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개고생 노키아를 위한 변명

1분기 실적은 시장 정상화에 불과하다. 노키아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오만함…

일반입력 :2009/04/30 09:04    수정: 2009/04/30 09:05

이택 기자

노키아가 개고생이다. 집 나온 세계 최강 휴대폰 업체가 한국에서 '굴욕'을 당하고 있다. 노키아폰의 한국 진출은 온갖 찬사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마니아층은 환호했고 전문가들도 바짝 긴장했다. 노키아의 명성과 브랜드 이미지만으로도 파란을 일으킬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초반 실적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돌풍은 없었고 판매 통계 조차 집계하는 것이 무의미한 수준이 됐다. 심지어 '공짜폰'으로 전락해 조만간 잊혀져 갈 것이란 혹평까지 나온다. 한국향 제품 출시 한달도 못돼 벌써 "노키아 별거 아니네"라는 실망감이 시장을 뒤덮고 있다.

때마침 1분기 노키아의 글로벌 실적이 발표됐다. 도무지 무너질 것 같지 않던 노키아가 어닝 쇼크를 던져주었다. 지난 수년만에 처음으로 분기 판매량이 1억대 아래로 내려갔다. 유럽과 남지지역에서 각각 35%와 50%의 마이너스 성장이 뼈 아팠다.

세계시장 점유율도 하락했다. 40%를 넘기면서 과반획득을 눈앞에 둔 것이 엊그제인데 37% 수준까지 미끄러졌다. 이익률은 더욱 충격적이다. 20%를 넘나들던 것과는 달리 10% 미만으로 곤두박칠 쳤다. 세계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최악의 성적표이다. "노키아가 흔들린다"며 전세계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성장세는 눈 부시다. 특히 삼성은 전성기 기량을 완벽히 회복했다. 이익률도 두자리 숫자로 다시 올라섰다. 세계시장 점유율도 19%까지 올랐다. 한동안 뜸하던 글로벌 히트상품도 등장했다. 마의 20%벽 돌파가 사정권에 들어 왔다.

매출과 이익 모두 신장세를 시현한 것은 주요 사업자 가운데 삼성이 유일하다. 노키아의 후진형 쇼크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직진형 어닝 쇼크를 선사한 것이다. 위기에 강한 진정한 강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박수 받아 마땅하다.

상황이 이쯤되니 언론과 전문가들의 '호들갑'이 이어진다. 벌써부터 노키아-삼성 맞대결 구도가 각광 받는다. 노키아-삼성-LG의 3강 정립 시대 개막을 해부한다. 멀리만 보였던 노키아와 한판승부를 부추긴다. 한국의 주관적 희망이 집중 투영된 반응이지만 신바람 나는 일이다.

그러나 흥분하기에는 이르다. 노키아를 위한 변명에 나서 보자. 우선 한국시장. 노키아의 전략적 선택을 읽을 수가 없다. 어차피 노키아에게 한국시장은 전략 요충지도 아니요 전술적 가치를 따져봐야할 곳도 아니다.

한 해 4억대 이상을 팔아치우는 노키아다. 기껏 2,000만대 규모에 삼성과 LG, 팬택계열등 강력한 로컬업체들이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국내 휴대폰시장이다. CDMA로 철통 무장했고 비록 3G가 열렸다지만 '답'이 안나오는 시장이다. 휴대폰 업체가 아닌 이통사업자가 완벽한 통제력을 발휘한다. 한 해 수십만대 팔기 위해 비용과 인력을 투입하기에는 비경제적 대상이다.

출시 모델도 갸우뚱이다. 최신 트렌디 제품의 패션시장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한국에 철지난 구형 모델을 투입했다. 게다가 핵심 기능인 지도기능이 국내법에 저촉돼 통째로 빠졌다. 가격 역시 중저가 기종이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겠다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그래서 노키아의 오만함이 먼저 보인다. 아니면 공략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무대포' 출시다. 어떤 경우이건 노키아 답지 못하다. 가장 비경제적 시장에, 가장 비효율적으로 대처했다. 그럼에도 이 한가지 사례로 노키아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우습다. 노키아에게는 한국에서의 결과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총력전을 펼친 것도 아니고 전략적 승부수를 던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어닝 쇼크이다. 이번에도 노키아를 위한 변명 시리즈를 이어가 보자. 몽골 기마병을 연상케 하는 노키아의 무한질주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팩트'이다. 원인은 노키아 자신에게 있다. 자초한 일이란 것이다.

사실 전쟁같은 경쟁이 일상이 된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단일기업의 점유율이 40%를 넘기는 것은 비정상이다. 30%대 후반으로 내려 온 1분기가 오히려 정상이다. 상황의 '정상화'란 말이다.

노키아가 쇠퇴하거나 몰락한다면 경쟁자의 공격에 의한 것 보다는 '자책골' 성격이 강할 것이다. 노키아에게는 제어되지 않은 '욕심' 혹은 자만심과 방심이 최대의 적이다.

전세계 사용자 가운데 둘 중 하나가 사용하는 노키아의 지배력은 누구에게나 공포로 다가온다. 그 독점적 지배력을 허용할 경쟁자는 없다. 간단한 세상 이치이다. 더욱이 노키아는 '변신'이라는 이름 아래 끝없는 영토확장에 나서고 있다. 휴대폰에 세상을 담겠다는 지향점은 분명하지만 노키아의 토털솔루션 전략및 엔터네인먼트기업화가 계속될 수록 지구촌 차원의 압박과 견제는 피할 수 없다.

1분기는 이를 증명했다. GSM 오픈마켓에서 성장한 노키아는 항상 이통사업자들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우위를 지켰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3G시장에선 사업자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 제공하는 서비스와 품질수준, 네트워크 연계등이 훨씬 중요해졌다.

규모는 작지만 차별화되고 다양한 서비스를 충족시킬 휴대폰 업체들을 선호하게 된다. 노키아에겐 가장 껄끄러운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사업자들은 어제도, 오늘도, 노키아의 지배력을 견제한다. 노키아가 자신들의 밥그릇까지 넘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에겐 대안도 있다. 한국의 삼성이나 LG는 이 대목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자랑한다. 사업자들과의 전략적 협력은 기본체력에 해당한다. 공동작업 수행과 요구를 해결해 내는 역량은 단연 세계 제일이다.

소비 패턴과 소비자 마음을 읽어내고 이른 시간에 제품화시키는 능력은 출중하다. 한국 소비자들과 SK텔레콤에게 '단련(?)'된 기업들이다. 3G시장에서 먹힐 수 있는 요소를 모두 갖고 있는것이다. 시장 리딩능력은 여기서 비롯됐다. 애플과 구글은 또다른 대안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도 거들었다. SCM과 플랫폼 생산방식을 통한 중저가 모델은 노키아의 '규모의 경제'가 극강의 지위에 올라있다. 경제위기는 소비의 양극화로 대답했다. 고가 특화모델은 여전한 수요를 자랑하지만 저가 모델은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노키아가 공들여 온 콘텐츠 분야의 약발이 발휘될 여지도 별로 없다. 노키아로서는 "어~어" 하다가 크게 한 방 먹은 셈이다.

노키아는 그럼에도 건재하다. 비록 '욕심'이 '탐욕'으로 바뀌며 IT업계 공공의 적이 됐지만 본원적 경쟁력은 아직도 무시무시하다. 종이 만드는 회사에서 출발해 툭하면 존폐위기에 몰렸던 기업이 '오늘'을 이뤄낸 벤처적 혁신역량은 지금도 자기 진화중이다. 성능에서 디자인을 입히고 다시 콘텐츠를 담아내는 지칠 줄 모르는 변화의 엔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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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여명의 임직원 가운데 연구개발 혹은 관련인력이 20% 가까이 포진한 맨 파워 역시 여전하다. 기술장사의 대명사 퀄컴과 맞짱을 뜬다. 덕택에 노키아는 로열티에서 가장 자유롭다. 원천, 핵심기술 보유는 그래서 자랑이다. 세계규모의 탄력적이고도 현장대응형 생산도 강점이다. 기본적인 가격 경쟁력에서 조차 경쟁자들에 비해 5~10%는 앞 선 구조는 여기서 만들어 진다.

노키아는 21기형 '제국 로마'이다. 기술과 기업문화, 인력 모든 면에서 그렇다. 욕심과 탐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중이다. 일시적 쇠퇴인지, 몰락의 징후인 지는 연내에 판가름날 것이다. '제국 노키아'가 지금 경계해야할 것은 오만함과 방심, 안이함이라는 단어들이다. 점유율만 따지면 삼성-LG-모토로라 합해야 노키아의 키높이에 이른다.'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노키아 별거 아니네"라는 어이없는 오판이 우리 눈을 흐려선 안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