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IT기업-中 정부 정면 충돌

조달공지 웹에만 슬쩍···30여 기업 조달길 막혀

일반입력 :2009/12/11 16:30    수정: 2009/12/12 19:46

이재구 기자

중국정부가 자국 정부조달용 첨단기술제품 구입에 대해 교묘한 차별적 규제를 실시, 글로벌첨단 기업들의 집단 반발을 사고 있다. 특히 IT분야에서 강세를 보이는 글로벌기업들이 대거 속해있는 미국은 정부차원의 이의를 제기하는 등 국제적 통상마찰로 비화될 가능성까지 예고하고 있다.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세계 30개 이상의 주요 기술기업을 대표하는 북미,유럽,아시아 소재 30여 글로벌 기업 대변단체들이 중국정부의 해외첨단제품 조달에 대한 차별정책에 깊은 우려를 표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는 전경련(FKI)이 이 서한에 서명했다.

■중국 정부조달서 외국IT기업 교묘히 따돌려

이 조달규칙은 중국정부가 외국기업들에게 '고유의 혁신기술', 즉, 중국에서 특허를 받거나 발명된 기술이 적용된 제품을 우대하도록 되어 있다.

30여 글로벌 IT기업 대변단체와 미국정부는 중국정부가 중국서 특허를 받은 중국기업 제품에 대해 정부조달시 우대하려는 속셈을 드러낸데다, 정부조달시 필수적인 조달목록 등록시한을 외국기업에는 전혀 알리지 않고 있다가 마감 시한이 다 된 지난 10월말 웹사이트에 슬쩍 공지한 사실에 대해 노골적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중국정부조달 규제 대상이 된 전자,IT 위주의 6개 품목 정부조달목록 등재 처리과정에서 전혀 통지를 받지 못한 채 지난 11월 정부 웹사이트를 통해, 그것도 재공지된 후에야 알게 되면서 글로벌 IT업계는 경악했다.

게다가 마감기한은 이미 지난 10일로 끝나 버려 사실상 중국정부에 물품을 공급할 길이 막혀 버렸다.

WSJ은 중국정부가 외국기업들에 대해 사전에 어떤 공지도 하지 않은 채 중국정부 조달용 제품목록 카탈로그에 포함되려면 좀더 서둘러달라고 당부하는 요구하는 내용을 슬쩍 웹에 올려 놓았다고 전했다.

이 조달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회사는 이론적으로 중국정부에 물자를 판매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반면 조달목록에 포함된 기업, 즉 중국기업들은 명백한 우대를 받게 됐다.

캐롤 거스리 대변인은 기술혁신을 장려하는 것은 미국과 중국 양국정부 모두에게 유익하지만 기술혁신이 차별의 이유가 되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IT 기업들 화났다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정부에 보낸 서한을 통해 이 시스템의 실행은 중국의 기술혁신 능력을 제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어 이 차별화 조치는 중국정부 조달시장에 참여하려는 기업들에게 성가시면서도 차별적인 부담을 지우게 될 요구를 부담 지우게 될 것이라며 무역 및 투자 보호주의에 저항하고 열린 정부조달정책을 지향해 온 중국정부의 지도자적 위치를 거스르는 것이라는 충고를 덧붙였다.

이 편지는 미상공회의소 회장의 이름과 함께 미-중 비즈니스고문, 미제조자협회,IT산업위원회 및 미국,유럽,한국,일본,인도의 30여 글로벌기업을 대표하는 단체들 대표자들의 서명이 담겨있다.

이 서한은 중국조달물자 조달규칙을 웹에 함께 공지한 과학기술부,재정부,국가개발개혁위원회 등 3개부처에 동시에 보내졌다. 중국의 정부기관들은 이 서한에 대해 즉각 코멘트하지 않았다.

■연 880억달러 조달 앞세운 중국기업 살리기

당장 이번 공지사항과 관련해 문제가 되고 있는 중국정부의 조달 물자 항목에는 PC와 애플리케이션 기기,통신제품,사무기기,SW,에너지효율형 기기 등이 포함돼 있다. 중국 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비첨단분야를 포함한 중국정부의 조달규모는 2003년의 3배가 넘는 880억달러 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장조사회사 IDC에 따르면 올해 중국정부가 공공조달을 이용해 구매하는 PC규모만도 중국내 연간 수요 4000만대의 14%인 640만대에 이른다. 중국정부는 또한 SW해적판이 기승을 부리는 중국시장에서 미국 SW기업의 주요 구매 고객으로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외국계 최고경영책임자(CEO)와 관련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국영기업에서 대량구매할 때는 정부조달 규칙도 적용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에 중국정부에 유감의 뜻을 전하는 서한에 서명한 세이지 챈들러 미국전자협회의 수석 무역이사는 중국정부의 규칙은 외국기업들이 힘들게 개발한 기술을 중국의 경쟁자,중국정부 등에 이전하거나 나누도록 강요하기 위해 설계됐을 것이라며 이는 미국에서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우려라고 말했다.

이번 중국정부의 조달규칙은 전세계적으로 불투명한 경제전망 속에서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발생하고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하는 것이어서 글로벌 기업들의 충격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을 포함한 세계각국이 자국기업에 대해 보호무역주의를 취하고 있다고 가장 목소리를 높여 온 나라 가운데 하나다.

이번 항의서한에 서명한 앤 크레이브 미반도체산업협회(SIA)시장조사 및 국제담당이사는 중국정부가 이번 조치를 취하기까지에는 미국정부가 연방정부가 침체된 미국 경제를 부양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미국물건사기운동(바이아메리카) 조항을 넣은 것도 자극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미국의 부양책은 이번 중국정부의 조달규칙에 비하면 외국기업들에게 훨씬 더 부담이 적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다른 인사는 중국정부가 '고유 혁신기술'을 조달품목에 끼워넣은 것은 미국정부의 바이아메리카 부양책이 나오기 이전의 조치였다고 말했다.

이번 중국정부의 조치는 지난 2006년 나온 정부물품 조달시 중국토착기업을 우대해 주도록 한 중국정부 조달규칙의 확장판인데 중국 기업들의 기술혁신을 지원하고 비싼 외국기술을 외면토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동안 외국기업들은 기존 규칙에 대해서조차 불만 속에서도 이를 감추고 은인자중해 왔지만 이번 조달규칙에 따른 해외기업 차별화가 드러나면서 그동안 쌓인 불만을 터뜨릴 기회를 만난 셈이 됐다.

■美 첨단 IT산업 타격 불보듯

미국 기업용SW연합회(BSA)에 따르면 이번에 문제가 된 조달목록에는 SW,컴퓨터,애플리케이션기기,통신제품,에너지절약 및 관련장비,첨단고효율제품,첨단사무실장비 등 6개 조달 구매 대상품이 포함돼 있다. 이 품목은 앒으로 그 대상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BSA는 이번 중국정부의 변칙적인 조달규칙과 관련해 첨예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해 당사자인 마이크로소프트(MS),어도비,시스코 등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이처럼 외국기업들이 엄청난 구매력과 경제력을 휘두르고 있는 중국정부에 대해 노골적이고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중국정부는 이미 지난 7월 자국내에서 사용되는 모든 PC용 SW를 대상으로 유해물차단용 SW인 그린댐 장착을 의무화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이때 글로벌 IT기업들의 집단반발이 이어지면서 중국정부는 결국 이 조치를 무기 연기한 바 있다.

중국, WTO정부조달협정 가입안해

중국정부의 새로운 조달규칙은 외국기업들의 중국정부에 대한 물품조달의 길을 막을지 모른다는 우려와 함께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회원국이지만 외국기업의 정부조달프로젝트 입찰시 차별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자발적정부조달협정'에는 서명하지 않고 있다.

미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 등 다른나라에서도 자국 생산품에 대해 우대조항을 두고 있긴 하지만 이번 중국정부의 지재권 원산지에 기반해 우대하는 조치는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이들 관계자는 이번 조치가 외국의 기술을 이용해 생산중인 중국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대로라면 중국 조달비즈니스는 없다

제프 하디 BSA아시아지역 담당 부사장은 중국정부의 조치에 대해 중국정부의 정부조달규칙 공지가 많은 부분 불명확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중국정부의 조치에 대해 지적재산권(지재권)이 중국에서 개발돼 중국기업이 가져야 하며 상표등록도 중국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중국정부의 지침에는 모든 정부조달 카탈로그 목록 등재 제품은 중국의 지재권과 중국 고유브랜드를 가져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또 입찰 참여자의 지재권은 완전히 외국기구나 개인과 무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관련기사

하디 부사장은 중국 정부의 이번 조달규칙 조항으로 인해 이제 외국에서 특허를 받은 제품이 중국에서 인증받기란 정말 힘든 일이 됐다. 완전한 중국 소유의 회사나 합작회사에게도 이는 매우 힘든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확실성은 짧은 마감시간과 함께 글로벌 기업에게 매우 어려운 시간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정부에 이번 정책을 재고해 줄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