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SW) 업계가 10년 된 화두로 다시 시끄럽다. 하나는 공공 SW 사업에서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를 손보는 문제다. 또 하나는 교육부가 추진한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나이스)이 말썽을 부렸는데 그 원인이 무엇이냐는 문제다. 나이스 문제를 대기업 참여 제한 제도와 연결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정부와 업계 관계자가 30일 환담을 갖는다고 한다.
대기업 참여 제한은 그 본질에 있어 반(反)시장적이다. 나쁜 제도라고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시장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을 뿐이다. 시장이 그 자체로 선(善)이라고 할 수는 없다. 독점으로 인한 폐해가 대표적이다. 다양하고 건강한 시장 생태계를 위해서는 필요에 따라 정부가 개입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정부 개입이 과하다면 그 또한 생태계를 해칠 수도 있겠다.
공공 SW 사업에서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를 만든 것은 지난 2013년이다. SW산업진흥법 개정을 통해서다. 이 시장에서 대기업의 독과점을 막고 중견·중소기업을 육성하자는 취지였다. 당시만 해도 이 명분이 득세했다. 공공 SW 사업의 경우 대기업이 수주하고 몇 단계의 하청을 거쳐 수행되는 게 관례였다. 다단계 하청구조 탓에 중소 SW 기업들이 성장할 수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명분은 조금씩 퇴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많은 반(反)시장적 조치가 결국 겪게 되는 부메랑 같은 것이다. 시장은 관리되어야 하는 게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인위적 틀에 가둬서는 안 되는 생물 같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갇히면 생기를 잃고 병이 든다. 대기업 참여 제한도 처음엔 시장 관리의 효율적인 길일 수 있어도 시간이 길어지면 시장을 병들게 하는 족쇄가 될 수 있는 것.
이 제도가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 갑질을 없앨 순 있었을지 모르지만 갑질 자체를 없앨 순 없다. 갑질 주체가 중견기업이나 프로젝트 수주 기업으로 바뀔 뿐이다. 이 제도가 중소기업의 매출 성장에 도움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도리어 온실 속에 넣어 혁신의 동기를 앗아간 것일 수도 있다. 공공 SW 레퍼런스가 사라진 대기업은 해외진출이 제한되고 협력 중소기업도 덩달아 수출이 막혔을 수도 있다.
이 제도의 부작용이 없다 할 수 없기에 대기업 참여 제한은 몇 차례 손질을 거쳐 계속 완화됐다. 국가 안보, 인공지능 등 신기술, 긴급 장애 등 대기업 참여 제한 예외 조항을 늘려온 것이다. SW 사업은 기본적으로 늘 신기술을 필요로 한다. 기술은 급변하고 시스템은 지속적으로 보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공 SW 사업에서 대기업 참여 제한 예외 사례가 늘어난 것이 그 때문이다.
이 제도를 놓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해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갈등 때문에 놓친 더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용자 문제가 그것이다. 공공 SW사업의 본질은 정부 시스템의 디지털 혁신에 있다. 공무 작업 효율을 높여 대민 서비스를 향상하는 것. 저렴한 비용에 안전한 최상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 SW 산업 진흥이라는 목표가 이 본질과 충돌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이스 불통 사태가 이 제도 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렇게 연결시키려는 빌미를 제공한 건 사실이다. 4세대 나이스 구축 과정에서 교육부의 요구가 무시된 것은 사실이고, 일선 학교에서 큰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SW 산업 진흥을 위해 일선 공무원과 국민의 피해를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혹시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선순위가 바뀐 거다. 산업 진흥은 그 길만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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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참여 제한의 부작용이 드러난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제도 도입의 취지 자체가 부정돼서는 안 된다. 대기업의 독과점과 그에 따른 하청구조로 중소 SW 기업이 메말라가는 일이 다시 반복된다면 그야말로 ‘잃어버린 10년’이 되지 않겠는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SW 진흥을 위한 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되, 공공 SW 고도화 책임이 어디에 있는 지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SW산업 진흥도 필요한 일이지만, 나이스 불통 사태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파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