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현지시간) 애플이 마련한 4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는 스티브 잡스 CEO가 깜짝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잡스가 실적 컨퍼런스콜에 직접 나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평소에는 팀 쿡 최고운영책임자(COO)와 피터 오펜하이머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컨퍼런스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자신이 직접 나온 이유에 대해 잡스는 “분기 실적에서 ‘아이폰’이 기여한 것을 강조하기 위한 회사 방침을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애플은 9월로 끝난 4분기 회계연도 마감 결과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26% 늘어난 11억4천만달러(주당 1.26달러), 매출은 27% 늘어난 79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애널리스트 전망치를 뛰어넘는 성적표다.일등공신은 아이폰이었다. 애플의 4분기 아이폰 판매량은 689만대로 애널리스트 전망치 450만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 전까지의 누적 아이폰 판매량보다도 많은 숫자다. 이쯤되면 대박이다. 천하의 잡스라도 컨퍼런스콜에 나와 자랑 좀 하고 싶어할 만하다.하지만 그는 컨퍼런스콜에서 아이폰 얘기만 하지 않았다. 그는 불경기라도 애플의 미래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만한 권한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컨퍼런스콜에서 나왔던 잡스의 발언 중 주목할 만한 것을 골라 소개한다.“애플은 경기 흐름에 다소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괜찮다. (경기가 좋아진) 미래에는 지금 이상으로 강해져 있을 것이다”잡스 CEO는 컨퍼런스콜에서 침체된 경기에 대해 경고하는 몇 가지 발언을 했다. 하지만 그는 “애플은 자금이 풍부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현재의 경제환경은 현금이 풍부한 기업에는 기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는 또 적어도 경쟁사들과 비교했을 때 애플은 충성도 높은 소비자들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잡스는 “애플은 전세계에서 가장 현명하고 제품에 높은 관심이 있는 소비자들을 거느리고 있다”면서 “우리 고객들은 경제가 어려울 때는 제품 구입을 미룰 수도 있지만 결코 애플을 버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애플 사업 전체에 대해서는 10월과 4월은 1년 중 ‘가장 예상하기 어려운’ 시기라고 언급했다. 또 애플이 많은 돈을 들여 앞으로도 계속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는 금융 애널리스트의 조언에 대해 “‘실리콘밸리의 모든 엔지니어를 고용한다’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지만”이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우리는 특정 시장을 선택하는 동시에 그렇지 않은 것도 선택하고 있다”컨퍼런스콜 중 잡스는 맥 컴퓨터 가격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몇몇 애널리스트는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맥보다 값싼 PC를 선택하려는 소비자들의 눈을 돌리기 위해 애플이 맥 가격을 크게 인하할 것으로 기대했다.하지만 잡스는 맥 가격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그는 “애플이 하고 싶은 것은 고객들에게 높은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지만, (애플이) 굳이 신경쓰지 않기로 결정한 고객도 있는 법”이라고 잘라말했다. 이어 “우리는 500달러 가격으로 ‘잡동사니’가 아닌 컴퓨터를 만드는 방법을 모른다”며 “그동안 만물장사 아닌, 특정 시장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대성공을 거뒀고 이 필승전략은 앞으로도 바뀔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그는 애플은 여전히 컴퓨터(맥)나 휴대폰(아이폰) 시장에선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지만, 이 분야가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말도 남겼다. 애플제품을 사고 싶어하거나 살 만한 여유가 있는 고객은 ‘윈도’ 세계나 휴대폰 시장엔 아직 많다는 것이다.“애플은 최고 기업을 목표로 해야 하므로 높은 가격에만 의존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내년에는 보다 저가의 아이폰이 등장할 수도 있다. 잡스는 “2009년에도 아이폰의 성공을 유지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란 질문을 받았다. 경쟁사가 고성능 OS를 탑재한 터치스크린 휴대폰으로 애플을 노리고 있다는 메시지가 녹아있는 질문이다.잡스는 가격과 관련해 시장 지배적인 고가 제품이 직면할 수 있는 경쟁 상황, 곧 저가로 중무장하고 제품을 계속 개선해 나가는 새로운 기업의 등장을 언급했다.아이폰이 성공제품이라 하기엔 아직 이를 수 있지만, 잡스는 다른 휴대폰 제조업체가 ‘아이폰만큼은 아니더라도 비교적 싸고 쓸 만한 스마트폰’이라고 소비자가 생각할 만한 제품으로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실제 애플은 ‘3G아이폰’을 내놓으면서 기존보다 저가 정책을 들고나왔다.애플의 ‘3G아이폰’ 지원금 정책은 앞으로 더욱 값싼 아이폰이 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미 업계에는 ‘아이폰나노’와 같은 2009년용 ‘기능 한정판’이 등장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애플은 이 같은 정책으로 리서치인모션(RIM), 노키아, 모토로라 등 경쟁업체들의 가격 선택폭을 줄일 수 있다.“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지만 들은 바로는,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는 단지 홈런 하나를 쳤을 뿐’이라고 했다. 다만 그것을 계속해서 쳤을 뿐이다”잡스의 이 말을 애플이 아이폰2000, 아이폰4000, 아이폰6000 시리즈를 내놓을 것이라고 해석하지는 말자. 그는 “휴대폰에 대한 사용자들의 폭넓은 기호에 맞춰 애플은 확대된 아이폰 라인업을 가질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베이비 루스 이야기를 사용했다. 노키아의 경우 기본적으로 같은 휴대폰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버전이 얼마든지 있다.잡스는 “기존 휴대폰 시장에서 경쟁은 1개 음성전화를 100가지 다른 기종으로 만드는 것이었다”면서 “그러나 소프트웨어가 휴대폰 시장의 차별화 요인인 지금 100가지의 SW 개발은 좋은 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애플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지향하며 이는 경쟁사와는 많이 다르다는 얘기다.“우리는 이번 일을 정례화할 생각이 없다. 피터와 팀은 충분히 잘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이 말에 따르면 잡스 CEO가 다음 애플 실적발표에 또 모습을 나타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