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디지털플랫폼정부가 성공하려면(중)

[디플정 사업의 두 위험 요소] 기술 및 관리 측면...공유할 데이터 정비가 선행돼야

컴퓨팅입력 :2024/02/13 23:36    수정: 2024/02/14 21:55

김덕현 세종사이버대 외래교수

우리나라는 1990년대에 행정전산망을 구축했다. 이후 2000년대 이후에는 디지털 정부 구현을 목표로 서비스 범위를 확대하면서 수준을 고도화했다. 그 결과, 2022년 UN의 전자정부 평가에서 193개 회원국 중 덴마크와 핀란드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2010년 이래 7회 연속 3위안에 드는 국가가 됐다.

이 뿐 아니다. 2022년 처음 실시한 OECD 디지털정부 평가에서는 33개국 중 종합 1위를, 2023년 OECD 공공데이터 평가에서는 40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많은 국민이 국세청의 ‘홈택스’나 ‘정부24’, ‘고용24’ 등의 포탈을 통해 생활과 직결된 정부 서비스를 편하게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제도 및 기술 측면에서 도전과제도 갖고 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2023년 발표자료에 의하면, 부처별로 구축한 약 1만7000개 시스템이 (상호연결이 어려운) 사일로(silo) 상태이며, 데이터 개방과 공유 실현에 이르는 장벽이 높고, 기술은 디지털이지만 절차는 아날로그이며, 많은 정부와 공공 시스템이 클라우드가 아닌 시스템통합(SI) 방식으로 구축된 것이 걸림돌로 지적됐다.

주문형과 맞춤형 개발을 의미하는 ‘SI 방식’은 클라우드 방식과 달리 모듈화와 표준화를 통한 연결, 재사용이 곤란한 모노리식(monolithic)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 ‘디플정 실현계획’에서도 당면 문제점으로 정부 부처간, 정부-민간 간에 존재하는 데이터 칸막이, 기술은 디지털인데 제도와 절차는 아날로그, 정부 주도 문제해결 방식 한계, 대규모 정보화 투자가 민간 창업과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 등이 꼽힌다.

‘데이터 칸막이’와 ‘아날로그 방식’은 기술 해결책과 제도 및 문화 측면의 해결책을 함께 동원해야 하는데 후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기술은 빠르게 변하지만, 사람과 조직 변화는 더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 문제해결 방식’은 정부가 민간에게 데이터와 서비스를 개방하고 참여와협업을 호소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정부는 공익 추구(예: 디지털 국가 구현)와 이질성을 좁히는 문제(예: 상호운용성 확보)에서는 오히려 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 기업과 개인을 포함한 민간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기술 인프라(예: 협업 플랫폼)와 제도적 뒷받침(예: 각종 인센티브)을 마련해야 한다. 디플정 사업은 이외에도 여러 근본적, 현실적 제약을 안고 있다. 예를 들면, 디플정 사업에 참여하게 될 국내 기업 대다수는 적어도 자금 면에서는 자발적 투자가 어려운 상태일 것이다. 

민간 참여를 촉발 및 확대할 예산은 전적으로 정부가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 조직과 기구 통폐합, 범정부 차원 CTO 설치에 따른 부처와 기관별 권한 및 업무분장 조정, 사업과 예산 조정, 기존 법제도와의 상충이나 중복 조정 등을 포함하는 ‘특별법’ 같은 것이 필요한데 국회와 행정부, 지자체 간 공감대 조성과 관련 법률 제, 개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 마디로 계획부터 실행까지 매우 어렵고 힘든 장애물이 많은 사업이다.

필자는 디플정 추진 과정에서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요소를 크게 두 그룹으로 본다. 즉, 이미 드러난 문제점이 증폭되면서 나타나는 위험과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로 인한 위험이다. 전자에 속하는 위험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① 데이터 공유 및 서비스 연결 한계 ② 목표 달성에 필요한 예산 조달 한계 등 두 가지만 살펴본다.

첫째, ‘DPG 허브’라는 플랫폼이 선(先)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질적인 서비스를 API만으로 연결하는 방식은 계속해서 기술과 관리 측면의 커다란 부담(소위 ‘기술 부채’)이 될 수 있다. DPG 허브는, 아직은 실체가 명확하진 않지만, <그림-3>처럼 정부-민간이 공유할 데이터와 서비스를 연결함으로써 사용자가 기존 서비스와 새로운 서비스를 함께 이용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한 API 카탈로그, 데이터 레이크, 공통 빌딩블록 등을 포함한다.

염려되는 것은 연결할 서비스 자체와 서비스를 통해 공유할 데이터에 대한 정비가 선행되지 않으면 API만으로는 기대하는 결과를 못얻는다는 점이다. 분산된 데이터 저장소(Repository)에 있는 다양한 데이터 표준화와 정제, 공유할 데이터 명칭, 타입, 위치와 접근 권한, 활용 범위 등을 정의한 메타데이터(Registry) 설계와 등록 및 관리 등이 전제돼야 한다. 데이터 레이크는 대량의 정형, 비정형 데이터를 분산 DB로 구축, 운영하게 해주는 효과적 기술일 뿐 그 자체가 데이터 공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API 카탈로그는 API를 모은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연결해야 할 서비스 선정과 연결을 통해 제공할 데이터에 대한 권한 관리, 내부망 또는 공개망을 통과하기 위한 보안 조치 등을 누가(즉, 시스템 또는 사람), 언제(즉, 실시간 또는 batch) 처리할 것인지 등을 구체적인 지침으로 규정하고 그중 일부는 자동 실행되도록 게이트웨이(Gateway)로 구현해야 한다.

DPG 허브 구축과 운영에 필요한 기술 인력 및 조직도 부족한 것으로 판단된다. 디지털 인프라(예: 민간 IaaS와 SI로 구축된 리거시 시스템 인프라), 플랫폼(예: 국내외 기업의 상용 PaaS, 정부와 공공이 개발한 K-PaaS), 애플리케이션(예: 공통서비스인 빌딩블록, 인증과 보안), 서비스(예: G2C, G2B, G2G 서비스와 ‘스핀-온’할 민간 서비스) 등 4개 계층은 명확한 아키텍처와 시스템 설계 및 구현 원칙에 따라 상호운용성이 보장되도록 개발 및 관리돼야 한다.

디플정 아키텍처는 한번 만든 것으로 끝나는 결과물이 아니다. 상설 조직(예: 에스토니아 RIA, 싱가포르 GovTech)이 상호운용성 규정과 지침을 업데이트해 가면서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와 같은 개발 및 관리 작업은 정부 부처나 기업, 연구소, 대학 등에서 겸직 형태로 참여하는 위원과 파견 직원, 용역업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단순 비교할 문제는 아니지만, 싱가포르는 스마트 국가 정책과 전략을 주관하는 SNDGG 외에 약 3천명(개발자 700명 포함)의 직원을 가진 실행조직인 기술청(GovTech)을 운영하고 있다.

DPG 허브에 대한 2023년도 예산은 외주개발과 용역비로 책정된 106억원 뿐이었다. 독일 정부는 EU GAIA-X 플랫폼 기술개발을 위한 2개 사업(iECO와 GXFS)에만 총 2천 7백만 유로(약 390억원, 3~4년간)를 투자했다. 특기할 점은 위 사업은 큰 규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프라운호퍼, 독일텔레컴 등 굴지의 연구소와 전문기업들이 컨소시엄으로 참여했다. 디플정 핵심인 플랫폼의 중요성에 비해 준비 작업에 필요한 기술, 인력, 예산 등이 상대적으로 작다.

둘째, (위에서 언급한 플랫폼뿐만 아니라) 디플정 사업 전체를 충분하지 않은 예산으로 추진하다 보면 분산&분할된 데이터와 정부-민간 서비스를 연결, 통합하려는 목표 달성이나 품질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목표 수준의 시스템을 구현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세부 과제별 진도 간 불균형이 생길 경우, 투자가 아닌 자원 낭비가 될 수도 있다. 2024년도 디플정 사업 예산 약 9386억원은 전체 정부 예산 약 656.9조원의 약 1.4%에 해당한다. 올해도 디플정 사업과 직,간접으로 연결된 많은 공공 정보화 사업이 추진될 것이다. 참고로 싱가포르는 스마트국가 사업에 지난 5년간 총 160억달러(약 21조원)를 투자했으며, 2024년 ICT 예산은 33억달러(약 4.5조원)로 2023년도 정부 예산 101.6조원의 약 3.2%에 해당한다(Govtech, 2023). 싱가포르 스마트국가 사업에는 집계되지 않은 민간 부문의 자발적 투자도 포함돼 있다.

디플정은 특성상 10년 이상의 장기 목표에서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할 대규모 사업이다. 정부 혁신을 넘어 경제, 사회 혁신과 맞물려야 할 사업이기에 범정부 차원의 사업과 예산을 결집하고 민간의 영리, 비영리 목적 사업과 연계해 충분한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민간 부문이 디플정의 설계, 구현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면, 2025년까지 정부 예산만으로 실현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며 결과물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필자 김덕현(金德顯)은...

관련기사

산업공학(학사)과 경영과학(석사,박사)을 전공했고 현재 세종사이버대학교 외래교수로 학부와 대학원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를 거쳐 핸디소프트에서 IT 전문가로 활동했다. 2003년부터 세종사이버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로 일하다 2018년 8월 정년퇴임했다.

한국전자거래학회장, 국방부 방위사업추진위원회 민간 전문위원, 한국연구재단 사업화 자문위원,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 ‘SW중심사회’ 편집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융합경영(2011년, 10인 공저), 융합 비즈니스(2014년), 4차 산업혁명과 융합(2019년), 전방위(360도) 기업혁신 전략·전술(2022년) 등이 있다.


김덕현 세종사이버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