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요금인하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최근 정부가 통신사를 대상으로 행정지도를 통해 가계통신비 20% 절감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휴대폰 요금이 과연 인하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6일 신용섭 방송통신위원회 통신정책국장은 언론보도를 통해 이동통신 요금인하와 관련해 정부가 행정지도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방통위의 행정지도는 강제성은 없지만, 이를 따르지 않았을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통신사에게는 상당히 민감한 사항이다.
방통위가 이례적으로 행정지도에까지 나서게 된 이유는 친서민 정책을 내건 현 정부의 정책 방향성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취임 초기 이명박 대통령은 가계통신비 20%를 절감해 서민 가계부담을 줄일 것이라고 공약한 바 있다.
정부는 저소득층의 휴대폰 요금인하 폭을 늘리고 통신사와 협의 하에 문자메시지(SMS) 비용을 건당 10원씩 내리는 등 노력을 했지만, 시장에서는 결합상품 활성화 부진과 KT-KTF 합병에 따른 사상최대의 과열결쟁이 벌어지면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러한 와중에 연달아 한국의 휴대폰 요금이 비싸다는 요지의 국제 비교자료가 배포되면서 또다시 휴대폰 요금인하 논란이 입방아에 올랐다. 이러한 논란은 국회와 시민단체 위주로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휴대폰 요금 과연 비싼가?
휴대폰 요금인하 논란은 우리나라의 휴대폰 요금이 비싸다라는 전제 하에서 출발했다. 최근에 발표된 메릴린치나 국제개발협력기구(OECD)의 국제통신요금 비교 보고서에는 한국의 휴대폰 요금 수준이 높은 편이거나 중간 수준이라고 조사됐다.
그러나 이들 보고서에 나타난 통신요금 수준은 각 국가별 통신시장 상황과 과금체계 등이 달라 그 신뢰성에 의심을 받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휴대폰 요금은 메릴린치 자료에서는 제일 비싼 것으로, OECD 자료에서는 가장 싼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보고서에 나타난 요금순위 비교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기 보다는 참고 자료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즉 이러한 자료는 휴대폰 요금이 해외 국가들과 비교해서 높거나 낮다는 근거로 쓰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소비자들은 휴대폰 요금이 비싸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번 국제보고서는 마치 유력한 범죄 용의자에 대해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는 식의 논리를 완성해 준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휴대폰 요금이 낮거나 적정하다는 주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서비스 주체인 통신사가 주장하고 있지만 이러한 주장에 객관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얼마 전에는 한국리서치가 이동통신 서비스의 효용가치가 실제 지불하는 요금보다 높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지만 큰 파장은 없어 보인다.
통신사를 옹호하는 듯한 입장을 보인 성낙일 서울시립대 교수나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측도 다른 나라에 비해 요금 인하폭이 낮다거나 정부에 의한 강제적인 요금인하는 적합하지 않다는 입장을 제시했지 요금이 적정하다고 언급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휴대폰 요금이 낮거나 적정하다는 근거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요금인하를 주장하는 진영은 통신사의 높은 수익과 원가보상률, 과도한 마케팅비 지출을 줄이면 요금인하 여력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반면 통신사는 차세대 네트워크 투자와 우수한 통화품질 제공 등을 정반대의 근거로 내놓고 있다.
문제는 이들 주장을 판가름할 기준도 없고 그 주체인 방통위도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원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 이번 논란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우리나라 휴대폰 요금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명확한 이유와 희미하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이다.
■이동통신, 대표 통신수단으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가계 전체의 통신비 지출액은 꾸준히 상승해 오다가 지난 2007년을 기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계 휴대폰 요금만큼은 지난 2004년 7만8천원에서 지난해 9만4천원 수준으로 증가했고, 전체 통신비 중 휴대폰 비중이 같은 해 69.1%까지 올라갔다. 반면 유선전화와 초고속인터넷의 비중은 각각 12.5%와 16.2%에 그쳤다.
KISDI의 김민철 연구원은 휴대폰 요금의 지출비중과 절대금액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 그리고 다양한 부가서비스 증가가 휴대폰 요금에 대한 이슈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휴대폰 요금으로 지출하는 돈이 늘어났기 때문에 비싸다는 인식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휴대폰 요금 증가에도 불구하고 전체 통신비가 줄고 있다는 점은 이동통신이 여타 통신수단을 대체해 가는 대표 통신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휴대폰 요금에 지출하는 절대금액만으로 요금 적정성을 따질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방통위는 통신사 행정지도를 통해 선불요금제 활성화, 보조금을 대신한 기본료 인하, 모선인터넷 요금인하 등 세 가지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통신사는 시장 자율경쟁에 따른 유효경쟁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초고속인터넷, 품질 대비 가격↓
이쯤에서 우리나라의 초고속인터넷 요금에 대해서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초고속인터넷 인프라를 갖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최근 들어 IPTV와 같은 서비스 제공을 위해 주택지역에도 100메가(Mbps)급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씨넷뉴스에 따르면, 미국통신노동자협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전세계 27개 국가 중 인터넷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이 보고서에는 한국이 다운로드 속도에서 세계최고인 20메가를 기록했고, 일본은 약 16메가, 스웨덴은 약 13메가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은 5.1메가로 조사 대상 국가 중 최하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초고속인터넷 요금은 낮은 편에 속한다. OECD에 따르면 35메가 이상의 초고속인터넷이 가능한 12개 회원국의 월평균 이용요금 중 한국은 33달러 수준으로 일본과 스웨덴(약 31~33달러 수준)에 이어 세 번째로 저렴하다. 이외에 네덜란드는 110달러, 독일은 60달러, 미국은 140달러 등의 수준이었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 국토 면적이 상대적으로 좁기 때문에 네트워크 구축이 용이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현수준의 고도화된 인프라와 지속적인 망 투자계획, 세계 최고의 속도 등 품질 대비 측면에서 낮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면적이 좁은 만큼 시장도 작다. 또 포화된 시장에서 품질 경쟁을 위해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며 시장 경쟁이 치열해 보조금과 현금 경품을 제공하고 있어 실제 이용료는 더 낮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신 융합시대, 요금정책은 시장 자율 맡겨야…
우리나라의 초고속인터넷 시장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2분기 실적발표에서 1위 사업자인 KT는 초고속인터넷 부문에서 감소세를, 2위 사업자인 SK브로드밴드는 적자를 기록했다. 3위 사업자인 LG파워콤만이 의미 있는 실적을 거뒀다.
케이블TV사업자까지 경쟁에 뛰어들어 10%대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요금은 계속 떨어지고 경쟁이 치열해져 마케팅 비용이 증가하는 등 유효경쟁과는 거리가 점차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 들어 통신사는 자연스럽게 '이동통신+초고속인터넷+IPTV' 결합상품을 통해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전체 통신비용의 절감도 기대된다. 본격적인 융합시대를 맞이해 시장이 개편돼 가는 중이다.
이러한 추세는 통신요금과도 무관하지 않다. 국내 통신시장은 포화 상태로 매출 증가세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만약 시장논리를 무시한 상태에서 요금인하만을 주장한다면 산업은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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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경쟁 체제를 갖춘 이통사가 중심이 돼 시장을 재편하고 융합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최근의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KT가 KTF와 합병한 것도, SK텔레콤이 SK브로드밴드(구 하나로텔레콤)를 인수한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동통신재판매(MVNO) 방식으로 이동통신 시장에 진입하려는 케이블TV 진영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국내 통신시장은 무선인터넷 및 결합상품을 기반으로 변환기에 접어 들었다. 이제부터 활발한 활발한 경쟁을 통해 시장을 개척해 가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정부의 요금정책도 시장 경쟁을 활성화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