은 다양한 기기에서 호환성이 뛰어나죠. 아마존에서 구입한 책을 킨들뿐만 아니라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도 보게 됩니다. 인터페이스도 기계로서는 그만큼이면 충분하다고 봐요. 아이패드와는 달리 책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런데 한국 단말기에선 아직까지 이용할 수있는 양질의 콘텐츠도, 소비자들을 끌어들일만한 특별한 장점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결국 전자책 시장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구입할 수 있는 콘텐츠의 질에서 아직은 아마존을 더 선호하게 돼요. 10년을 넘게 이용하면서 쌓인 신뢰가 있죠. 외국 서적은 유서 깊은 출판사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책을 내놨다는 생각이 들게 해요. 그런데 한국은 너무 많은 책이 쏟아져 나와요. 한 권 집어서 읽다보면, 미안하게도, 그저 다이제스트판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 들정도로 깊이가 얕은 경우가 많죠. 콘텐츠의 질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누가 한국 전자책 단말기를 사서 그 콘텐츠를 읽으려고 하겠어요?
소비자를 '독서가'로 대하느냐, '구매자'로만 보느냐도 아마존과 국내 온라인 서점의 차이점이라는 지적이다. 쉽게 말해 한국 온라인 사이트들은 '하나라도 더 팔겠다'라는 인상을 강하게 주는 반면 아마존은 고객의 구입 히스토리나 연관 도서 목록을 보여주면서 '나의 선택'을 기다리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소비자 개인에게 맞춤으로 집중한다는 접근은 그가 10년째 아마존을 선택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다.
한국 온라인 서점은 백화점식이에요. 아마존은 소비자 개인에만 집중한다는 느낌을 주죠. 그런데 우리나라 웹사이트에서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만 해요. 접속하는 순간 플래시며 뭐며 이것저것 마구 떠서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줍니다. 아마존은 그런 부분 없이 개인이 선택을 주도할 수 있게 해요. 사이트와 상호작용할 수 있게 정보 중심으로 움직이죠. 책을 고르는 사람이 편안할 수 있게 말이에요.
■보안 1세대가 전자책 1세대에게
출판계는 좋든 싫든 전자책으로의 이행을 직감하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9월 기준으로 검색 가능한 국내 출판물 82만종 중 9%에 해당하는 7만2천권의 도서가 전자책으로 변환 완료된 상태다. 판매 가능한 출판물만 따져도 20%에 해당하는 수치다. 출판사들도 전자책 전송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 전자책 시장은 태동기에 불과하다. 실제 단말기를 사서 쓰거나 전자책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사람들은 소수다.
김홍선 대표는 업계에선 보안 1세대 전문가로 통한다. 보안이라는 분야가 한국에서 제대로 자리잡지 않았을 때, 그 중요성을 먼저 나서서 전파한 인물 중 하나다. 한 업계에서 1세대로 자리매김한 그가, 전자책 1세대들에게 전할 메시지는 무얼까.
예전에 교육과학부 디지털교과서 사업 추진단에서 하드웨어를 담당하던 사람을 만난 적이 있어요. 아이패드가 나오면서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군요. 한국은 그때까지 단말기든 콘텐츠든 모두 폐쇄형이었죠. 그런데 아이패드가 출시되니깐 갑자기 오픈환경에 맞닥트린거에요. 여기에 킨들까지, 국내 단말기들이 설 땅이 너무 좁아진거죠.
그는 한국 단말기 업체들이 장악할 시장이 너무 좁다고 지적한다. 국내용으로만 해서는 유의미한 시장규모를 만들어내기 힘들다는 것. 때문에 개방성과 글로벌화를 업계 성장의 주요 포인트로 끄집어냈다.
개방성과 글로벌, 이 두가지를 빨리 잡아야 해요. 국내시장은 얼마 되지 않아요. 인구가 몇천만명이 된다고 해도 뭘합니까. 우선 콘텐츠 시장이 없는데요. 일본은 우리의 수십배 규모에요. 무엇보다 콘텐츠나 소프트웨어를 사서 쓰는 문화가 중요한데 이런건 하루이틀안에 해결되는 건 아니죠. 우선 콘텐츠 유통구조를 먼저 봐야해요. 국내서도 얼마전 출간된 <전자책의 충격>을 보면 출판업계들이 비상이에요. 이 책이 하는 말은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으로 접근해선 안된다'에요. 한국에서도 정확히 일치하는 지적이죠.
그가 내놓는 비판은 매섭다. 한국의 출판업계가 어떤 전문성을 내놓을 수 있냐는 거다. 유명 작가들을 앞세운 일명 '네임밸류 마케팅'이라든가 대형 출판사들이 수천만원의 돈을 쏟아붓는 광고 수준에 머물러서야 시장을 키울 수는 없다는 것.
좋은 책이 성공하려면 지식인 집단이나 독서가들로부터 신뢰를 쌓은 사람들의 보증이 우선 필요하다는 게 그가 내놓는 해법 중 하나다. 그가 <전자책의 충격>을 구입하게 된 이유도 트위터 때문이라 했다. 트위터를 통해 좋은 책 꼭 한번은 읽어야 할 책이라는 입소문을, 직접 읽은 사람들이 내놓게 되면 우선 믿고 구입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어쩌면 출판시장에는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돈이 많이 들어가는 마케팅보다는 콘텐츠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한국의 양서를 수출할 수 있는 길도 있어요. 언어 문제는 인터넷 환경에선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죠. 특히 일본이 빨리 움직여주면, 비슷한 문화권인 한국도 분명 그렇게 될 겁니다.
사용자들이 양질의 콘텐츠에 눈을 뜨게 되면, 단말기 구매자도 늘어나게 될것이다. 그가 보는 전자책 시장 선순환 구조다.
■1인출판, 나도 도전해 보고 싶다
그는 전자책업계의 새로운 마케팅 출구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주목했다. 김홍선 대표 그 자신도 열광적인 SNS마니아다. 그는 이미 개인 블로그와 트위터를 운영하며 수천명의 팔로워와 친구를 맺었다.
한국 서점에 가보면, 제목이나 광고 문구는 그럴 듯 한데 막상 집어보면 읽을만한 책이 없는 경우가 많죠. 차라리 전문성을 가진 사람, 독자 타겟이 명확한 사람은 전자책으로 출판해 SNS로 마케팅 하는 경우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에는 트위터라는 공간이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는 믿음이 전제됐다. 마구잡이로 달리는 서평보다는, 실제로 그 책을 읽은 사람이 트윗을 통해 한두마디씩 언급하는 게 책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낫다는 것이다.
또 IT나 몇몇 전문적인 분야의 트렌드 변화를 전자책에서는 반영할 수 있다는 것도 김 대표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트위터나 블로그를 하다보니 이것도 얘기가 되네라는 생각이 추가적으로 자꾸 불어나요. (종이)책이라는 건 한 번 내면 끝인데, 전자책에서는 계속 추가 사례가 들어가면서, 마치 소프트웨어처럼 재탄생 될 수 있다는 거죠. 소셜미디어와 소통이 되는 그런 부분이 난 아주 좋은거 같아요.
듣다보니 김홍선 대표가 머지않아 1인출판에 도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그는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쏟아냈던 이야기를 잘 정리해 책임감 있는 책을 한 권 내놓고 싶어한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한 권 정도는 쓰고 싶어요. 이미 블로그나 트위터 등에 정리된 이야기들도 있고요. 한달만 시간이 나면 쓰고 싶은데 그 정도 시간이 안생기네요. 솔직하게 말해서 책임있는 책을 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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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최근 예전에 즐겨 읽었던 존 그리샴의 소설들을 전자책으로 다시 구입하고 있다고 한다.
콘텐츠만 좋다면 종이책으로 구입했던 책들도 다시 전자책으로 사보게 되더군요. 언제 어디서나 꺼내 읽을 수 있으니까요. 저는 1년 후 정도면 종이책 대신 전자책만 사서 보게 될 거 같아요. 한국 전자책 시장이 성공하려면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파악해야 합니다. 질좋은 콘텐츠를 소비자가 거리낌 없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