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전 ‘K-방산’ 실물로…국내 최고 화약무기 공개

지뢰 탐지 중 우연히 발견…당시 국가 주도 무기 생산·관리체계 실물로 확인

유통/생활/문화입력 :2026/09/21 14:41

오늘날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 ‘K-방산’의 역사적 뿌리를 보여주는 수백 년 전 화약무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국가가 화약무기의 생산과 관리를 주도하고 제작 감독관과 장인의 이름까지 새겨 책임을 명확히 했던 흔적이 실물로 확인되면서 한국 화기 발달사의 첫 페이지를 새로 썼다.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국가유산청은 나주 금성산에서 발견된 ‘황자화통(黃字火筒)’을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이날 황자화통 발견 이후 2년 넘게 진행한 조사·분석 결과도 함께 발표했다.

연구진은 황자화통을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발굴된 화약무기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로 보고 있다. 이날 공개된 황자화통은 길이 23.75㎝, 무게 1032g의 작은 청동제 화약무기다. 전체 길이는 젓가락 한 개 정도이고 총부리 지름은 2.95㎝로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크다. 안쪽 지름인 구경은 1.66㎝다. 나무 손잡이를 끼워 사용하더라도 전체 길이는 1m 남짓으로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소형 화기다.

나주 금성산 출토 황자화통(黃字火筒) 언론공개회에서 인사말하는 허민 국가유산청장. 사진=국가유산청.

하지만 작은 몸체에 새겨진 28자의 명문이 이 유물의 역사적 무게를 더했다. 황자화통에는 ‘丁巳十二月日 鍊 黃字火筒 重一斤十四兩 監造錄事安休甫 匠人石’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현장에서 유물을 소개한 어창선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이를 “정사년 12월에 황자화통을 만들었다. 무게는 1근 14량이다. 감독자는 녹사 안휴보이고 장인은 석이다”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물 스스로가 ‘나는 황자화통이다’라고 명확하게 이름을 밝히고 있다”고 강조했다.

명문에는 ▲제작 시기 ▲무기 명칭 ▲무게 ▲제작 감독자의 관직과 이름 ▲장인의 이름이 담겼다. 총부리에 별도로 새겨진 숫자 八은 무기의 제작번호나 관리번호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연구진은 보고 있다. 단순히 오래된 무기가 아니라 당시 국가가 화약무기를 어떻게 생산하고 관리했는지 보여주는 실물자료라는 의미다.

황자화통의 정확한 제작연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명문에는 제작 시기가 정사년이라고만 적혀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국내 화약무기 발달사와 문헌 기록, 유물의 형태를 종합해 제작연도를 1377년 또는 1437년으로 좁혔다. 1377년은 고려 우왕 3년으로 최무선의 건의에 따라 화통도감이 설치된 해다. 화통도감이 만들어지면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화약·화기 생산이 본격화됐다.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된 황자화통. 사진=지디넷코리아.

또 다른 후보인 1437년은 세종대 화기 개량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시기다. 현재로서는 어느 연도인지 단정하기 어렵지만 둘 중 어느 시기로 확정되더라도 현존하는 국내 화약무기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이라는 게 연구진의 판단이다.

황자화통이 당시 전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관심사다. 구경과 규격을 고려하면 조선 전기 삼총통에서 사용한 차중전과 유사한 발사체가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아직 황자화통 복제품에 화약을 넣어 직접 발사하는 실험은 진행되지 않았다. 화약을 다루기 위해 관련 규제와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차중전은 1467년 이시애의 난 당시 기록을 보면 방패 3개를 뚫을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었고,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유효사거리는 약 150m 정도로 알려진 강력한 무기다.

국가유산청은 황자화통을 단순한 고대 무기 한 점을 넘어 우리나라 화약무기와 국방기술 발전의 역사적 흐름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조명한다는 계획이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기자들과 만나 “황자화통의 발견은 우리 화약무기의 초기 역사를 실물로 확인하고 그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라며 “오늘 이 자리는 그동안의 연구를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나주 금성산 출토 황자화통이 처음 공개되는 모습. 사진=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은 오는 12월 열리는 대한민국 국제지상군방위산업전에 황자화통을 출품해 국내외에 우리 방산기술의 역사적 뿌리를 알릴 예정이다. 허 청장은 “고려 말이나 조선 초에 만들어진 것이 맞다면 오늘날 휴대용 로켓 무기인 ‘바주카포’와 같은 형태의 초기 모습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선조들의 기술과 지혜가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K-방산의 주역이자 방위산업 강국인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느껴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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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 연구도 이어진다. 현재 황자화통 발견 지역은 미확인 지뢰지대로, 연구진이 직접 조사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돼 있다. 현재까지 지뢰 탐지가 끝난 발견 지점 반경 약 5m만 조사가 가능한 상태다. 향후 군의 협조를 얻으면 조사가 가능한 범위부터 정밀 학술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며 내년에는 정확한 제작 시기를 규명하기 위한 학술대회를 열고 발사체 재현 및 실험 연구도 추진한다. 연구 성과를 토대로 황자화통의 국가지정유산 지정도 추진할 방침이다.

황자화통은 오는 23일부터 11월22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1층에서 열리는 발견 유물 속보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