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게는 오래된 미래가 있다.
바로 창업주 때부터 내려온 경영이념이자 철학인 '인화(人和)'다. 인화는 진리에 가깝다.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독립된 자아인 인간(人間)을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하자는 뜻이다. 때론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도 한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향하는 희망과도 같다. LG가 한 세기에 가까운 사사(社史)를 이어오고, 25만 여명의 임직원을 거느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도 이 인화가 토대다.
4대에 걸쳐 내려온 LG家의 장자승계 전통도 이 인화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故 구자경 명예회장은 나이 일흔이 되는 해에 무고(無故) 승계를 하고 물러났다. 당시 기업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 창업주인 선친의 갑작스런 타계로 회장직에 오른 고인이 평소 안정적인 기업 운영과 경영 승계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내린 결단이었다. 고 구본무 회장이 20년 간 혹독한 경영 수업을 거쳐 LG를 초우량 기업으로 키운 것도 인화를 바탕에 둔 거대한 여정 그 자체다. 인화와 장자승계 원칙은 가난하고 헐벗던 시대, 불협화음 없이 경영을 승계하려는 LG家의 생존 방식과 다름없다.
LG에게는 현재 진행 중인 미래가 있다.
선대회장이 반열에 올린 이차전지(배터리)-전장-소재 등 그룹 핵심 계열사의 사업을 더욱 고도화하고 글로벌 일등을 향해 달리도록 하는 일이다. 살아생전 선대회장은 LG가 제조·연구개발(R&D)과 함께 경영 혁신을 이뤄 국민과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초우량 글로벌 기업이 되기를 소망했다. 그래서 새해를 맞을 때마다 사업 고도화를 채찍질했다. 고 구본무 회장이 타계하기 4년 전인 2014년 수 조원을 투자해 축구장 152개 크기의 LG사이언스파크의 첫 삽을 뜬 것은 마지막 혼불이었다. LG사이언스파크는 이제 LG 기술 혁신의 총아가 됐다. 그는 LG가 마케팅에 소질이 없는 회사라는 세간의 꼬리표에 개의치 않았다. LG는 뽐내기보다 세계 최고의 공정과 제조 기술력으로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이 제품을 세계 각국의 소비자에게 가장 빠르게 전달해 고객가치를 창출하려고 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허상보다는 오랜 시간이 걸려도 고객의 마음을 쫓는 우보천리(牛步千里) 같은 우직함이 LG의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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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 일에 한 세기동안 매진해 왔다면 그것은 목숨과도 같을 것이다. 구광모 회장이 나이 마흔에 그룹 총수직에 오른 이유도 아마 선대회장들의 목숨과도 같은 일을 한시라도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는 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LG家의 상속분쟁은 애당초 시작되어선 안될 일이었다. 앞서 구본무 선대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씨는 지난 2월 서부지법에 상속 재산을 다시 분할하자는 취지의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냈다. 다음 달이면 첫 재판이 열린다. 양 측이 주장하는 쟁점은 아픈 가족사만큼 복잡하다. 하지만 LG家의 상속분쟁 소송의 논점은 단 하나다. 어느 누가 이겨도 승자가 없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오직 법과 증거에 따른 법리 재판이 되어야 하는 여타의 소송과는 결이 다르다. 혈연 간 싸움에 법과 증거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유사 이래 부모와 자식 간의 다툼엔 깊은 상처만 남을 뿐이다. 상속회복을 한들 LG에게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혹여 망신주기를 바란다면 오욕을 드러내는 일이다. 이미 재산분할 합의서가 있고 제척기간도 지난 일이다. LG의 미래를 짊어진 구광모 회장과 가족 간의 관용과 용서, 그리고 가슴 속 깊은 화해가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