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스티브 잡스의 광팬 후배 K에게"

개발자이자 벤처인인 자네가 그에게 배울 것은 '성취'가 아닌 마음을 훔치는 노력과 철학일세

일반입력 :2009/06/11 10:59    수정: 2009/06/11 11:19

이택 기자

자네 말이 옳았어. 하루가 지났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분명했진 것 같군. 애플 제품의 '혁신성' 만큼이나 CEO 스티브 잡스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네.  미국 현장에서 혹은 한국에서, 밤새워 애플 개발자회의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유일하게 실망한 대목이 잡스에 대한 일이었다지.

그가 늘 그랬듯 이번에도 프리젠테이션의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기대했는데 아쉬움만 남았다는 자네의 '푸념'이 인상적이었네. 이미 영화의 명대사처럼 회자되는 애플 프리젠테이션의 하이라이트 '원 모어 싱' , 물론 이번에는 잡스의 깜짝 등장이었겠지. 숨죽이고 긴장한 채 환호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자네에게는 허탈함이었을 것이야.

덕분에 우리는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의 가치에서부터 애플의 전략, 세계 IT시장의 흐름들에 대해 즐겁게 토론할 수 있었지. 무엇보다 "인상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잡스를 바라 보는 자네의 경외심 탓이야.

한국에서 개발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하고 지난한 삶 인지를 잘 알고 있네. 게다가 자네는 시니컬하고 도통 외부 이슈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 괴팍한 성격일세. 오죽하면 "자식들에게는 개발자 시키지 않는다" "벤처 CEO는 절대로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신념'이라고 말할까. 

이를 잘 알고 있는 나에게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 대한 자네의 유별난 열정, 그것도 '광팬'임을 자처하는 모습은 놀라웠어. 의외였지.

우선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쳤네. 자네의 숨겨진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아직도 IT를 사랑하고, 벤처를 아끼고, 개발에 몰두하는 자네의 속마음을 엿보았어. 

그 다음에는 덜컥 겁이 났네. 한 참 연배 높은 선배의 , '노파심'에서 비롯된 것일세. 잡스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무한적인 지지, '자네 말처럼 애정' 보다는 '열혈 신도'로 불러달라는 '확신'이 그렇다네. 

배우고 지지하고 그 속에서 꿈을 키우고 실현하는 일은 멋지지만 혹 잡스의 또다른 면을 자네가 놓칠 수 도 있다는 일종의 '불안감'이지.

인정하네. 절대 동의하네. 스티브 잡스는 IT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기록되는 중이야. PC의 대명사 애플컴퓨터를 만든 사람, 토이스토리와 벅스라이프 라는 애니메이션을 일궈 내 IT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남자이지. 

맥에서 아이팟, 아이폰이라는 기술과 개념의 혁신을 온 몸으로 증명해 주는 CEO, 앱스토어라는 기발한 착상과 가격 후려치기도 서슴지 않는 마케팅의 전설. 거인 MS와 정면으로 맞붙어 '맥은 'PC'와는 다르다는 조롱성 광고를 줄기차게 내보낸 강심장. 그래서 지금도 세상을 바꾸고 있는 위대한 변혁가. 

서류봉투에서 맥북을 꺼내고, 청바지 속의 아이팟을 끄집어 내며 바지에 보조 주머니가 왜 필요한 지 이제야 알겠다고 농담으로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프리젠테이션의 귀재. 누구도 자기 제품의 핵심 속성(얇고 작고 가벼움)을 이처럼 간단하고 호소력 있게 전달할 수는 없을 것이야. 

그의 프리젠테이션은 '공연'이었어. 무대위의 잡스는 록스타 보다도 열광적인 팬을 보유한 엔터테이너이지.

전 세계를 감동시켰던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강연은 또 어때. 딱 3가지만 말하겠다며 자신의 인생 역정과 변곡점을 진솔하게 풀어냈어. 잡스의 성공 신화 아래에 있는 '진실'을 알게해 주었어. 미국의 젊은이들이 부러웠네. 그같은 강연을 듣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 잡스 이후의 감동은 오바마 대통령의 후보 수락 연설뿐 이었네.

이 모두가 자네에게 꿈과 희망, 의지를 품게 해 준 동력이란 점에 동의하네. 고단한 현실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란 것도 인정하네. 나 역시 마찬가지일세.

하지만 자네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어. 맹목적인 사랑은 결국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네. 사랑은 본디 그런 것이지만 상대의 아픔과 단점을 알아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참된 의미를 가질테니까. 

잡스도 인간적으로는, 기업가적으로는 굴곡진 인물일세. 드라마 같은 생의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지. 스탠포드의 명연설에서 밝혔듯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 입양됐어. 친모는 양부모의 조건을 대학졸업자로 고집하기까지 했지.

자신도 입양아 이지만 정작 자신의 딸은 냉혹하게 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네. 창업한 회사에서 쫒겨나기도 했지. 폭군에 가까운 경영 스타일, 충성심이 의심되면 친구이건, 동지이건, 가차 없이 잘라버리는 성격이 요인이라고 하네. 

토이스토리로 재기해 애플 복귀한 지 1년만에 적자 회사를 4억달러 흑자로 돌려 세웠지만 우려의 시선은 여전하네.  PC를 개발한 워즈니악의 공을 가로챘다는 비난에도 시달리고 비즈니스에 필요하다면 배신과 배반을 바닥 뒤짚듯 감행한다는 지적도 받지. 

특출한 개발자들의 능력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탁월한 재주를 가졌다는 폄훼도 끊이지를 않아. 췌장암 선고와 투병 역시 단골메뉴에 꼽히네,  이번 개발자 행사에서 그의 등장을 '염원'했던 자네가 아쉬움을 토로한 것도 이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하네.

누구에게나 롤모델은 필요해. 특히 같은 길을 앞서 간 훌륭한 전범이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개발자요 CEO인 자네의 롤모델이 스티브 잡스라는 것은 그래서 다가오는 무게가 다르다네. 

좋은 스승을 흉내내는 일에서 모든 완성은 시작되지. 하지만 잡스의 '성취'만을 겨냥하지는 말게. 그의 말처럼 결과론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환호'와 '박수'라는 점을 모르지는 않을테니까.

자네와 내가 잡스에게 주목할 것은 오히려 간단한 이치일세. 즉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훔치는' 그의 노력과 철학이란 말일세.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잡스의 혁신성은 기술적 능력 보다는 출발점의 우월성이라 생각하네. 

최고의 제품, 최상의 완벽성을 갖춘 기술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네. 사람들이 사용하기 편리한 제품과 기술에 대한  끝없는 천착일세.

한국적 교육환경에서 성장한 우리와는 발상이 다르네. 기술과 품질은 누구라도 갖출 수 있지만 철학이 깔린 제품과 기술은 흔치 않지. 잡스는 임계치의 기술 보다는 손쉽게 사용할 수 있고 그래서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정서적 대응력을 IT에 입혔네.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바꾸면 '창의성'이고 그것을 철저히 인간의 정서와 사용 친화력에 집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고통에 좌절하지 않고 어려움을 온 몸으로 부닥치는 자세는 잡스뿐 아니라 자네도 이미 획득한 전리품일 것이야. 그렇다면 '잡스교 신자'인 자네가 이제부터 해야할 일은 좀 더 또렷해 지지 않을까.

기술과 제품 제일주의에 대한 집착과 완고함에서 좀 더 자유로와 지기를 바라네. 벤쳐의 한계를 잡스 처럼 발상의 전환을 통해 해결해 보라는 소박한 충고일세.

스티브 잡스는 IT역사와 전 인류의 자산이지. 천재성이 아닌 그의 삶과 철학이 핵심인 것 같아. 자네도 한국의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고 옆에서 지켜볼 수 있으면 행복 하겠네. 

병마를 훌훌 털고 현업에 복귀하는 잡스를 보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일세. 그에 앞서 자네가 최근 개발한 제품, 시장에서 대박이 나도록 응원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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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분노'와 '냉소'로 맞바꾸지는 말게.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소리치게나. 그래도 개발자, 벤처CEO는 가치있는 직업이니까. 자네의 우상인 잡스가 저 멀리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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