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식관계 없이 탄생한 양
1996년 7월5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근처에서 양 한 마리가 태어났다. 정부산하 로슬린연구소와 PPL세라퓨틱스의 과학자들은 이 양이 얼마나 살 것인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7개월 후인 1997년 2월 22일 세계적 권위의 과학지 네이처(Nature)지에는 암수의 생식 관계없이 태어난 복제 양 ‘돌리(Dolly)'의 탄생기사가 등장했다.
충격적이었다. 난자만 있으면 손톱이나 귀, 머리카락 등 몸에서 떨어진 세포(체세포)만으로도 복제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했기 때문이었다.
복제 대상인 어미양의 젖샘세포에서 유전자만 가져와 이를 성체로 키워낼 수 있다니? 이건 자연의 법칙을 넘어선 것이었다.
돌리의 가슴은 풍만했다. 유머 넘치는 과학자들은 미국의 가슴 큰 금발의 팝가수 ‘돌리 파튼’을 떠올리고는 그녀의 이름을 이 양에게 붙여 주었다.
하지만 돌리가 세상에 나오는 과정은 결코 유머러스하지 않았다.
무려 276번의 실패를 이어간 끝에 이뤄졌다. 과학자들은 양(羊)에게서 확보한 난자 277개의 핵을 제거한 후 여기에 다른 양의 젖샘 세포 핵을 옮겨 심는 지루하고 힘든 작업을 감내해야 했다.
이언 윌머트 박사와 케이스 캠벨 박사팀은 이렇게 만들어진 277번째 수정란을 또 다른 암컷의 자궁에 착상시켜 돌리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1957년 스푸트니크 2호에 실려 우주로 날아간 라이카 개 이후 지구를 가장 떠들썩하게 만든 동물의 등장은 이랬다.
■인간, 신의 영역에 손뻗치다
인류는 장기이식용으로 사용할 복제인간을 만드는 비밀을 거머쥐게 됐다.
이후 인류는 돌리를 시작으로 이후 솜,말,돼지,고양이,사슴,개 등 수많은 동물을 복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당초 로슬린연구소가 돌리복제에 나서게 된 것은 체세포 핵 이식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체세포를 배양할 때 인간의 유전자를 주입해 변형된 체세포로 동물을 복제하면, 인간의 호르몬이나 단백질을 생산하는 기능성 동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계기였다. 연구진은 불치병 치료법의 신기원을 마련한 듯 보였다. 돌리라는 이름의 복제양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 기대도 그랬다.
일단 돌리의 탄생으로 물꼬가 트이자 세계 각지에서 체세포를 활용한 동물 복제가 이어졌다. 윌머트박사팀은 신의 영역에 손을 댄 셈이었다.
하지만 금단의 열매를 따기 직전의 아담과 이브처럼 인류는 ‘신의 정원’에 들어서기 전에 멈칫거렸다.
월머트박사는 치료용 복제와 번식용 복제를 분명히 구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세계각국은 인간 복제 방지를 막기 위한 법 제정에 나섰다.
2001년 3월 유럽위원회(EC) 41개 회원국 가운데 과반수인 24개국이 이미 ‘배아 분리, 세포핵 이식 및 기타 기술을 통한 인간복제를 금지하되 오로지 연구 목적으로 세포나 조직을 복제하는 경우에만 엄격한 조건 아래 허용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인간복제금지협정'에 비준했다.
미국 정부도 '소중한 생명을 파괴하기 위해 또 다른 생명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국은 복제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킬 경우 최고 10년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긴급 입법안을 발표했다.
■돌리, 복제동물의 안전성에 경종
2003년 2월 14일, 로슬린연구소는 돌리를 ‘안락사 시켰다’고 발표했다.
체세포 복제로 탄생한 최초의 포유류 동물 돌리는 탄생한 지 3년도 안돼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노화가 조기에 급속히 진행돼 “복제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받고 있는 마당이었다.
돌리의 노쇠를 부추긴 것은 돌리가 6살짜리 암양의 유방세포를 이용해 탄생한 과정에서의 불완전한 복제기술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사실 돌리는 태어날 때부터 세포분열 횟수를 지정해주는 DNA 일부인 텔로미어의 길이가 6살 양의 그것만큼이나 짧아 조로한 상태로 태어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게다가 더 나이든 양에서 나타나는 관절염은 물론 진행성 폐질환 증세까지 보였다.
실제로 연구소는 성명을 통해 “안락사를 결정한 이유는 돌리에게서 진행성 폐질환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돌리의 죽음은 체세포 복제 방식에 대한 안전성 논쟁을 가속화시키기도 했다.
돌리는 양들의 평균 수명의 절반 정도를 살면서도 그의 탄생과 삶은 지금까지 어떤 동물도 누리지 못한 뜨거운 뉴스거리였다.
하지만 돌리가 안락사하자 전세계 언론은 탄생의 떠들썩함과는 정반대로 간단한 그녀의 부고 기사를 실는데 그쳤다.
돌리의 안락사 결정이 발표된 직후 사람들은 돌리의 신체에서 보여진 제반 노쇠현상은 인간의 개체복제와 배아복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타임지는 “돌리 이후 과학자들이 깨달은 것은 복제가 불완전한 과정이라는 점”이라고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세상을 흔든 한 마리 양, 돌리의 유산
‘세상을 흔든 한 마리 양’ 돌리는 또 이후 이어진 동물복제에 대한 윤리적,기술적 논쟁 등 과학적 담론을 일반인에게로까지 확산시켰다.
돌리 이후 인간과 가장 유사한 원숭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동물이 복제됐다. 자연히 사람들 사이에 ‘복제 인간’ 출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영화 ‘아일랜드(2005)’는 복제인간이 등장할 경우 예상 가능한 두려운 미래를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생명체 복제의 부작용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
동물복제 반대 측은 무엇보다 치료 복제라는 이름의 동물복제가 인간복제로 이어지면서 종의 균형 파괴라는 재앙으로까지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반면 찬성 측은 동물복제가 인간 난치병 극복을 위한 질환 모델 동물과 인체 장기 제공용 동물도 생산할 수 있는 등의 장점이 있다고 내세웠다.
과학자들은 어떤 세포로도 변할 수 있어 다양한 난치병을 치유할 길을 터놓을 것으로 전망되는 생명공학의 요술방망이 ‘줄기세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이클 크라이튼의 말처럼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이처럼 상업적으로 치닫는 생명과학연구를 감시해야 할 과학자들조차 여기에 빠져 감시견 역할을 할 존재가 아무데도 없다는 점이다.
그는 이미 20년 전 쥬라기공원 서문에서 “생명공학기술은 제어될 수 없다. 아무도 이를 감시하지 않는다. 어떤 법도 규제할 수 없다. 생명공학기술이 약에서 농작물, 인공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기 때문에 지적인 정책을 마련하기 힘들다“고 갈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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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리는 현재 스코틀랜드왕립박물관에 박제로 전시되어 있다.
복제양 돌리는 말그대로 인류 생명공학의 ‘희생양’으로서 6년 7월여를 살다가 갔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