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2 청소년 불가”…심의과정 실제로 해봤더니

일반입력 :2010/04/21 10:53    수정: 2010/04/21 14:59

봉성창 기자

지난 18일 ‘스타크래프트2’가 청소년이용불가 판정이 나면서 게임물등급위원회의(이하 게임위) 심의 과정이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도대체 심의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길래 이러한 결과가 나왔느냐는 항의성 문의가 끊이질 않았다.

사실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심의 논란은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다. 최대한 낮은 등급을 받아야 유리한 게임사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예상보다 높은 등급을 부여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불만이 생긴다. 구체적인 심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원론적인 질문부터 심의 과정 간의 부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기도 한다.

20일 서울 충정로 게임위 심의위원실에서는 매체 기자들을 대상으로 ‘모의 등급분류회의’가 열렸다. ‘스타크래프트2’와 같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심의 과정에 대한 오해와 의혹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 게임위가 마련한 행사다.

이날 모의 회의에는 이수근 위원장을 비롯해 게임위 출입 기자 15명이 참석했다. 먼저 전문위원의 대략적인 심의 절차에 대한 설명과 함께 본격적인 모의 심의 회의가 시작됐다.

■“생각보다 게임 심의 어렵네”

첫 번째 대상 게임물은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인 A온라인게임이다. 이 게임은 당초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받았다가 이후 미니게임인 ‘포커 시스템’이 문제가 돼 등급거부 판정을 받은 게임이다. 이대로라면 게임 서비스를 종료해야 하는 상황. 결국 게임사측은 게임을 수정해 등급 부여를 요청했다.

전문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문제가 된 포커 시스템은 일반적인 고스톱 포커류 게임과 동일했다. 다만 게임 머니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포커용 전용 머니인 ‘스톤’만으로 플레이 하도록 유도해 사행성 논란을 방지했다고 덧붙였다.

몇 차례의 질문이 오고간 이후 곧바로 투표가 이어졌다. 투표는 각자 앞에 놓인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이뤄진다. 각자 심의위원이 생각하는 등급을 매기면 위원장 자리에 위치한 컴퓨터에 자동으로 집계되는 방식이다.

이날 A 온라인게임은 11명의 모의 위원이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을, 4명의 위원이 등급 거부 판정을 내렸다. 따라서 모의 심의 등급은 ‘청소년 이용불가’로 결정됐다.

다음 심의 대상물은 낚시를 소재로 한 B 아케이드 게임이다. 마치 바다이야기를 연상케 하는 이 게임은 80초의 주어진 시간안에 100kg의 정해진 무게 이상의 물고기를 낚을 경우 경품이 배출되는 방식이다.

논의가 중점적으로 이뤄진 부분은 게임 이용자의 조작과는 무관하게 경품 배출이 정해진 확률에 따라 무작위로 배출된다는 점이다. 모의 심의위원들도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이 집중됐다.

이윽고 투표가 진행됐다. 현행법상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의 게임은 경품을 제공할 수 없도록 돼 있는 만큼 모의 심의위원들은 전체 이용가 혹은 등급 거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심의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거의 대부분의 모의 심의위원이 등급 거부 판정을 내렸다. 이용자의 실력이 전혀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게임이라기 보다는 뽑기에 가깝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사행성게임…심의 한계성 드러나

다음 심의 대상은 앞서 심의가 이뤄진 게임과 동일한 낚시 소재 C온라인게임이었다.

해당 게임은 지난 3년간 수 차례나 등급 분류가 거부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거부 사유는 게임사가 제시한 게임 설명서와 실제 게임내용이 상이하다는 것이다.

사전에 게임을 검토한 전문위원들은 조작이 지나치게 간단하게 오류가 많다는 점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물론 게임 내 버그가 많다는 이유가 심의 등급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아니다.

이와 함께 동영상을 통해 키보드의 특정 키를 이쑤시개나 종이로 고정 시키면 자동으로 진행되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즉, 불법 도박 PC방에서 사행성 게임으로 변종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결국 해당 게임은 등급 거부 판정이 이뤄졌다. 표면적으로는 게임사가 제출한 설명서와 실제 게임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 등급 거부의 주요 사유가 됐다. 그러나 게임 자체가 사행성으로 변종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모의 심의위원들의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 전문위원은 만약 게임사가 설명서만 제대로 갖춰온다면 심의를 내주지 않을 방도가 없다며 예측심의를 할 수 없는 현행 심의 규정에 한계성이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심의 대상물은 오픈마켓 게임인 D게임이다. 게임 자체는 간단했다. 타이밍에 맞춰 상대방의 따귀를 때리고 피하는 것이 전부. 그러나 따귀라는 상대방의 모욕감을 주는 폭력이 포함돼 있어 저연령층 이용자에게는 다소 부적합하다 전문위원의 의견이 나왔다.

D 게임에 대해서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전체 이용가 부터 심의 거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쏟아진 것. 출석한 위원 중 과반수가 같은 의견을 보여야 심의 등급이 결정되는 만큼 재투표가 이어졌다. 재투표 결과도 마찬가지. 결국 이 게임의 등급은 결론이 나지 않은채 보류됐다.

■신속한 의사결정 눈길…하루에 40~50건 처리

전체적으로 모의 진행은 평소보다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진행됐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체감상 느낌은 심사숙고할 시간도 없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심의 등급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게임사 입장에서 보면 억울해 할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는 다수결로 진행되는 까닭이다. 토론도 생각보다 짧게 진행됐다.

게다가 한번 심의 회의를 진행할 때마다 40~50건의 게임을 처리해야하는 심의 방식을 감안하면 이처럼 빠른 진행은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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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심의 기관인 ESRB는 이러한 다수결 논의에 의한 심의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심의 신청시 작성해야하는 서류가 우리나라에 비해 5배 가량 많고, 심의 제출 서류와 게임물 내용이 상이할 경우 거액의 벌금을 물도록 돼 있다.반면 우리나라 게임 심의는 각계 위원들이 다수결로 게임 심의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보다 정서를 반영할 수 있다는 강점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간혹 일반 게임 이용자들의 정서나 게임업계 관계자들의 예측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이날 모의 회의를 정리하며 이수근 게임위 위원장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다소 실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게임 심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세밀하게 진행되는 편”이라며 “게임에 따라 20~30분 이상의 논의과정을 거치며 그래도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 이중 혹은 삼중의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