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개정 노동조합법이 시행 100일을 맞은 가운데 자동차·조선·건설 등 주요 산업계가 원청의 사용자성 판단 기준이 여전히 불명확하다며 제도 보완을 촉구했다. 특히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안전을 위해 법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거나 지원을 확대할수록 하청노조와의 교섭 의무가 인정될 가능성이 커지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면 고용노동부는 법 시행 직후 집중됐던 하청노조 교섭 요구 증가세가 최근 크게 둔화하고 있다며 원·하청 교섭도 점차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해 산업계와 온도차를 보였다.
18일 국회에서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과 국가비전2050포럼 주최로 열린 ‘노란봉투법 시행 100일, 현장은 무엇을 말하는가’ 토론회에서 산업계 참석자들은 원청 사용자성의 범위와 교섭 의제를 보다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개정 노동조합법은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원청을 사용자로 인정해 하청노조와 교섭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 3월 10일 시행된 이후 1000개가 넘는 하청노조가 400여개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실제 교섭으로 이어진 사례는 아직 많지 않고, 상당수 사건은 노동위원회에서 원청의 사용자성 여부를 다투고 있다.
"안전 책임 다했더니 사용자"…하청 지원 위축 우려
산업계가 가장 문제 삼은 부분은 산업안전 관련 조치가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사는 "원청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을 성실히 준수할수록 교섭 등 법적 리스크가 확대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런 판단이 이어지면 원청의 하청업체 안전관리 지원이 오히려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노동위원회는 원청이 사업장 전체의 안전관리체계를 운영하거나 하청업체에 안전수칙을 적용하고, 안전점검과 시정 요구를 했다는 점 등을 하청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의 근거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경영계는 원청의 안전관리 활동 상당 부분이 법률에 따라 강제된 의무라는 입장이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은 하청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와 산업재해 예방조치, 안전정보 제공 등의 의무를 부담한다. 이를 근거로 별도의 단체교섭 의무까지 부과하면 기업이 하청 근로자에 대한 지원과 개입을 줄일 유인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폭염 대비 물품이나 휴게시설을 하청 근로자에게 제공하는 방안을 놓고 해당 조치가 향후 사용자성 인정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배상운 대한건설협회 기술안전실장은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적극적인 안전 관리를 위축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며 "노조 쟁의행위로 인한 건설현장 피해를 줄이고 국가경제와 국민생활까지 확산되지 않도록 현행 노동조합법의 ’대체근로 금지‘, ’사업장 점거‘ 관련 규정 개선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교섭 범위 불명확…연중 교섭 우려"
자동차업계도 사용자성 판단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주홍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전무는 "하청노조가 구체적인 교섭 의제를 제시하지 않은 채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며 "완성차업체들이 섣불리 교섭에 참여했다가 사용자성을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거나 관련 절차에 참여한 행위는 노조법상 절차를 이행한 것일 뿐 사용자성 판단 근거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용자성이 인정되더라도 원청이 실제로 결정할 수 있는 근로조건에 한해서만 교섭 의무가 발생한다는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동차 산업은 수만 개의 부품과 협력업체가 연결돼 있어 일부 공정의 중단이 완성차 생산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기존 원청 노조와의 임금·단체협상에 하청노조 교섭까지 추가되면 기업이 사실상 연중 교섭에 매달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조선업계 역시 산업안전 의제를 제시하면 원청 사용자성이 사실상 폭넓게 인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현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상무는 "노동위원회 결정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구체적인 이유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산업안전 분야라는 이유만으로 사용자성을 포괄적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는 산업안전뿐 아니라 교섭 의제의 범위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안전에 대해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된 뒤 하청노조가 임금이나 성과급, 근로시간 등 원청이 직접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까지 교섭 테이블에 올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원청이 노동위원회의 사용자성 판단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교섭 거부·해태에 따른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산업계는 사용자와 교섭 의무 범위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도록 한 것은 기업의 사법적 판단을 받을 권리를 제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용부 "3월 이후 교섭 요구 증가세 둔화"
고용노동부는 법 시행 초기 현장의 혼선은 인정하면서도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가 무한정 확대되는 상황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강승헌 고용노동부 노사관계법제과장은 "법 시행 전에는 원청 한 곳이 수십개 또는 수백개 하청노조와 1년 내내 교섭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현재 원청 한 곳당 교섭을 요구한 하청노조는 평균 2.6개 수준"이라고 말했다.
교섭 요구가 제기된 원청 사업장은 시행 첫 달인 3월 363개소였으나 4월 추가 사업장은 42개소, 5월에는 23개소로 줄었다는 것이다.
강 과장은 "교섭 요구 증가 폭이 완연하게 둔화하고 있다"며 "교섭 요구도 점차 안정화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현재 81개 원청에서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9개소(6월 10일 기준)에서 실제 교섭이 시작됐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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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는 노란봉투법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권한을 행사하는 원청에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부과하는 ‘권한과 책임의 일치’에 입법 취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산업별 특성과 현장 우려를 고려해 제도의 안착을 지원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강 과장은 "자동차·조선·건설 등 국가 핵심 산업에 미칠 영향을 무겁게 인식하고 있다"며 "노동조합은 과도한 교섭 의제 요구를 지양하고, 원청도 권한에 걸맞은 의제에 대해서는 성실히 교섭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도 현장 교섭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