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인프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데이터센터를 짓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부지를 확보하고 건물을 지은 뒤 전력·냉각 설비와 서버를 구축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주요 설비를 공장에서 미리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형 데이터센터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LG CNS와 KT클라우드, 엘리스그룹 등 국내 AI 인프라 사업자들이 잇달아 모듈형 데이터센터 구축과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모듈형 데이터센터는 전력·냉각·IT 장비 등 주요 시설을 표준화된 형태로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 설치하는 방식이다. 건물과 설비를 순차적으로 구축하는 기존 데이터센터와 달리 모듈 제작과 현장 공사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어 통상 2년 안팎인 구축 기간을 수개월 수준까지 줄일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필요한 만큼 모듈을 추가해 데이터센터 규모를 단계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초기부터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완성하는 대신 실제 AI 컴퓨팅 수요에 맞춰 용량을 확대할 수 있어 초기 투자 부담을 낮추고 향후 수요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특히 AI 시대에는 구축 속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엔비디아 등 AI 반도체 업체들이 새로운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빠르게 출시하면서 데이터센터 구축이 길어질수록 처음 설계할 당시 최신이었던 GPU가 실제 가동 시점에는 이전 세대 제품이 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고가의 AI 가속기를 확보한 뒤 실제 서비스에 투입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여 투자 효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해진 셈이다.
국내에선 LG CNS가 올 초 컨테이너 형태의 모듈형 AI 데이터센터인 'AI 박스'를 앞세웠다. AI 박스 하나에 최대 576장의 GPU를 수용할 수 있으며 서버 전력 기준 1.2메가와트(MW) 규모다. 별도 건물을 신축하지 않고 컨테이너형 모듈을 연결해 데이터센터를 구성하기에 기존 데이터센터가 약 2년 걸리는 것과 비교해 약 6개월 만에 구축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십개의 AI 박스를 연결해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로 확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LG CNS는 첫 AI 박스를 부산 글로벌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부지에 구축하고 향후 약 2만7179㎡ 부지에 50개 안팎의 AI 박스를 집적한 AI 박스 캠퍼스를 조성할 계획이다. LG전자의 냉각수 분배 장치와 항온항습기·냉동기, LG에너지솔루션의 무정전전원장치(UPS)용 배터리 등을 패키지로 구성해 그룹 계열사 기술을 AI 인프라 사업과 연결한다는 전략이다.
KT클라우드도 모듈형 AI 데이터센터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KT클라우드는 에너지 기업 SGC와 협력해 전력·에너지 인프라와 자사의 데이터센터 설계·구축·운영(DBO) 역량을 결합한 차세대 모듈형 기술을 공동 개발 중이다. 표준화된 설계와 병행 공법을 적용해 구축 기간을 줄이고 고객 수요가 늘어날 경우 데이터센터 규모를 빠르게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KT클라우드가 추진하는 전국 AI 데이터센터 확장 전략과도 맞물린다. 회사는 현재 약 200메가와트(MW) 규모인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2031년까지 1기가와트(GW) 규모로 확대하고 전국 20여개 거점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데이터센터 구축 단계에는 건축정보모델링(BIM)과 전산유체역학(CFD), 모듈형 기술을 적용하고 주요 설비를 사전 제작하는 방식으로 구축 기간을 단축할 방침이다.
아울러 AI 스타트업 엘리스그룹도 모듈형 AI 데이터센터를 AI 인프라 사업의 핵심 기술로 활용 중이다. 엘리스그룹의 AI PMDC는 전력·냉각·IT 장비와 관제 시스템을 하나의 모듈로 통합해 공장에서 제작한 뒤 현장에 설치하는 방식이다. 시설부터 짓고 서버를 배치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어떤 AI 워크로드와 GPU를 사용할지 먼저 정한 뒤 이에 맞춰 데이터센터 전체를 설계하는 것이 특징이다.
엘리스그룹은 정부의 AI컴퓨팅자원 활용기반 강화사업을 통해 엔비디아 B300 GPU 2560장을 4개 모듈형 AI 데이터센터에 각각 640장씩 구축할 계획이다. 직접수랭식(DLC)과 온수·외기 냉각을 적용하고 데이터센터 전력사용효율(PUE) 1.1 수준을 목표로 고집적·고전력 GPU 환경에 맞춰 전력과 네트워크까지 최적화한다는 구상이다.
이 외에도 SK텔레콤이 슈퍼마이크로·슈나이더 일렉트릭과 전력·냉각·IT 인프라를 모듈 단위로 사전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프리팹 모듈러 기반 AI 데이터센터 통합 솔루션 개발을 추진 중이다. GS그룹 역시 AI 데이터센터 관련 스타트업 기술을 계열사 사업과 연계하는 과정에서 모듈형 데이터센터 기술의 실제 사업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모듈형 데이터센터 확산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데이터센터 자체를 빠르게 제작할 수 있더라도 대규모 전력 확보와 부지, 인허가 문제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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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건축법상 모듈형 데이터센터의 법적 지위도 명확하지 않아 인허가 과정에서 해석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 내년 3월 AI 데이터센터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업계에선 모듈형 전기실 등을 건축물이 아닌 설비나 장치로 분류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다만 현행 특별법의 위임 범위만으로 시행령에 건축법상 특례를 담기는 어려워 향후 법 개정이나 규제샌드박스 등을 통한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AI 서버 업계 관계자는 "모듈형 데이터센터가 시장에서 자리 잡으려면 결국 경제성이 중요하다"며 "기존 상용 데이터센터를 임대해 사용하는 것보다 비용과 운영 측면에서 얼마나 효율적인지 입증된다면 관련 수요도 계속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