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근의 헤디트] AI 시대, 유산을 콘텐츠로 만드는 나라

디지털 헤리티지, K-컬처의 새로운 엔진으로

전문가 칼럼입력 :2025/07/21 10:48    수정: 2025/07/21 13:39

이창근 헤리티지랩 디렉터‧박사(Ph.D.)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의 시작은 곧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내건 ‘국민주권정부’는 글로벌 소프트파워 문화강국 실현을 국정의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그 중심에 유산과 기술, 산업이 교차하는 ‘디지털 헤리티지’가 있다.

허민 신임 국가유산청장은 지난 17일 취임사에서 “국가유산을 단순한 문화재가 아닌 국민의 정신과 정체성”이라 규정하며 AI 기반 기록화, 스마트 도슨트, 가상현실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유산 보존과 확산을 핵심 비전으로 제시했다. 

또 허 청장은 “우리는 AI 대한민국이라는 전환점 앞에 서 있다”며 “세계인이 언제 어디서든 K-헤리티지를 체험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이는 기술을 도구로 활용하지만, 감성과 세계화를 통합하는 새로운 국가유산전략의 선언이기도 하다.

이창근 헤리티지랩 소장ㆍ예술경영학박사 (미디어아트 디렉터 & 예술-기술 칼럼니스트).

디지털 헤리티지를 둘러싼 정책-제도-현장 동시 진화

입법부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김윤덕 국회의원이 최근 대표 발의한 「국가유산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AI·XR 기반 유산 콘텐츠 산업화, 원형 데이터베이스 구축, 창의 산업 융합 지원 등을 명문화했다. 이는 디지털 기술과 콘텐츠 산업이 융합하는 유산 생태계 구축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행보다.

현장의 변화는 더 빠르다. 펄어비스의 글로벌 게임 검은사막은 ‘아침의 나라: 서울’에서 경복궁을 고해상도 실사 기반 3D로 정밀 구현해 글로벌 게이머의 호평을 받았다. 전국 박물관의 AR·VR 콘텐츠, 지역의 테마관광 미디어아트 전시관도 유산 감상의 ‘몰입형 체험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제1회 국가유산 디지털콘텐츠 페어에서 펼쳐진 검은사막 아침의나라 조선 OST 배경 축하공연.

국정기획위원회 역시 국가유산정책을 글로벌 소프트파워 실현의 핵심 축으로 강조하고 있다. ‘반구천 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한국 유산의 국제적 위상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신호다. 이제 유산은 감상과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인의 체험과 공감을 이끄는 확산의 매개체로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 헤리티지는 감상이나 보존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창조적 재해석과 산업화, 세계화로 확장되는 ‘문화의 미래형 가치사슬’이다. 우리는 이제 유산을 보존하는 나라를 넘어, 유산을 콘텐츠로 만드는 나라, 그 콘텐츠를 세계인이 체험하게 만드는 나라로 전환하고 있다.

특히 2021년부터 문화재청이 추진한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은 디지털 헤리티지를 활용한 대표적 공공문화 프로젝트다. 초기 ‘세계유산 미디어아트’에서 현재 ‘국가유산 미디어아트’로 브랜딩됐다. 이 사업은, 수원화성, 백제역사유적지구, 강릉대도호부관아, 경주 대릉원 등 전국의 유서 깊은 문화유산을 무대로 예술과 기술을 융합해 대형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을 선보여왔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유산을 활용한 문화산업이 매력관광, 지역경제, 도시이미지와 긴밀히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성공사례로 꼽힌다.

디지털 헤리티지의 산업화, 창작 생태계의 기폭제

디지털 헤리티지는 선언을 넘어 실질적 산업 전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코엑스에서 ‘디지털 혁신 페스타’와 함께 열린 ‘제1회 국가유산 디지털콘텐츠 페어’는 문화유산-디지털을 결합한 새로운 시장 개척과 대중 확산을 입증하기도 했다. 특히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플랫폼이 공개되며 데이터 개방을 통해 콘텐츠 창작을 지원하고, 민간 플랫폼과의 연계를 통해 디지털 헤리티지 산업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올해도 ‘국가유산 디지털콘텐츠 원천자원 제작·보급 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이 사업은 전국 주요 유산을 대상으로 3D 에셋 1,023개를 제작해 유니티, 언리얼, Sketchfab 등 글로벌 콘텐츠 마켓에 무상 등록해 민간 창작자에게 자유롭게 개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창경궁, 덕수궁, 진주성, 광한루 등 역사적 상징성이 큰 유산을 중심으로, AI 학습데이터, 게임 배경, VR 시뮬레이션, 교육 콘텐츠 등 다양한 산업적 활용을 가능케 하는 고품질 원천소스를 제공한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디지털콘텐츠 산업이 유산 기반 데이터로부터 영감을 받는 창작의 원천자원을 제공하는 부분이다. 둘째, 유산 보존이 공공의 영역에 머물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유산이 민간 콘텐츠 산업의 IP로 재창조된다는 점이다. 즉, ‘유산의 산업화’는 콘텐츠 창작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가유산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며, K-콘텐츠의 정체성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디지털 헤리티지는 산업, 교육, 관광, 국가이미지 등 모든 분야로 확장 가능하다. 국가유산 디지털콘텐츠는 단지 ‘우리 것’이라는 이유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인이 공감하고 매혹당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기술, 이야기와 몰입감을 품은 K-콘텐츠로 진화하고 있다.

문화유산은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다. AI 시대, 그것은 K-콘텐츠의 원천 데이터이자 창작 자산이다. 유형과 무형, 자연과 왕실, 민속과 해양을 아우르는 한국의 유산은 그 자체로 수천 년의 서사 구조를 가진 거대한 세계관이다. 이제 이 세계관을 디지털로 구현하고 산업화하는 것이 ‘디지털 헤리티지’라는 이름의 국가유산전략이다.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웹툰, 미디어아트 등 모든 K-콘텐츠가 국가유산을 매개로 연결될 때, 그것은 가장 한국적인 동시에 가장 세계적인 문화가 된다. 디지털 헤리티지는 기록의 종착지가 아니라, 상상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시대 K-컬처를 움직일 가장 강력한 동력이자, AI 시대 대한민국의 문화주권을 증명할 국가유산청의 새로운 미션이다.

기억하자. 기록되지 않은 유산은 곧 사라진다. 하지만 기술로 확장되지 않은 유산은, 경쟁력 없는 자산에 머문다. 이제 유산은 ‘소유’가 아니라 ‘경험’이며, ‘보존’을 넘어 ‘확산’이다. 디지털 헤리티지는 우리의 뿌리이자, 미래 산업의 원천이다. 그것이 바로 K-컬처의 다음 엔진이며, 대한민국 문화전략의 가장 강력한 카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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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Media-Art Director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융합예술을 기획하고 디지털콘텐츠를 제작하는 창작 스튜디오 헤리티지랩(Heritage LAB)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스토리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테마형 관광콘텐츠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한국문화정보원과 충남콘텐츠진흥원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인천광역시 공공디자인위원, 강원도 건축물미술작품 심의위원,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21년 5월부터 ZDNET Korea 오피니언 필진으로 참여해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창근 헤리티지랩 디렉터‧박사(Ph.D.)

예술경영학박사(Ph.D.). ICT 칼럼니스트 & Media-Art 디렉터로 헤리티지랩 소장이다. 충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 이사와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전문위원을 겸한다. 여주세종문화재단 이사, 충남문화재단 이사,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정보원 이사를 지냈다. 2021년 5월부터 ZDNET Korea의 오피니언 필진으로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한다.
*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Art(예술창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