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제주)=신영빈 기자] "전장은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실수를 덜 하는 쪽이 이깁니다."
김승겸 전 합참의장은 11일 제주 부영호텔&리조트에서 열린 국방로봇학회 학술대회 기조연설에서 군이 겪어온 실전의 본질을 이렇게 요약했다. 전투는 혼돈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환경이며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 역시 이 '마찰'을 줄이기 위한 방향에서 개발돼야 한다는 메시지다.
김 전 의장은 군 생활 40년 동안 경험한 실제 작전 사례를 바탕으로, 기술이 전장을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1992년 DMZ 무장침투 대응작전, 2015년 북한의 고사총·포격 도발 등 실전 상황에서는 예측과 교범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수 많은 변수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활용했던 열상감시장비(TOD), 대포병탐지레이더 등이 전황 판단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과학기술이 없었다면 작전의 출발점조차 마련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기술이 모든 답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드론·AI 기반 전력이 빠르게 확산되는 흐름을 인정하면서도, 기술이 실제 전장에 투입될 때 맞닥뜨리는 문제는 '종이 위의 성능'과 전혀 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드론 체공시간, 탐지 한계, 센서와 알고리즘 오작동 가능성 등은 실전에서만 드러나는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의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예로 들며 드론이 '저가 정밀유도탄'으로 기능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평가했다. 전장에서 요구되는 성능은 단순히 체공시간 또는 사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목표를 명확히 타격할 수 있느냐"는 실전적 기준이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AI 활용 전쟁에서 표적 식별 오류가 발생한 사례를 언급하며, AI 기반 지휘결심지원 시스템에서도 '해석 가능성'과 '투명성'이 핵심 과제라고 짚었다. 그는 "AI가 고도화될수록 결정 과정이 블랙박스화될 수 있다"며 무기 운용에서 인간의 감독권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자율무기체계 개발에 앞서 짚어야 할 원칙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방 인력 구조 변화도 AI·로봇 전력화 필요성을 더욱 키우는 요소로 지적됐다. 김 전 의장은 병력 감소 추세를 "갑자기 찾아오는 위기가 아니라 매년 축적되는 피로 골절"이라고 표현했다. 2040년 현역 입영 규모가 현재 대비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단순한 병력 대체를 넘어 전투력 보존을 위한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무인 복합체계가 단순한 미래 기술이 아니라 "우리 군의 존립을 위한 생존 전략”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개별 전력 개발에 그치지 않고, 기존 체계와의 연동성·확장성을 고려한 ‘패키지형 개발’이 중요하며, 기술자와 사용자의 지속적 소통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데이터 측면에서도 새로운 위협이 떠오르고 있다. 그는 중국군의 '대인공지능전(카운터 AI 워페어)' 대응 움직임을 언급하며, 앞으로는 "데이터 공격과 방어 자체가 하나의 작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가 안보 차원의 데이터 분류·관리 체계, AI 학습용 데이터 보호, 라벨링·파이프라인 정비 등이 국방 혁신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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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지자체로 확장되는 안티드론 시스템 도입 움직임도 언급했다. 그는 전장 영역이 전방뿐 아니라 후방 지역까지 확대되고 있다며, 국가 인프라 보호와 통합 방위 개념에서 국방 기술의 역할이 빠르게 넓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전 의장은 발표를 마무리하며 AI·로봇 기술을 "장비가 아니라 인간과 기술이 결합된 행위자"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 그 자체보다 전투체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편성되고 운용되는지가 미래 전력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의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