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공영방송을 야누스의 괴물로 만들었는가

[이균성의 溫技] 정치로 인한 의원성 질환 피해자

데스크 칼럼입력 :2023/07/06 10:38    수정: 2023/07/06 14:42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4년부터 30년 가까이 전기요금에 통합 징수되던 TV 수신료가 분리 고지되고 따로 징수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됐다. 방송통신위원회는 5일 전체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은 후속 조치를 거쳐 시행되겠지만, 공영방송인 KBS는 물론이고 야당과 언론단체 등이 크게 반발하고 있어 후폭풍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기요금과 TV 수신료의 별도 고지 및 징수가 실제로 이뤄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행령 개정을 위한 행정절차는 위법 논란이 있을 정도로 속도전을 펼쳤지만, 실제 분리징수를 해야 할 KBS와 징수 수탁 사업자인 한국전력과는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정 후속 조치가 다 끝나더라도 실제 분리 징수가 되려면 실무 준비가 더 필요하단 뜻이다.

법률문제도 있다. KBS는 지난달 법률로 정한 사항을 시행령으로 제한하는 것은 헌법 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시행령 개정 절차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냈다. 또 언론현업 5단체도 방송법 시행령 개정 절차 중단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야당 추천 김현 방통위원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의 방통위원 2명의 의결은 법률 위반”이라며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라 했다.

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 사진=뉴스1

반대하는 쪽의 주장처럼 이번 개정안 처리는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화끈하다 못해 무모해보일 정도다. 대통령실이 주도해서 그런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3월9일 국민제안 누리집에 ‘TV수신료 징수방식 개선 국민 참여 토론’과 여론 조사를 실시했고, 높은 찬성률을 기반으로 6월5일에는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방통위와 산업통상자원부에 후속 조치 이행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방통위는 논란이 거센데도 불과 한 달 만에 일사천리로 개정안을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문제가 제기된 만큼 헌법재판소가 가릴 것이다. 그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번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공영방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대통령실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나 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면 공영방송이 과연 존재할 이유가 있는 지 의심스럽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됐다고 해서 TV 수신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집에 TV 수상기가 있는 일반 국민은 반드시 수신료를 내야 한다. 방송법 제64조에 그렇게 규정돼 있다. 수신료는 TV를 시청하는 대가인 시청료와는 다른 개념이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과 2008년 두 번에 걸쳐서 이에 대해 ‘공영방송사업의 소요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부과되는 특별부담금’이라고 판단하였다.

전기요금 통합 징수는 어차피 내야 할 돈을 걷기 위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징수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공영방송의 필요성이 인정되고 안정적으로 더 좋은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징수 방법이다. 분리 징수는 비용을 높이고 징수율을 낮추게 된다. 심하면 현재 6천억 원 가량인 징수액이 1천억 원대로 줄어들 수 있다고 한다. 왜 효율이 떨어지는 일을 일부러 해야만 하는가.

이유는 딱 한 가지다. TV 수신료 문제가 정치권이 공영방송을 길들이기 위한 아킬레스건이라는 데 있다. 민주화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의 경영진은 대체로 엽관제(獵官制.Spoil system, 선거에서 이긴 권력이 관직 임명권을 갖는 제도)를 따랐다. 정권 교체가 반복되면서 공영방송 경영진도 당파성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게 되었고, 내부 인력도 두 쪽으로 갈라져 극심하게 대립하게 된 것이다.

정권과 공영방송 경영진의 당파성이 엇갈리거나 정권과 공영방송 경영진이 너무 밀착될 경우 TV 수신료 문제가 핵심 이슈로 떠오르곤 했다. 이 문제가 정치권이 공영방송을 협박하는 주요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이 싸움으로 경영진이 교체되고 논조가 급변하는 것을 국민들은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럴 때마다 공영방송은 만신창이가 되고 국민의 절반은 공영방송을 극찬하거나 혐오하게 되었다.

개정안을 통과시킨 김효재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은 “사실 KBS 수신료는 편의점 도시락 하나에도 못 미치는 금액(2500원)”이라면서도 “KBS가 수신료를 달라고 국민에 말할 자격이 있는지...냉정하게 돌아보고...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절반은 맞는 말이다. KBS에 자격을 묻는 국민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들 또한 KBS를 그렇게 만들어온 주체라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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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권력과 당파성에 매몰되지 않고 국민 삶만 보살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모든 방송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국민의 어려움을 들여다본다면 또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다면 굳이 왜 공영방송이 필요하겠는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국민의 돈으로 운영되며 권력과 자본을 견제하는 공영방송이 필요한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어쩌랴. 공영방송 또한 엽관제에 휘둘리면서 또 다른 괴물이 된 걸.

괴물이 된 공영방송은 정치의 처방으로 인한 의원성 질환 피해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