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진화 속도가 눈부시다. 생성형 AI의 발전은 우리가 일하는 방식, 속도, 품질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 올리고 있고, 정부 또한 'AI 3대 강국'이라는 국가적 어젠다를 설정하고, 기술 주권 확보와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AI 기업들의 움직임이다. 대부분의 AI 기업들은 적대적 테스트와 레드팀 운영으로 위험을 사전에 걸러내고, 생성물에 워터마킹과 출처 표시를 적용하며, 국제 협력을 통해 AI 운영을 위한 글로벌 규범 형성에도 동참하고 있다. 이는 AI 거버넌스가 단순한 원칙적 선언을 넘어, 실효성을 갖춘 연성법(Soft law) 기반의 실천적 규범으로 체계화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다만, 기술의 고도화에 비례해 그에 수반되는 잠재적 위험 역시 새롭고 복합적인 양상으로 발현되기 마련이다. 생성형 AI의 확산과 더불어 청소년 보호, 생성물에 대한 책임 귀속 등 이용자 보호 논의가 국내외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고, EU는 AI를 제조물책임의 규율 대상으로 포섭하는 새 지침의 시행을 앞두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관련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이용자 보호의 무게중심이 플랫폼을 넘어 AI 서비스 전반으로 옮겨 가는 국제적 흐름 속에서, 기술의 진화에 발맞추어 보호의 공백을 점검하는 일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규제 일변도로 흐르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최근 국내 입법 동향을 비추어 볼 때, AI 기본법이 시행된 지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았고 일부 규제조항은 적용마저 유예된 상황임에도, 국회에는 이미 20여 건의 개정안이 계류되어 있다. 이는 법의 성패와 규범적 실효성이 채 검증되기도 전에 성급한 입법적 개입부터 앞세우는 형국이다. 이와 같이 성급한 접근은 AI 생태계에 불확실성을 더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야기하며, AI 산업의 혁신을 견인하려는 정부의 정책 기조와 심각한 엇박자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조급함이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AI가 여느 기술과 달리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 범용기술이라는 데 있다. 콘텐츠에서 금융, 의료, 물류에 이르기까지 분야마다 위험의 양상이 다르고 규율의 방식도 달라야 하는 만큼, 하나의 법률로 이 모두를 아우르려는 시도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더욱이 이와 같은 새로운 규제를 더하지 않고도 AI 분야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은 기존의 개인정보보호법, 소비자보호법 등을 통해 이미 상당 부분 포섭되어 실효적으로 규율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AI 생태계가 채 자리 잡기도 전에 무거운 의무와 제재부터 부과한다면, 국내 AI 시장 전반의 발전이 뒤처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용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관건은 규제를 둘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기술적 진화와 발전에 맞춰 적응할 수 있고, 기술 중립적이면서 동시에 유연성을 가진 규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규제로 평가받는 EU의 AI법조차 아직 실효성이 검증되지 않아 각국이 그 성패를 관망하고 있다. 그사이 일본과 싱가포르는 새로운 법률을 쏟아내는 대신 기존 법체계를 유연하게 활용하는 길을 택했고, 오늘날 AI 거버넌스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가 참고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위험이 실증적으로 확인되기 전에 규제부터 신설할 일이 아니라, 설계 단계의 위험 검증과 영향 평가를 자율규제의 틀 안에서 제도화하며 규율의 정교함을 높여 가는 것이다.
결국 'AI 3대 강국'을 향한 여정에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규제의 신설이 아니라 지원의 확충이며, 그 지원은 시장을 앞에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들이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마음껏 경쟁할 수 있는 '공평한 운동장'을 마련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시장의 경쟁과 자정 기능을 믿고 기다리는 인내도 사전적 규제 제도를 촘촘하게 설계하는 일에 기울이는 노력 이상으로 중요한 정책적 덕목이다.
일찍이 에릭 슈미트는 인터넷이 공기처럼 당연해져 더는 언급되지 않는 날이 오리라 예견했다. AI 역시 머지않아 산업과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그 존재조차 의식되지 않는 기반이 될 것이다. 그날을 앞당기는 것은 촘촘한 규제의 그물이 아니라, 자율과 창의가 숨 쉬는 공평한 운동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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