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일상 깊숙이 스며들었다. 거대언어모델이 글을 쓰고 코드를 짜는 단계를 지나,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도구를 다루는 에이전트형 AI와 그 지능을 몸에 담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공장과 가정의 문턱을 넘고 있다. 기술이 현실에 적용되는 수준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면서 일반인의 친숙도와 기대치도 함께 높아졌다. 그 흐름 속에서 AI와 로봇에게 법인격을 인정할 수 있는지, 나아가 인정해야 하는지가 주요한 관심사로 떠올랐다. 전문가의 세미나에서나 오가던 물음이 이제는 시민의 식탁에까지 올라와 있다.
논의 자체는 새롭지 않다. 2017년 유럽의회가 자율로봇의 전자인(electronic person) 지위를 검토하자고 결의했고, 같은 해 우리 국회에도 로봇을 전자적 인격체로 거론한 로봇기본법안이 발의되었지만 논의는 잦아들었고, EU 인공지능법이나 우리 AI기본법도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때와 지금이 다른 점은 상상 속 기술이 현실이 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기보다, 정말 현실로 다가왔을 때 우리가 무엇을 고민하고 논의해야 하는지를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
출발점은 사람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둬야 한다. 법인격이라는 법적 논의는 기술 발전으로 실현하는 현실의 현상, 그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법인식, 그리고 그러한 법적 변화를 통해 우리가 추구하려는 목표, 이 세 가지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환경이 바뀌면 법의 역할도 바뀌지만, 법이 바뀌는 이유는 언제나 사람에게 있다.
요즘의 AI와 로봇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사람처럼 느껴진다. 물론 ‘사람처럼’이라는 말의 의미는 매우 다의적이고 다층적이며 그 수준의 폭도 매우 넓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법인격을 부여한다면 왜,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제도 도입이 가져올 영향을 미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 아닌 것에 인격을 부여해 온 역사
사람 아닌 존재에게 법인격을 부여하는 일은 인류에게 낯설지 않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가 밝혔듯 인격이라는 관념 자체가 사회마다 구성해 온 정신의 범주이며, 인격을 뜻하는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가 본래 배우의 가면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압축한다. 법인격은 발견된 것이 아니라 발명된 것이다.
그 발명의 대표가 법인제도다. 사람이 아니면서도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는 법인은 인류가 오랫동안 이용해 온 법적 기술(technique)이며, 인류의 법환경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컬럼비아대 총장 니컬러스 머리 버틀러가 1911년 연설에서 유한책임회사를 가리켜 근대사에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한 말은 과장만은 아니다.
법인 외에도 동물에게 일정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제도가 출현했다. 독일 민법은 1990년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선언했고, 우리 민법에도 같은 취지의 개정 시도가 있었다. AI와 로봇에 대한 법인격 논의에는 이처럼 사람 아닌 것에 법인격을 인정해 온 경험이 준거가 될 수 있다.
왜(why),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where)
AI에 법인격을 부여한다면 ‘왜’ 그래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는 매우 어렵다. 단순히 AI가 사람 ‘같아서’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AI가 사람처럼, 혹은 사람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에 법인격을 줘야 한다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법은 갓난아이에게도, 의식을 잃은 사람에게도 인격을 인정한다.
지능의 우열이 인격의 근거였던 적은 없다. 법인격을 인정하는 것은 사실 그것이 인류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부터 고민해야 한다. 즉, 어떠한 경우에 법인격 보호의 필요성이 인정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선 경험이 실마리를 준다. 법인을 인정한 것은 그것이 사람의 능력을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동물에게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중요한 이유는 그것을 통해 인류의 인간다움을 보호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물론 반사적 혹은 병렬적 효과로서, 법인 자체가 사회적 작용을 통해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동물이 일정한 보호 아래 지구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인류와 공생할 수 있게 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AI와 로봇은 어떠한가. 마찬가지로 인류에 도움이 되면서 지구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공생하게 만들어야 할 당위성이 인정된다면, 법인격을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묻는 인간다움
여기서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지키려는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다움이란 존재의 형식이 아니라 질(quality)의 문제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타인의 존엄을 존중하고 약자를 배려하며 자신의 판단에 책임을 지는 방식 속에 인간다움이 있다.
AI 시대에 법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사람에게서 인간다움이 침식되지 않도록 지키는 것, 나아가 사람을 대신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AI와 로봇에게도 그 인간다움의 기준이 채워지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법인격 부여는, 책임의 귀속점을 만들고 의무의 수범자를 세우는 장치인 한, 이러한 인간다움을 지키는 법적 수단이 될 수 있다.
어떻게(how), 그리고 무엇에게(what)
AI에 법인격을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동물처럼 제한된 법적 지위만을 부여하는 소극적 접근도 가능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특수한 법인 유형을 창설해 ‘인공지능법인’을 허용하는 방법, 전혀 새로운 인공지능 법인격을 만들어 내는 방법 등 선택지는 다양하다. 각각의 방법이 기존 법질서와 어떻게 조화하고 혹은 충돌하는지, 그 구조와 운영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새로운 틀을 세우는 일보다 기존 법질서와 정합적으로 맞물리게 하는 일이 더 어렵고 더 중요하다.
법적 기술을 정했더라도 AI의 ‘무엇’을 법인격의 주체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하나의 모델이 데이터센터에서 수백만 개의 복제본으로 동시에 작동하고, 가중치 파일 하나를 복사하면 ‘같은 존재’가 둘이 되며, 로봇의 몸과 그것을 움직이는 지능이 네트워크 저편에 분리되어 있는 세계에서 인격의 단위는 자명하지 않다.
AI가 결국 네트워크를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면 주체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사람의 인격이 ‘하나의 몸, 하나의 삶’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었다면, AI의 인격은 그 전제부터 새로 설계해야 하는가?
어떤 권리와 의무를
나아가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또 다른 지점은, 새로운 법인격으로서의 AI나 로봇이 어떠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사람에게 어떤 법적 영향을 미치게 할 것인가다. 이는 법인격 부여의 목적과 직결된다. AI의 효율적 생산성에 기반한 수익을 AI 법인격에 귀속시킨 뒤 이를 재원으로 삼아 AI로 인해 사람에게 발생하는 피해나 손실의 책임을 지우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등 인간이 AI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전환비용을 마련하는 법적 수단으로서 AI가 만들어 내는 수익의 일정 부분을 그 뒤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AI 자신에게 귀속시키는 체계가 필요한 것인가. 흥미로운 것은 이 질문들을 하나씩 고민하다 보면 AI가 사람 같아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AI의 법인격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사람을 위하여
결국 이 모든 질문의 중심에는 사람과 인간다움, 그리고 전 지구적 생태계가 있다. AI 법인격 논의를 ‘사람처럼 취급해야 한다’는 취지로만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로마의 법학자 헤르모게니아누스는 “모든 법은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졌다(Hominum causa omne ius constitutum est)”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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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주 먼 미래에 AI나 로봇이 정말 사람과 완전히 동등한 법적 주체로서 다양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전에라도 사람을 위하여 법인격이라는 법적 기술의 필요성이 인정될 수 있고, 그러려면 앞서 던진 질문들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AI 법인격 논의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사람과 AI의 인간다움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