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라이트 ESG칼럼] SEC가 공시로 인적자본 정보 의무화한 이유

전문가 칼럼입력 :2023/12/01 10:54

진양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ESG지속가능센터 연구소장

 기업에서 조직 구성원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부서는 보통 인사(人事)팀으로 불리었다. 그런데, 인사팀, HR팀이라 불리던 부서는 언젠가부터 스타트업·벤처를 중심으로 People팀, People&Culture팀, Talent팀 등으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삼성전자나 롯데와 같은 대기업에서도 ‘피플팀’ ‘스타팀’이라고 변경해 운영하고 있다.

이는 '사람'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는 것으로 과거 사람을 경영에 필요한 하나의 자원(Human Resource)으로 인식하던 것에서 벗어나 성과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자본(Human Capital)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에도 인사부서는 경영자의 전략적 파트너라며 인재경영을 강조했는데 최근 ESG로 함축되는 지속가능경영의 흐름 속에서 인간중심 경영 패러다임이 더욱 뚜렷히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기후변화에 이어 생물다양성, 인권문제, 그리고 특히 인적자본을 차기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의 주요 아젠다로 선정했다. 이는 인적자본이 기업에 중대한 리스크와 기회를 제공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다양하고 평등한 근무 환경, 임직원에 대한 투자 및 교육, 공정한 보상과 혜택 등 인적 자원 관련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앞선 2020년 8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상장 기업에게 인적자본 공시를 의무화하였는데 SEC에 따르면 상장 기업은 인적자본에 대한 정보, 특히 기업의 직원 수, 인적자본 개발, 인재채용, 안전, 참여, 유지와 관련한 운영 및 관리 조치나 목표를 투명히 공개해야 한다. 이는 기업 경영 성과와 미래 지속가능성에 시설, 인프라, 원자재과 같은 물적 자본 못지 않게 인적자본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SEC에서는 왜 인적자본에 관한 정보를 공시하도록 하였을까?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기업 경영에 ‘사람’이 가지는 중대성과 영향이 커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재무정보와 함께 기업의 전체 직원수와 같은 단순한 지표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경영환경이 더욱 복잡해지고 다변화하는 시대에는 이러한 단순한 지표만으로는 기업의 잠재 리스크와 성장가능성을 충분히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진양희 디라이트 ESG지속가능센터 연구소장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는지에 따라 기업 내부 근로자는 각기 다른 직원경험(Employee eXperience)를 갖는데 이는 곧 이직률, 업무효율, 우수인재 유치, 조직몰입 등의 경영성과와 직결된다. 실제 UN PRI에서 발표한 ESG의 사회(Social) 영역의 주제들은 건강과 안전, 인권, 포용과 다양성, 노동기준과 작업환경 등으로 대부분 인적자본에서 다루는 이슈와 맞닿아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위기상황과 불황에 기업이 대처하는 방식은 기업 내부 근로자는 물론 기업 외부에 있는 소비자와 대중들로 하여금 사회적 이슈에 투명하고 책임있는 기업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 큰 영향을 줬다. 나아가, 조직 내부 구성원 뿐 아니라 공급망 내에 있는 협력업체 종업원에 대해서도 마땅히 보호해야 할 ‘사람’이라는 관점이 공급망 실사 지침으로 법제화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이 제도의 영향을 받게 됐다.

과거 글로벌 기업이 자신들은 인권경영을 표방하면서 정작 공급망에 놓인 협력사에서는 강제노동과 아동노동 같은 인권 리스크를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UNGP와 OECD 등에서는 이러한 인권위험에 대해 인권영향평가 또는 인권실사체계를 수립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EU의 공급망 실사 지침은 사실상 UN의 ‘기업과 인권’에서 출발했다고 봐도 무방한데, 기업이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전체 과정에서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되며 나아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미칠 수 있는 잠재적인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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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독일에서 가장 먼저 시행된 공급망 실사법의 핵심 요소는 1) 인권 존중에 관한 공공 정책 성명서가 마련되어 있는지 2) 실제 및 잠재적으로 부정적인 인권 영향을 식별하는 프로세스가 마련돼 있는지 3) 효과에 대한 적절한 완화 조치와 통제가 마련돼 있는지 4) 일반에게 공개 보고를 수행했는지 5) 고충처리 메커니즘을 구축하거나 참여했는지를 주요하게 본다. 기업이 스스로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인권위험을 식별해 이에 대응하고 (또는 사전에 예방하거나) 그 처리 결과를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 것이다.

기업 내부 사람과 기업 외부 사람, 이들은 기업의 중요한 이해관계자로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기업 경영성과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ISSB와 SEC에서 요구하는 인적자본 공시항목은 그 중 일부에 불과하다. 기업 가치에 부정적이라는 리스크 관점을 넘어 기업이 오히려 사람과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Impact)의 관점에서 기업과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접근을 할 때 진정한 지속가능경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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