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칼럼] 벤처 키우려면 기술보증기금 곳간부터 채워야 한다

전문가 칼럼입력 :2026/09/08 10:56    수정: 2026/09/08 11:00

이광재 국회 예결위원장

대한민국은 벤처강국을 말한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로봇, 우주산업을 키우겠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기술기업이 가장 절실할 때 위험을 함께 져주는 기술보증기금의 재정구조는 과연 그 목표에 맞게 설계되어 있는가.

숫자를 보면 의문이 생긴다.

이광재 국회 예결위원장

2026년 6월 기준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잔액은 약 62조 7000억원, 기본재산은 8조 5000억원이다. 기술보증기금은 보증잔액 약 30조 5000억원에 기본재산이 3조 1000억원이다. 운용배수는 신보 7.4배, 기보 9.8배다. 기보가 상대적으로 더 적은 기본재산으로 더 빡빡하게 보증을 운용하고 있는 셈이다.

은행들이 내는 법정출연금에서도 차이가 난다. 신용보증기금에 대한 금융회사의 기준 출연요율은 대출금 기준 연 0.225%다. 반면 기술보증기금은 0.135% 수준이다. 단순 비교하면 기보의 출연요율은 신보의 60%다.

왜 그래야 하는가. 오히려 반대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야 한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은 모두 중요한 정책금융기관이다. 그러나 맡고 있는 위험의 성격은 다르다.

신보는 기업의 신용을 보완한다. 기보는 이름 그대로 기술을 평가한다. 아직 매출이 없거나 적고, 담보도 부족하고, 기술이 시장에서 성공할지 확신할 수 없는 기업을 찾아내 미래가치를 평가해야 한다.

AI 스타트업의 핵심 자산은 공장이 아닐 수 있다. 바이오 벤처기업은 수년 동안 적자를 기록하다 하나의 신약으로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도 있다. 로봇기업도 기술개발 초기에는 매출보다 연구개발비가 훨씬 클 수 있다.

은행의 전통적인 신용평가로 보면 이런 기업은 위험하다. 그러나 혁신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이런 기업 가운데 미래의 삼성전자, 네이버, 셀트리온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기술보증기금이 존재한다. 그런 기관에 일반적인 신용보증기관보다 더 보수적인 재원구조를 적용한다면 모순이다. 

벤처금융의 본질은 실패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좋은 실패를 감당하면서 성공기업을 찾아내는 것이다. 기술보증기관의 대위변제를 무조건 실패로 평가하기 시작하면 직원은 안전한 기업만 찾아다니게 된다. 그러면 기보는 기술보증기금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신용보증기관이 된다.

기술보증기금 전경 (사진=뉴스1/기술보증기금 제공)

여기서 정책철학을 바꿔야 한다. "손실을 적게 내는 기관이 좋은 기관"이라는 잣대만 적용해서는 안 된다.

물론 부실한 심사와 도덕적 해이는 철저히 막아야 한다. 그러나 정상적인 기술위험을 감수해 발생하는 손실까지 정책 실패로 간주해서는 혁신금융이 작동할 수 없다.

실제 과거 통계를 보아도 흥미롭다. 2022년 말 대위변제율은 신보 1.4%, 기보 1.9%로 비슷했고, 사고율도 신보 2.0%, 기보 2.7%였다. 기술기업 지원이라고 해서 매년 반드시 손실률이 높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기술·벤처금융이 미래의 불확실성과 더 큰 꼬리위험을 떠안는 업무라는 점이다. 그 위험을 감당할 자본이 충분해야 한다.

정부 출연의 효과도 크다.

2025년 통상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기보에 700억 원을 출연하고 기보 자체재원 260억 원을 합쳐 960억 원의 재원을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1조2천억 원 규모의 특례보증을 공급했다.

정부와 기보가 960억 원의 위험재원을 넣어 1조 2천억 원의 기업금융을 만들어낸 것이다. 약 12.5배의 금융효과다.

이것이 보증의 힘이다.

정부가 벤처기업 한 곳 한 곳에 직접 돈을 빌려줄 필요가 없다. 정부가 기보의 기본재산을 두껍게 만들어주면 기보가 기술을 평가하고 은행의 자금을 끌어들여 몇 배의 민간금융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재정 1원이 금융 10원 이상의 길을 열 수 있다.

따라서 벤처정책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벤처기업에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만 물을 것이 아니라 "민간금융이 벤처기업에 들어가게 만드는 위험흡수자본을 얼마나 만들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나는 세 가지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금융회사의 기술보증기금 출연요율을 단계적으로 현실화해야 한다.

현재 0.135%인 기준을 우선 0.18% 수준으로 올리고 중장기적으로 0.20% 이상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동일한 출연기준대출금이라는 단순 가정하에서는 0.135%에서 0.18%로 올리면 기보의 법정출연 재원은 약 33%, 0.20%로 올리면 약 48% 증가한다. 신보 수준인 0.225%까지 간다면 약 67% 증가한다.

단번에 올릴 필요는 없다. 금융회사 부담과 경기 상황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조정하면 된다.

둘째, 정부 출연금을 경기대응 자금이 아니라 혁신투자를 위한 자본으로 보아야 한다.

AI·반도체·바이오·로봇·우주·기후기술 등 전략산업 보증계정을 만들고 정부가 일정 규모의 기본재산을 지속적으로 출연해야 한다.

특히 기술개발 단계, 사업화 단계, 스케일업 단계별로 위험이 다르기 때문에 보증상품과 정부 출연도 구분해야 한다.

정부 R&D가 기술개발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R&D → 기술보증 → 은행대출 → 벤처투자 → 스케일업으로 금융의 사다리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기보의 성과평가 체계도 바꿔야 한다.

대위변제율만 볼 것이 아니라 기보 지원기업의 매출 증가, 고용 증가, 후속투자 유치, 수출 증가, IPO와 M&A, 기업가치 상승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10개 기업을 보증해 3개가 실패했다고 해서 반드시 잘못된 정책은 아니다.

나머지 한두 기업이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기업으로 성장한다면 국가 전체로는 성공일 수 있다.

벤처경제는 원래 그런 경제다.

물론 은행들은 출연요율 인상에 반대할 수 있다. 출연금은 금융회사 입장에서 비용이다. 그러나 보증기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은행도 담보와 신용이 부족한 기업에 대출할 수 있다. 보증기관이 기업의 위험 일부를 대신 떠안으면서 은행은 새로운 고객과 이자수익을 얻는다.

따라서 법정출연금은 단순한 준조세라고만 볼 일이 아니다.

정책보증을 통해 은행이 이전한 신용위험의 대가이자 혁신금융 생태계에 참여하는 비용이라는 관점도 필요하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대한민국이 기술기업에 돈을 빌려주지 않는 가장 안전한 금융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실패할 수도 있는 기술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그중 세계적인 기업을 탄생시키는 금융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은행의 돈은 본질적으로 안전한 곳을 찾아간다. 벤처의 돈은 본질적으로 위험한 곳으로 가야 한다. 그 둘 사이에 다리를 놓는 기관이 기술보증기금이다.

그런데 다리를 튼튼하게 만들지 않고 벤처강국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기술보증기금에 대한 정부 출연을 확대하고 금융회사 출연제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기술금융의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기술강국이 될 수 없다. 국가는 기업 대신 성공을 선택해줄 수 없다. 그러나 도전할 수 있는 금융환경은 만들어줄 수 있다. 대한민국 벤처정책의 다음 단계는 지원금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기술을 믿고 돈이 흐르게 만드는 것이다. 그 출발점이 기술보증기금의 자본을 키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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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정책적으로는 “기보 출연요율을 신보와 똑같이 만들자”보다 ‘기술위험도·운용배수·정책성과에 연동하는 기술금융 출연요율 체계를 만들자’라는 관잠이 중요하다.

기보의 법률상 출연요율 상한은 이미 연 0.3%이므로, 현재 0.135%를 0.18~0.20%, 나아가 0.225% 조정해 나가야 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광재 국회 예결위원장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4선 국회의원이다.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노무현 정부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제35대 강원도지사와 제17•18•21•22대 국회의원, 제36대 국회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정치인과 행정가로 재직하면서 과학기술과 IT 쪽에 많은 기여를 했다. 노무현 정부 국정상황실장으로 재직하면서 판교 IT 밸리 조성의 기틀을 닦았으며,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K-뉴딜본부장으로서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한 '데이터댐' 사업을 추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