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KT 대표엔 나쁜 짓을 덜 할 사람이 낫다’는 칼럼을 쓴 바 있다. 그 글에서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비교 대상은 ‘능력 있는 척하는 사람’이다. ‘능력이 있다’는 건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능력이 있다’는 말은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논리적으로 헛소리일 뿐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능력 있어 보이는 사람’을 고르게 되는데 그 자는 ‘능력 있는 척하는 사람’이다.
과거를 보면 현재와 미래의 능력까지도 알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장담할 수 없다. 과거의 좋은 결과가 그 어느 것으로도 부정될 수 없는 능력 때문인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인지 알 길은 없다. 역사적으로 한 번 성공하고 두 번 실패한 경우를 찾으면 단행본 열 권 정도를 엮을 수도 있다. 능력이 인선의 결정적 요소로 보이지만 그건 사실 환상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는 KT 대표 인선 과정에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KT에는 주인이 없다. 아니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주인은 있지만 모두 잘게 쪼개져 어느 하나 나만이 주인이라고 나서지 못한다. 그래서 가짜 주인(대리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는 가짜 주인이지만 일단 되고 나면 진짜 주인 행세를 한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진짜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는 자가 주인이 되는 문제.
가짜 주인의 지위는 ‘공짜 옵션’에 비유될 만 하다. 옵션(option)은 영어 단어로 ‘선택’을 의미하지만 자본시장에서는 꽤나 공부를 해야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한 상품이다. 시장에는 수많은 옵션이 있는데, 고를 수 있는 자유를 주되 잘 고르면 이득을 보지만 잘 못 고르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는 점은 모든 옵션이 동일하다. 자본시장에서 발행되는 옵션에는 그러므로 ‘공짜’가 있을 수 없다.
KT 대표 자리를 ‘공짜 옵션’이라 하는 까닭은, 되는 순간 많은 것을 얻지만 잃을 것은 없기 때문이다. KT 대표를 선출할 때마다 논란이 일고 정치권이 기웃거리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공짜 옵션’이 워낙 크기 때문에 밖에서 힘 있다고 하는 자들이 모두 군침을 흘리는 거다. 그리고 자격의 정당성을 얻으려고 ‘능력’이란 걸 내세운다. 게다가 ‘능력’만 있다면 주인 행세를 해도 된다고 믿는다.
작게 흩어져 있지만 KT의 진짜 주인인 사람들이 화가 나는 이유가 그것이다. 가짜 주인이 안방을 차지하고 진짜 주인 노릇을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집안을 조금씩 망가뜨린다면 더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짜 주인의 최대 병폐는 무능력과 조급함 때문에 미래 자산을 끌어와 현재를 살찌우려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지속가능한 성장’보다 ‘임기 동안의 성과’에만 매달리는 거다.
진정한 주인은 ‘지속가능한 성장’만을 생각한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야말로 모든 주인들의 염원이다. 하지만 가짜 주인은 ‘오래’에는 관심이 없다. 임기동안 최대한 빼먹는 것이 자신에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짧은 성과를 내야만하고, 미래의 것을 당겨오는 수밖에 없다. 무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주인들에게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해치는 그 모든 게 ‘나쁜 짓’이다.
가짜 주인이 행하는 나쁜 짓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위에서 말한 것처럼 미래 자산을 당겨쓰는 짓이다. 둘째, 짧은 기간에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외부 세력을 대거 영입하고 중책을 맡기는 짓이다. 셋째, 진짜 주인이 아니라 외부의 힘 있는 자를 섬기는 짓이다. 넷째, 내부 인력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는 짓이다. 마지막으로 진짜 주인이 누구인 줄 모르고 자신이 주인인 줄로 착각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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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대표 선임 절차가 두 번이나 무산된 뒤 세 번째 다시 진행되고 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차질이 있었는지도 충분히 논란거리지만 그런 차질 뒤에 무엇을 얻었을 지도 의문이다. KT 대표 자리가 ‘공짜 옵션’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였다면 ‘공짜 옵션’이 왜 문제인지도 공유됐으면 한다. ‘공짜 옵션’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는 목숨을 건 창업이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는 탓이다.
그게 누구든 ‘능력 있는 척하는 사람’보다 ‘공짜 옵션’의 폐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KT 대표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