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단위 큐비트로 새로운 양자 컴퓨터 개발 길 연다

IBS 전자스핀 큐비트 기반 새 양자 플랫폼 제시···복수 시스템으로 논리회로 구현

과학입력 :2023/10/06 03:00    수정: 2023/10/08 13:14

원자 수준에서 구현한 큐비트 여러 개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음을 보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존과 다른 방식의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원천 기술이 될 수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양자나노과학연구단장(이화여대 물리학과 석좌교수) 연구팀은 고체 표면 위 단일 원자의 전자스핀을 이용하는 새로운 양자 플랫폼을 제시했다. 또 3개의 전자스핀으로 복수 큐비트 시스템까지 구현했다.

이 연구 결과는 학술지 '사이언스'에 5일(현지시간) 게재됐다.

0과 1의 두 값 중 하나만 갖는 일반 컴퓨터의 비트와 달리 양자 컴퓨터 큐비트는 0과 1의 중첩 상태로 연산을 수행해 정보 저장량과 연산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연구팀은 원자의 스핀을 제어해 큐비트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초전도나 이온덫 등의 방식으로 큐비트를 구현하는 기존 양자 컴퓨터의 한계를 보완할 새로운 길을 열리라는 기대다.

안드레아스 하인드리히 단장은 5일 이화여대 연구협력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초전도 방식은 큐비트가 매우 커 확장이 어렵고, 이온덫은 복수 큐비트를 다룰 때 속도가 느려지는 등 나름 장단점이 있다"라며 "우리 방식은 작은 원자 단위에서 원하는 정확도로 구성할 수 있고 확장이 용이하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미 선두 주자가 있는 다른 양자 컴퓨팅 방식에 비해 새 기술 분야에선 우리가 앞서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은 자체 개발한 ESR-STM을 이용해 고체 표면 위에서 원자 단위로 물질의 양자적 특성을 규명하는 연구를 한다. ESR-STM은 뾰족한 탐침으로 표면 위 원자를 조작하고 특성을 관측하는 주사터널링현미경(STM)과 스핀 방향을 제어하는 과정에서 흡수/방출하는 에너지로 원자 자기 상태를 연구하는 전자스핀공명(ESR) 기술을 결합한 실험 방식이다.

단일 원자 전자 스핀 큐비트의 3차원 모식도 (자료=IBS)

연구팀은 앞서 ESR-STM 장비를 이용, 단일 원자의 전자스핀을 제어해 큐비트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였다. 또 다른 선행 연구를 통해선 탐침과 직접 상호작용하는 원자가 아닌 멀리 떨어진 다른 원자의 스핀 상태를 원격제어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이같은 성과에 이어 이번엔 원격제어 방식을 여러 큐비트 구조에 적용해 '복수 큐비트' 시스템을 구현했다.

이 큐비트 플랫폼은 산화마그네슘으로 이뤄진 얇은 절연체 표면 위에 여러 개의 티타늄 원자들이 놓인 구조다. 연구진은 STM의 탐침으로 각 원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조작해 여러 원자 스핀들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복수 티타늄 원자 구조를 만들었다. 이후 탐침에서 오는 신호를 감지하는 센서 역할을 할 티타늄 원자(센서 큐비트)에 탐침을 두고, 원격제어 방식으로 센서 및 원거리에 놓인 여러 큐비트(원격큐비트)들을 하나의 탐침으로 동시에 제어‧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각 원격큐비트는 센서큐비트와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원격큐비트의 스핀 상태가 바뀌면 센서 큐비트에 영향을 주고, 이 변화는 탐침을 통해 읽힌다. 이어 연구진은 이 큐비트 플랫폼을 이용해 양자정보처리의 핵심 기본 연산인 'CNOT'과 'Toffoli' 게이트를 구현했다. 연구는 0.4K(-272.75℃)의 온도에서 수행됐다.

박수현 양자나노과학연구단 연구위원은 "원격으로 원자를 조작하면서 여러 개의 큐비트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며 "이전까지는 표면에서 단일 큐비트만 제어할 수 있었던 반면, 이번 연구를 통해 원자 단위에서 복수 큐비트 시스템을 구현하는 큰 도약을 이뤘다"라고 말했다.

큐비트 소자의 종류별 특징 (자료=IBS)

이번에 제시된 플랫폼은 큐비트 간 정보 교환을 원자 단위에서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 또 1nm 이하의 최소 크기 큐비트를 이용해 양자집적회로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큐비트 플랫폼과 차별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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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도체 등 특정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 다른 플랫폼과 달리 다양한 원자를 큐비트 재료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배유정 연구위원은 "전자스핀 큐비트 플랫폼을 수십, 수백 큐비트까지 확장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라며 “한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 양자정보과학의 새 시대를 열고, 혁신을 견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향후 큐비트 품질을 높이고, 전자 대신 핵 스핀을 이용하는 등 큐비트 확장성을 높이는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