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애매모호한 탈(脫)통신을 화두로 던졌을까? 클라우드 컴퓨팅을 강화하겠다거나, 아이폰에 맞설 대항마를 내놓겠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해외 시장에서 이루지못한 한을 풀어보겠다고 했으면 훨씬 속시원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졌을 텐데….
IT업계에서 한동안 야인으로 지냈던 이상철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올초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복귀하고 '탈통신'을 외쳤을때 든 생각은 대충 이렇게 요약된다.
고백하면 피부에 확 와닿지가 않았다. 통신 분야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선수인 그가 외치는 탈통신이란 구호는 느닷없고 공허했다.
이상철이 누구인가? 굴지 통신 업체인 KTF, KT 사장을 거쳐 정보통신부 장관까지 역임했고 지금은 LG그룹 통신 사업을 총괄하는 자리에 오른 거물급 인사다.
이런 백그라운드를 가진 그가 탈통신을 외치는 장면은 사업 다각화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으로 비춰질 뿐이었다. 그 이상의 비전을 담기에 탈통신이라는 말은 모호했다. 어울리지도 않아 보였다.
그런데도 이 부회장은 탈통신이 유발하는 모호함을 즐기는 듯(?) 하다. 지금도 틈만나면 '탈통신' 얘기다. 탈통신이 사업 다각화로만 해석되면 곧바로 태클을 건다. 그 이상의 비전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 이름도 아예 탈통신에 어울리는 LG유플러스로 바꿔버렸다. 탈통신도 모호하게 들리는데, 바뀐 회사 이름도 만만치 않다. 많은 이들에게 LG유플러스는 업종 파악이 잘안되는 뉘앙스를 풍긴다. 실제로 낯설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는 탈통신에 담긴 모호함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묻게 된다. 통신 분야에 정통한 이상철 부회장은 많은 것 중 왜 탈통신을 필승카드로 뽑아들었을까? 그 실체는 무엇일까? 언론에 비춰진 메시지들이 전부일까? 통신을 주특기로 하는 LG유플러스는 DNA를 확실하게 개조할 수 있을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래서다. 야인에서 '강호의 세계'로 컴백한 이상철 부회장과 오랜만에 마주하는 순간, 탈통신의 실체를 좀더 파헤치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탈통신으로 그와의 인터뷰를 시작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사양 산업으로부터의 탈출은 당연한 수순
통신 시장의 출혈 경쟁은 이제 뉴스도 아니다. 서비스 업체들이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은 익숙한 장면이다. 상호 비방전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시쳇말로 초딩들 저리가라다. 시장이 포화돼서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이 부회장 표현을 빌리면 통신은 사양산업으로 전락했다. 여기서 빠져나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 탈출에 실패하면 LG유플러스의 미래도 없다. 탈통신은 익숙한 과거와 확실하게 결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탈통신은 반드시 가야할 길입니다. 솔직히 통신은 이제 한물갔어요. 일본의 경우 10여년 전에 '통신붕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에요. 포화될 때로 포화됐습니다. 가입자가 2천만명될때까지는 잘나갔죠. 호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때요? 인터넷전화(VoIP) 등 파괴적인 기술들의 등장으로, 그나마 있던 시장도 지키기 힘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략을 바꿀 수 밖에 없죠. 탈통신을 화두로 던진 이유입니다. 탈통신은 기존 통신 시장 패러다임을 넘어서자는 개념이에요.
결국 탈통신은 이 부회장이 LG유플러스를 KT와 SK텔레콤에 밀리는 넘버3 통신 업체로 계속 놔두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판을 뒤흔든 뒤 새판을 짜고 거기서 1등이 되겠다는 것이다. 3위에서 1위로 올라서기 위한 야심만만한 승부수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탈통신은 그 의미가 모호한 것도 사실. 쉬운듯 하면서도 이해가 잘 안된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음성·문자·데이터는 이제 물이나 공기처럼 일상재가 됐어요. 일상재를 갖고 더 이상의 가치를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한 단계 더 올라가 실제 생활속에서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교육·의료·금융, 뉴스, SNS를 통해 음성과 데이터에 부가 가치를 줘야해요. 핵심은 컨버전스(융합)입니다. 탈통신의 키워드도 융합입니다. 융합만이 고객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줄 수 있습니다.
- 컨버전스는 사실 새로운 얘기는 아닙니다. 몇 년 전부터 이슈가 됐던 것인데, LG유플러스에게 확실한 차별화 전략이 될 수 있을까요?
기술보다는 고객을 봐야 합니다. 흔히들 기업과 가정 그리고 개인 사용자가 있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고객은 나눠지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에요. 고객 관점에서 봤을때 탈통신은 고객의 모든 생활을 책임지겠다는겁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 업무를 보고 집에 올 때까지 고객이 원하는 모든 서비스를 일관되게 제공하겠다는 거죠. 고객을 보면 새로운 가치들은 쏟아집니다.
차별화에 대한 이 부회장의 얘기는 계속된다. 할 말이 많다. 차세대 IT패러다임으로 급부상한 클라우드 컴퓨팅은 탈통신을 현실화시켜줄 수 있는 전략적 무기였다.
클라우드 방식으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생각 중입니다. 해외 사업자들도 아직 실현하지 못한거에요. 현실화되면 언제 어디서나 통합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게 LG유플러스가 강조하는 U컨버전스의 기본 개념입니다.
-탈통신을 위해 우선적으로 추진할 프로젝트는 무엇입니까?
국민들이 탈통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우선이죠. 혁신적인 U컨버전스를 위한 기반은 ACN(AP Centric Network)과 LTE(Long-Term Evolution), 크로스 플랫폼, 클라우드 등에 둘거에요. 디지털 해방을 위한 첫번째 프로젝트인 ‘온국민은yo’ 요금제는 이미 출시했고 다음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ACN을 구축할거에요. 일단 클라우드 서비스가 시작되면 다양한 탈통신 사업에 착수할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 2~3년 뒤 통신 이외 분야에서 1조원 가량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어요.
-LG유플러스란 회사 이름은 직접 지은건가요?
사내공모를 통해 경영진이 결정했습니다. 여러 단어를 생각했고 탈통신을 제대로 설명하는 이름이 필요했어요. 보다폰은 보이스폰, 버라이즌은 버티컬 유비쿼터스란 개념이 들어있고, 스프린트는 남보다 더 뛰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O2는 ‘산소 같은’이란 뜻이잖아요? 탈통신에서는 C하고 T란 글자는 빼고 싶었습니다. 그런만큼 U는 최고의 글자였어요. U에 플러스(+)를 붙이면 바로 컨버전스가 됩니다. U는 유비쿼터스, 플러스는 컨버전스이고, 이것이 합쳐져 유플러스입니다.
■탈통신에 맞는 조직 DNA 만들겠다
LG유플러스는 국내 통신 시장에서 랭킹 3위다. 꽤 오래전부터 자타공인 넘버3다. 그것도 확실한 넘버3다. 이상철 부회장도 알고, LG유플러스 말단 직원도 알고 이동통신 가입자 대다수들도 아는 사실이다.
이같은 인식을 깨기 위해 이 부회장은 탈통신에 승부를 걸었다. 사양산업인 통신에선 넘버3일지 몰라도 블루오션인 컨버전스에서는 넘버원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어려운 법. LG유플러스는 여전히 통신 업체다. 나름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지만 일반인들에게 LG유플러스는 그저 LG텔레콤에서 바뀐 이름일 뿐이다. 통신 업계 넘버3라는 점도 달라지지 않았다.
LG유플러스가 아무리 탈통신을 외친다해도 밖에서 통신 업체로 생각하면 탈통신 승부수는 거룩한 얘기에 그칠 공산이 높다. 외부를 상대로 이미지를 바꾸는 것을 만만하게 보고 접근하면 망신을 당하기 십상이다. 아직도 IBM을 메인프레임 회사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고정관념이란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변한다.
이 부회장이 이를 모를리 없다. 탈통신을 위해 LG유플러스 내부 조직원들의 DNA 개조를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넘버3 브랜드로 고정돼 있는 것은 분명 위협요인입니다. 경쟁사보다 고객이 적다는 점도 그렇죠. 하지만 위협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없으니까 가져올 수 있는 유리함이 있잖아요? 3위라고 해도 이제 이름 바꾸고, 탈통신을 들고 나왔으니 신선도 측면에서는 우리가 유리합니다. 이런점들이 전사적으로 공유될 수 있도록 소통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임직원들의 각오가 아주 남달라요. 한번 해보겠다는 의지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탈통신에 맞는 기업 문화를 위한 조건들도 있을텐데요.
지금까지 통신 업계는 마케팅에서 출혈 경쟁을 벌이느라 R&D 투자를 통한 신성장동력 발굴에 소홀했던게 사실이에요. 통신 사업자들은 이제 과도한 마케팅 경쟁을 지양하고 기술 및 서비스를 통한 경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어요. 애플이나 구글같은 기업들은 외형이 크지 않음에도 미래 가치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도 구글과 애플처럼 가치로 인정받는 회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려면 유연하게 창의적인 사고를 가진 기업 문화가 필요하겠죠. 고객 한 사람 한사람에게 꼭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줄 아는 능력도 요구되고요. LG유플러스는 이런 가치를 창조하는 기업이 될 것입니다.
탈통신의 실체를 좀더 파헤치기 위한 인터뷰이지만 통신 업계 대표적인 인물중 하나인 이 부회장에게 통신 시장 현안에 대한 입장을 묻지 않을 수 없다.
- MVNO와 와이브로의 미래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MVNO를 할 때 와이브로만 갖고 하기는 어렵다고 봐요. 기존 네트워크에 와이브로를 더하면 폭이 넓어집니다. MVNO 하려면 음성, 데이터 MVNO가 아니라 플러스 알파를 제공할 수 있어야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와이브로 전국망이 깔릴때까지 기다리면 시간이 걸리는 만큼, 차라리 ‘와이브로+MVNO’에 기존 이통사와 손잡는게 현실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 식으로 협력을 함으로써 파이를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와이브로와 MVNO에 대해서는 새로운 생각과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봐요.
-와이브로 기술이 4세대 이동통신 시장에서 주류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요?
와이브로는 타이밍을 잘 못맞춘 것 같아요. 와이브로는 이동 중에도 끊김없이 무선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최적의 솔루션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발전을 못하니까 와이파이(Wi-Fi)와 롱텀 에볼루션(LTE) 기술이 치고 들어왔습니다. 물론 틈새시장은 아직 있어요. 그러나 와이브로가 차세대 통신에서 주류가 되기는 힘들겁니다. LTE는 가능하다고 봐요. 와이브로가 좀 일찍 나와서 표준이 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IPTV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IPTV가 TV로 보고 콘텐츠 구입하고 가입자 늘리는데만 주력한다면 결국, 케이블 업체와 싸울 수 밖에 없어요. 케이블TV로는 안되는 것들을 붙여야 합니다. 그러면 IPTV는 전혀 다른 서비스가 될 수 있어요. 유무선 통합과 IPTV의 결합도 눈여겨볼만 합니다. LG유플러스는 IPTV를 보다 스마트하게 바꿔나갈 겁니다.
■사주와 진맥까지 섭렵하는 재미와 자유의 리더십
79년대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전자공학 박사 과정을 마친 청년 이상철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 인공위성 관련 회사인 '컴퓨터 사이언스'에 입사한다.
1급 비밀을 취급하는 업무를 맡았던 맘큼 미국 시민권도 쉽게 받았다. 당시 상황에서 부러울게 없던 시절이었다. 70년대 미국에서 사는 유능한 한국인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청년 이상철의 생각은 달랐다. 미국에서 일하는 것은 혼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중에 한국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입사 제의가 들어왔다. 구미가 당겼지만 월급이 턱없이 적었다. 미국에서 받던 월급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하지만 타국 생활의 외로움에 지칠때로 지쳐 있던 청년 이상철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본인은 전혀 몰랐지만 이는 그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이전과는 180도 다른 다이내믹한 사회 생활을 하게 될것임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다.
ADD에서 FM무전기, CDMA 무전기 등을 국산화하며 6년을 보낸 이상철 부회장은 이후, KT의 전신인 한국통신 무선사업 본부장, KTF 사장, 한국통신 사장, 정보통신부 장관, 광운대학교 총장, 통합LG텔레콤 대표이사 부회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책을 거쳤다.
관계, 재계, 학계를 모두 넘나들었다. 2004년에는 한국장애인재활협회 회장까지 역임하기도 했다. 30대까지만해도 엔지니어로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재미에 빠져 지낸 이 부회장이 예상하기는 힘들었던 코스들이다. 다양한 분야와 직책을 넘나든 그의 삶은 스스로가 탈통신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컨버전스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학창 시절 이 부회장의 꿈은 장관도, 기업체 사장도 아니었다. 학자였다. 대학교를 마칠때만 해도 교수가 되겠다는 꿈은 유효했다. 그러나 인생의 변곡점은 정말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모양이다. 미국에서 학교를 마친 이 부회장은 학교와 기업에서 동시에 오퍼를 받았는데, 예상을 뒤엎고 기업을 선택하게 된다.
이유? 본인도 모르겠단다. 무성의한 대답이 아니다. 정말로 어떻게 하다보니 그냥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내가 왜 그랬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명의 지시였던 것으로 받아들인다.
변화의 시대, 리더의 역할은 중요할 수 밖에 없다. 탈통신을 선언한 LG유플러스도 마찬가지다. 변화의 시대는 어떤 리더십을 필요로 할까? '나를 따르라'식의 카스리마형일까 아니면 '우리모두 다같이'로 대표되는 화합형일까? 변화의 속도는 모르겠지만 휴유증을 줄여가면서 조직원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은 후자쪽이 좀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이상철 부회장도 후자쪽이다. 그는 통신 업계에서 합리적이고 통합형 리더로 분류된다. 공학박사 출신 답게 현장주의도 신봉한다. 끊임없이 실무자와 의견을 주고받는 스타일이다. 채찍은 그와 어울리지 않다. 뭐든 즐겁고 재미있게 일하자가 그의 신조다.
때문에 친정이면서 지금은 경쟁 업체인 KT를 이끄는 이석채 회장의 카리스마형 리더십과 종종 비교되기도 한다. KT와 LG유플러스 모두 변화를 위해 환골탈태를 선언한 터여서 두 수장의 스타일 비교는 잘 팔리는 콘텐츠로 떠올랐다. 이 부회장 입장에선 이런식의 접근이 영 부담스러운가 보다. 은근슬쩍 질문을 피하거나, 꼭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듣기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동문서답으로 마무리한다.
이 부회장은 각종 관습이나 규율 등 각종 '룰'(Rule)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그런것들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한다. 그에게 고정관념은 언제든 깨질 수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한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태도는 아름답다.
이 부회장은 틈나는 대로 다양한 상상도 즐긴다. 남들에게는 잡생각으로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그에게 상상은 나름의 매력이 있다. 통신판을 뒤흔들기 위해 내세운 탈통신 전략은 자유로움과 상상력이 합쳐 만들어진 결과물일지 모른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이상철 부회장은 사주와 역학도 다룰 줄 안다. 지압도 하고 진맥도 짚을줄 안다. 역학의 경우 벌써 20년 경력이다. 만만치 않는 내공이 있다.
20년 역학을 배우면서 느낀 것은 인생은 사이클이라는거죠. 좋을 때가 있으면 반대로 안좋을 때도 있다는거에요. 정상에 올라가면 별은 보이는데, 사람은 안보입니다. 안하무인이 되는거죠. 높은 곳에 있을때 낮은 곳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 역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교훈이에요.
이 부회장은 취임 이후 자신이 인생을 바쳤던 통신을 사양 산업으로 규정하면서 탈통신 시대가 도래했음을 부르짖어왔다. 앞으로는 계속 그럴 것이다.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매화는 엄동설한에 움을 틔운다
사실 탈통신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때는 '통신에 대한 부정'으로 해석했지만 이 부회장과 직접 얘기를 나누다보니 컨버전스에 기반한 탈통신은 통신의 진화된 버전임을 느끼게 된다.
환골탈태에 성공할 경우 통신 산업은 앞으로 한국 IT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희망도 엿보인다. 통신 회사들도 잘만 하면 구글과 애플처럼 사용자들의 관심을 받는 혁신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주특기인 통신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느껴진다.
물론 하기나름일 것이다. 지금까지 하던대로 하면 통신업체들은 점점 변방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혁신의 주역은 커녕 혁신의 장애물로 전락할 수 있다.
'탈통신'을 향한 이상철 부회장의 승부는 이제 막 시작됐다. 그런만큼, 공이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자신의 통신 인생을 걸은 것을 보면 나름 기대는 하게 된다.
삼각형을 정사면체의 한면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 다시 말해 무언가를 다르게 볼줄 아는 사람만이 판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이상철 부회장의 탈통신도 본질은 통신을 다르게 바라보자는 것이다. 다르게 보는 순간, 할것들은 넘쳐난다는 것이다.
과연 이 부회장에게도 통신판을 크게 뒤흔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까? 그렇게 된다면 그는 자신의 통신 인생, 나아가 대한민국 통신 산업 역사에서 멋진 드라마를 연출한 마에스트로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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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는 본인의 바람대로 우주에 대해 얘기하며 사는 삶을 개척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빅뱅, 양자역학, 뇌와 우주는 이 부회장의 지적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분야다. 석학의 반열에 오르기야 쉽지 않겠지만 10년뒤 아마추어 연구원으로 뛰는 것은 충분이 가능한 시나리오다. 본인도 그럴 생각이 있어 보인다. 그가 통신이 아닌 분야에서 지적 호기심을 채워가며 살아가는, 또 한번의 탈통신을 감행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