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서점도 전자책으로 춤출 시간이 왔다"

일반입력 :2010/09/07 08:49

남혜현 기자

오프라인 서점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코너가 어딘지 아십니까? 바로 '사전'코너에요. 그렇다고 사전업계가 망했을까요? 매출액만 보면 100억 원 규모 시장이 600억 원으로 성장했습니다. 종이 사전이 사라졌을 뿐, 오히려 사전 시장은 덩치를 급속히 키워나가고 있는 거죠.

전자책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출판업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론을 부정하는 거대 서점 관계자의 발언이다. 전자책과 종이책이 윈윈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성대훈 교보문고 디지털콘텐츠팀장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전자책 시장에 걸림돌이 될만한 문제는 거의 다 사라졌다면서 종이책과 전자책 간에 존재하던 껄끄러운 문제들이 이제 거의 사라지는 분위기라고 힘주어 말했다. 대형 서점 입장에서 전자책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도 분명히했다.

앞서 아이리버 양동기 부사장은 전자책 시장에서 개인적인 관심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형서점들이 전자책 시장을 키워나갈지 복안이 있는지 여부를 대답으로 내놨는데, 그의 궁금증은 어느정도 풀리지 않았나 싶다. 성대훈 팀장은 지난 5년간 밭을 갈고 씨를 뿌려놨으니 이젠 싹을 틔울 차례라며 전자책 시장 공략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교보문고, 전자책 시장은 실패하지 않았다국내에선 많은 사람들이 전자책 단말기를 실패한 모델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메이저급에 속하는 아이리버, 삼성에서 내놓은 전자책 단말기 판매량이 킨들처럼 폭발적이진 않았죠. 양동기 아이리버 부사장님 질문도 전자책 사업 생태계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하신 질문으로 보여요. 그런데 놓치고 있는게 있어요. 전자책 사업 성패가 전자책 전용 단말기 만으로 결정 되는 겁니까?

성대훈 팀장은 첫 질문부터 까칠하게 대답한다. e잉크 기반 전자책 단말기가 안 팔린다고 전자책 시장 자체가 실패하는 거냐고 되묻는다. 결과적으로 따지고 보면 전자책 시장은 오히려 크고 있다. 아니, 놀랄 정도로 급성장 중이다. 그가 꺼내놓은 차트에 따르면 교보문고에서 판매된 전자책 콘텐츠는 올해 8월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9배 이상 늘었다.

물론 그 모멘텀에 전자책 전용 단말기가 있었다는 건 성 팀장도 인정한다. 삼성 파피루스, 아이리버 스토리, 갤럭시S 등이 연달아 출시될 때마다 콘텐츠 판매량이 급신장했다. 전용 단말기가 출시되면서 전자책에 대한 인지도가 늘어난 것만큼은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제는 단말기의 성패와는 별도로 이미 전자책 시장이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해 나가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그는 주장한다.

예전에는 무협, 멜로 등 장르문학에서만 일부 활성화 됐던 게 전자책이었다면 이제는 소설, 경제경영, 자기개발, 학습 등 판매 분야가 종이책 카테고리와 비슷해지고 있어요. 일반 독자들도 전자책을 보기 시작했다는 거죠. 전자책의 성패가 '얼마나 많은 콘텐츠가 소비되는가'에 있다면, 이는 의미있는 성과 아닌가요?

교보는 한동안 삼성전자 단말기를 전용 단말기로 내세웠었다. 그러나 판매량은 저조했다. 교보가 전자책 시장에 진출하긴 했지만 사실상 실패한것 아니냐는 소리를 듣는 이유다. 이뿐 아니다. 시장에서는 아마존 킨들같은 역할을 교보에 요구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대형 서점을 중심으로 전자책 시장이 급성장하는데 국내 대형서점은 손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책임 부재를 힐난하기도 한다.

성 팀장은 이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겉으로 내세우지 않았지만 교보는 차근차근 내실을 다지는 중이라고 설명한다. 또 미국하고 일 대 일로 비교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라 덧붙인다. 미국과 한국은 엄연히 다른 상황이라고도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전자책 이야기를 하면서 미국 상황만 예를 들고 있죠. 그런데 한국과 미국이 같습니까? 미국 얘기 말고, 한국 얘기를 해야 합니다. 국내 시장은 규모가 작아요. 아마존이 100만대 팔았다면 우리나라에서 1만대만 팔려도 많이 팔렸다고 봐야 합니다. 한국의 대형 서점은 미국 반즈앤노블이나 일본 기노쿠니아 서점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성장했어요. 전자책 시장도 한국만의 독특한 시장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교보의 강점은 ‘소비자 접점’

성 팀장에 따르면 한국의 특별한 상황은 '오프라인 서점의 활성화'에 있다. 전세계 어느 서점에 가더라도 대형 서점에 이렇게 사람이 와글거리진 않는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달 27일 재개장한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이틀만에 15만명의 방문객을 맞이했다. 반즈앤노블도, 기노쿠니아 서점도 실제로 매장을 찾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때문에 한국에서는 디지털 고객과 오프라인 고객을 동시에 붙잡아야 한다고 성팀장은 강조한다.

“지금 전자책 논의에선 산업 입장만 야기되고 있조. 고객은 빠져 있어요. 교보문고는 소비자와 가장 밀접하게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있습니다. 바로 온․오프라인 서점이죠. 서점에서 전자책 단말기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왜 구입하는가'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설사 단말 가격이 비싸더라도 효용성이 있다면 구입하는게 소비잡니다.

성대훈 팀장은 꺼내든 '고객' 키워드는 전자책 시장에서 중요한 관점이다. 하드웨어 단말이 보급되지 않아서다, 콘텐츠가 부족해서다 여러 논의가 오가지만 실상 전자책이 활성화 되지 않는 것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부족이라는 주장이다.

“돈만 보고 뛰어든 콘텐츠 제공업체와 하드웨어 제조사 모두 문제죠. 2년 전만 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던 전자책이 킨들로 이슈가 되자 돈이 된다고 생각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성급히 뛰어들었으니 활성화가 안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실제로 성 팀장이 보는 전자책 시장은 그 어느때보다 활성화 단계다. 하드웨어도 더 이상 좋을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많이 보급됐고, 콘텐츠 부족도 빠른 속도로 해결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현재 교보문고에서 검색 가능한 국내 출판물 82만종 중 9%에 해당하는 7만2천권의 도서가 전자책으로 변환 완료된 상태다. 판매 가능한 출판물만 따져도 20%에 해당하는 수치다. 올해는 연평균 출간 예정 종수인 6만종의 20%인 1만2천 종에대해서도 전자책으로 변환한다는 계획이다.

전자책에 걸림돌이 될 만한 문제는 거의 다 사라졌다고 봐야해요. 아직 출판사와 유통사간 힘겨루기, 콘텐츠 독점 등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문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정리가 될 거라고 봅니다. 교보 입장에선 지난 5년은 밭에 씨도 못뿌리고 돌만 골라낸 시기였다면 올해 드디어 씨를 뿌린 거에요. 앞으로 4~5년은 더 손해볼 각오로 매진할 겁니다.

■문제는 출판사, 위기 의식 더 가져야

교보문고는 최근 의미있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PC보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전자책 콘텐츠를 다운로드 받은 수가 많아진 것. 태블릿, e잉크 단말기, 스마트폰 등 이제 전자책을 볼 수 있는 모바일 기기는 천지에 깔렸다.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 될 것만은 틀림없다는 게 성 팀장이 몇번씩 강조하는 얘기다.

그가 마지막으로 겨눈 칼 끝은 출판사로 향한다. 전자책 시장을 우려하는 출판계가 진짜로 걱정하는게 뭔지 솔직하게 털어놓으라는 주문이다.

출판사에서는 불법복제나 저작권 문제를 걱정합니다. 그런데 박범신 작가의 '촐라체'는 인터넷으로 연재하는 동안 100만명의 독자가 봤지만 종이책으로도 10만권이 나갔어요. 기존 종이책 판매량만큼 나간거죠. 이건 종이책 시장이 줄어드는 게 아니에요. 새로 시장이 만들어지는 거죠. 다행히 최근들어 출판업체도 인식을 같이 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다수 출판사들은 걱정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생각을 털어놓고 함께 시장을 키워가야 해요.

성 팀장은 다음 인터뷰를 준비하는 기자에게 출판사 입장을 물어달라 했다. 전자책으로 재편되는 시장 변화에 대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저작권이나 전송권 등 다가올 권리 분쟁에 대해서도 대비하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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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출판사 관계자를 만나게 될 듯 하다.

미국에서 킨들이 300만대가 팔렸어도, 인구 수를 따져본다면 전자책은 아직 초기 시장이다. 그러나 업계 관심도는 이미 포화상태다. 디지털화가 출판업계의 한 변화 축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디지털화와 전송권을 둘러싼 출판사의 체감온도가, 그래서 기자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