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의 공습, 책은 사라질 것인가?

일반입력 :2010/11/03 14:54    수정: 2010/11/03 20:45

남혜현 기자

국내에 출시되지는 않았지만 아마존 킨들과 애플 아이패드가 국내 출판 시장에 몰고온 충격파는 컸다. 출판 업계에 초대형 변수가 등장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출판 생태계의 미래를 놓고 이해 당사자들이 논쟁하는 장면도 수시로 연출된다.

'전자책 확산으로 앞으로 책의 개념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종이책에 의존하는 출판사들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전자책 유통을 주도하는 핵심 플랫폼은 누가 틀어쥘 것인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질문에 대한 대답들도 아직은 제각각이다. 출판사는 출판사대로, 통신사는 통신사대로, 서점은 서점대로 할말이 너무 많다.

분명한 것은 출판 산업은 이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지에 따라 의견이 다를지 몰라도, 변화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이는 드물다. 방법론을 놓고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디넷코리아는 그동안 전자책 생태계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을 상대로한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해왔다. 인터뷰에선 출판의 미래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거룩한 담론 수준이 아니었다. 인터뷰이들은 업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주제들을 독자들과 적극적으로 공유했다.

이것은 전자책 생태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별 인터뷰만으로 복잡한 이해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에 지디넷코리아는 지난달 28일 인터뷰에 응해준 전문가 중 네 명을 초청해 좌담회를 마련했다.

예상대로 분위기는 뜨거웠다. 출판사와 서점 그리고 출판 유통 업체간 공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너는 너, 나는 나'식의 논쟁은 아니었다. 신뢰에 기반한 토론을 계속하다보면 의미있는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엿보였다.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분위기도 풍겼다. 좌담회 내용을 정리했다.

-일시 : 2010년 10월 28일(목) 오후 5시30~7시 30분

-장소 : 지디넷코리아 사무실

-사회: 황치규 지디넷코리아 엔터프라이즈/컨수머 팀장

-참석자 : 이중호 북센 미래사업본부장, 양동기 아이리버 부사장, 성대훈 교보문고 디지털콘텐츠사업팀장, 정은선 위즈덤하우스 멀티콘텐츠사업 부서장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힘의 변환 일어난다

좌담회 시작은 출판 생태계에 대한 현안점검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한국은 미국과는 시장 풍경이 달라 보였다. 종이책 판매는 줄었는데, 전자책 판매가 그만큼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반 성장하는 미국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업계의 딜레마가 느껴졌다. 특히 볼만한 콘텐츠가 부족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이중호 본부장이 포문을 열었다. 그는 아마존이 미국 전자책 시장을 독점할 수 있던 데에는 콘텐츠 확보가 컸다면서 국내 출판사들은 소수 메이저 업체를 제외하면 콘텐츠 측면에서 준비가 덜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아마존은 현재 미국 전자책 시장의 78%를 차지하고 있다. 70만 종이라는 방대한 전자책 콘텐츠가 아마존의 힘이다. 팔 수 있는 절대 콘텐츠 수가 부족하면 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 애플이 아이패드로 아이북스를 띄우고 있지만, 실제 판매가능한 콘텐츠 가짓수는 2만5천여 종에 불과하다. 콘텐츠만 놓고보면 아마존과 크게 밀린다는 것이다.

성대훈 팀장도 거들고 나섰다. 그는 이미 국내서도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힘의 변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미국은 종이책과 전자책이 함께 성장한 행복한 사례라면서한국은 이와 달리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패러다임이 전환(Shift)되고 있지만 전자책 판매량이 종이책 판매 감소를 상쇄할 만큼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교보문고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S에서 전자책을 판매한 이후 월 매출 신장률이 90% 이상 성장하고 있다. 연초에 비하면 400% 이상 올라간 수치다. 그렇지만 교보문고 수익 대부분은 아직 오프라인 서점에서 발생한다. 성 팀장은 전자책 콘텐츠 판매량이 실질적으로 성과를 보이려면 지금보다 10배 수준은 돼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콘텐츠에 대한 고민은 출판업체에서 더욱 진하게 묻어난다. 정은선 실장은 아이폰이 나오고 나서 체감하는 출판 매출은 상당히 낮아졌다면서 그러나 거기에 비해 전자책 시장이 열렸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아이폰, 아이패드, 전자책 단말기 등 독자들이 소비할 수 있는 매체들이 다양화 되면서 출판계에도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출판사들이 적극적으로 전자책으로 나아가기엔 미진한 상태란 설명이다.

유통 업체들과는 미묘한 입장 차이가 느껴진다.

그는 출판사들이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이긴 하다면서도 아직 시장이 안 열려서 (전자책으로) 적극적으로 가기엔 그렇고, 그렇다고 (종이책으로) 출판을 계속 진행하자니 시장은 자꾸 작아지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전자책 단말기 제조업체 입장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양동기 부사장은 국내 시장은 콘텐츠와 단말기가 모두 부족하고 시장도 작은데 DRM 등 여러 이슈로 쪼개져 있기도 하다면서 단말기를 산 사람들 입장에선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콘텐츠가 많아져야 제품 구매를 합리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플은 왜 아이북스를 만들고 킨들을 못 눌렀나?

콘텐츠 부족에 대한 얘기는 계속됐다. 콘텐츠가 부족하면 제아무리 뛰어난 기업이나 단말기라 하더라도 전자책 시장에선 승부를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애플이 아이패드를 출시하며 야심차게 선보인 전자책 스토어 ‘아이북스’는 예상보다 부진한 성과를 내는 것도 콘텐츠 부족 때문이었다.

이중호 본부장은 “아이패드가 나와서 아이북스가 아마존보다 경쟁력이 생긴 것은 아니다”라며 “콘텐츠가 없다면 아이패드든 갤럭시탭이든 (전자책 시장에) 큰 영향을 못 미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콘텐츠 가격 정책도 문제로 거론됐다. 애플은 출판사가 가격을 결정하고 수익의 30%를 나눠갖는 '에이전시 프라이스 모델'을 채택했다. 때문에 출판사 입장에선 소매가를 높일수록 유리하다. 그러나 소비자는 반대다. 같은 콘텐츠를 아마존 킨들에선 9.99달러에 구매할 수 있는데 굳이 12.99달러를 내면서 아이북스를 찾을 필요는 없다.

성대훈 팀장은 소비자들이 단말기가 더 좋다고 해서 콘텐츠 가격을 더 지불하면서 아이북스를 찾지 않는다면서 아마존은 이미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용 킨들 앱을 내놓고 여러 디바이스에서 해당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모델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콘텐츠 가짓수만 늘어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성 팀장은 교보문고에서 판매되는 전자책 1위는 유머집이라면서 판타지, 로맨스 등 장르 문학이 전자책 베스트셀러를 석권하고 있어 사실상 문학이나 오프라인 베스트셀러랑은 판이한 판매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책 시장이 성장하려면 출판사들이 나서서 양서를 포함한 신간을 전자책으로 출간하려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가 원하는 것은 ‘책’이 아닌 ‘콘텐츠’

물론 전자책 콘텐츠 확충 문제에 출판사들이나 유통업체들이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위즈덤하우스가 최근 '박선주의 하우 송'을 전자책용 앱으로 내놨듯, 출판 업계에선 종이책을 모바일이나 멀티미디어와 접목시키려는 노력들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변환하는 것만으로는 소비자 눈높이를 맞출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전자책 앱을 만드는 것이 실질적으로 출판사 재정에도 도움이 안된다는 얘기도 많이 들린다.

이중호 본부장은 토이스토리처럼 소비자들이 보고 만족할만한 전자책 앱을 만들려면 3천만원 가량 투자비가 든다면서 무료나 홍보용으로는 좋겠지만 실제로 독자들이 (유로로) 다운로드 받을지는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아이패드 처럼 멀티미디어에 특화된 단말기 사용자들이 다양한 용도로 구매할 수는 있을지언정 죽어가는 단행본 시장 살리기에 앱 형태로는 어림도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출판사가 현재 앱 형태로 나타나는 전자책보단 한 걸음 더 나갈 것을 주문했다.이 본부장은 일렉트로닉북(전자책)이라는 자체가 기존 (종이)책을 전자화해서 보는 개념으로는 길어야 5년일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그는 여행책이면 구글 맵 API와 연계되는 등 다른 콘텐츠와 연계해서 사용되는 확장이 있어야 한다면서 해외에서처럼 콘텐츠 쉐어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와 연동해서 가는 형태로 진화해야 할 것이라 덧붙였다.

단행본이 살아 남기 위해서 결국 책이 갖는 고정관념 자체를 책이 먼저 파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의 e북 마저도 오래된 개념이라는 것. 독자가 전자책 단말기에서 책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문단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곧바로 옮길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로 진화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아직까지 국내 출판계에선 이같은 주장을 적극 수용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이 본부장은 설명했다.

성대훈 팀장은 “가장 큰 변화를 위해선 돌아갈 수 있는 배를 폭파시킬 것”을 주문했다. 다소 급진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극약처방 없이는 다가오는 전자책 시대에 어떤 것도 회생할 수 없다는게 이유였다.

그는 또 정형화된 책이 사라지면 출판업계 경쟁 구도가 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작가와 창작물 그 자체가 보다 중요해질 것이란 얘기였다. 누구나 흥미를 가질만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기획서 하나만으로 투자자를 모집할 수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1인 출판인들의 몫이나 행동반경이 그 어느때보다 커질 수 있다는 뉘앙스로 들렸다.

출판사 역할도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란데는 이견이 없었다. 출판사들이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API를 보고 연관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또 서적관련 정보를 판매하는 메타출판사로 거듭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한국도 '아마존'같은 리더가 필요하다

전자책 시장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적지 않다. 초기 단계이다보니, 업체간 이해관계는 복잡할 수 밖에 없고, 판을 이끌어나가는 확실한 리더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양한 기술이 공존하는 것도 소비자 입장에선 반길만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 앞서 깃발을 메고 나설 이가 필요하다

양동기 아이리버 부사장은 전자책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국내서도 아마존 같은 주체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마존처럼 초기 손해를 보고서라도 관련 시장을 키울만한, 자본력과 배짱을 갖춘 선발업체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연스레 그 깃발을 누가 멜 것이냐로 넘어갔다. 멜론이나 도시락으로 국내 MP3시장을 꿀꺽 먹어치운 이동통신사도 후보자로 올랐다. KT는 쿡북카페로, SKT는 최근 예림당과 손잡고 전자책 콘텐츠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채비를 갖췄다. 플랫폼 사업자이니만큼 실제로 전자책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만만치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동통신사로 곧바로 힘의 전이가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토론 참가자들 모두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성대훈 팀장은 국내 전자책 시장은 이통사보다는 유통업체나 단말기 회사 중심으로 흘러왔다면서 그러나 통신망을 빼놓고 이야기를 못하기 때문에 헤게모니 싸움이 진행 중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격변기에 싸움에서 이기는 쪽이 메인 플랫폼이 될 거란 설명이다.

향후 독서경험의 변화를 묻는 마무리 질문에선 단순히 텍스트를 뛰어넘은 콘텐츠간 융복합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은선 실장은 출판사가 어떤 핵심역량을 가져갈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있다면서 저자와 출판사가 얼마나 네트워킹을 충실히 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동영상을 텍스트에 임베디드 하는 형태를 넘어서 드라마, 영화 등 콘텐츠 장르를 넘어선 융복합도 미래의 책에서는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다.

양동기 아이리버 부사장은 “아마존의 직격탄을 맞은 유럽 영어권 국가들은 따라잡기 전략을 쓰다가 점점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비영어권인 한국은 그만큼 시간을 벌은 셈이기 때문에 함께 시장을 보호하고 발전시킬 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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