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은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그러나 블랙홀 주변을 도는 가스들이 빛을 내뿜고, 강력한 제트 기류를 일으키는 등 다양한 천체물리 현상이 나타난다. 이같은 블랙홀 주변 환경에 대한 이해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관측 결과가 나왔다.
한국천문연구원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진이 M87 은하 중심에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의 그림자와 강력한 제트를 동시에 포착했다.
또 M87 블랙홀의 부착원반의 모습도 사상 처음으로 확인했다. 부착원반은 블랙홀의 중력에 근처의 기체가 끌려 들어가는 '부착'에 의해 기체들의 회전이 빨라지면서 빛을 내는 현상을 말한다.
이 연구는 26일(현지시간)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지구에서 5천 500만 광년 떨어진 M87 은하 중심의 블랙홀의 이미지는 사건의지평선망원경(EHT) 프로젝트에 의해 2019년 공개됐다. 인류가 최초로 이미지를 포착한 블랙홀이다. 블랙홀은 빛을 포함해 모든 것을 빨아들여 관측할 수 없지만, 주변을 도는 가스가 내는 빛에 의지해 오렌지빛의 고리가 어두운 중심을 둘러싼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당시 ETH는 1.3㎜ 파장대에서 관측해 블랙홀 주변의 광자 고리만 관측했다. 이번엔 국제 밀리미터 초장기선 간섭계(GMVA)와 칠레 아타카마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전파간섭계(ALMA), 그린란드 망원경(GLT)을 이용해 3.5㎜ 파장대에서 관측, 광자 고리 외에도 바깥쪽 부착원반의 플라즈마에서 나온 빛도 새로 포착했다. 이 때문에 이번에 관측한 고리는 EHT로 관측한 고리 구조보다 크기가 50% 컸다.
지금까지 블랙홀 부착원반의 존재에 대한 간접 증거는 제시됐으나 부착원반의 구조를 분해해 영상화한 적은 없었다. 이번 관측으로 부착원반에서 나온 빛이 블랙홀 주변의 고리 구조를 만들어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M87과 같은 무거운 타원 은하의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천천히 흡수한다는 기존의 예측 또한 증명했다.
연구진은 최초로 M87 블랙홀의 고리 내부 어두운 '그림자' 부분과 블랙홀 주변 제트도 하나의 이미지로 동시에 포착했다. 제트는 기체나 액체 등 물질의 빠른 흐름을 말하며, 블랙홀 주변에선 강력한 자기장과 부착원반, 부착원반에서 나오는 방출류 등이 블랙홀과 상호작용하며 강력한 제트 방출 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블랙홀 주변 제트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선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관측을 통해 블랙홀 주변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미지를 얻어 제트 현상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으리란 기대다.
이번 관측 결과는 블랙홀이 강한 중력으로 주변 물질을 흡수할 뿐만 아니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제트를 만들어 블랙홀로부터 멀리 떨어진 별과 은하들의 진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천문연이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하와이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 GMVA, ALMA를 활용해 M87 블랙홀을 한 달간 네 차례 집중적으로 추가 관측할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M87에서 관측되는 강한 제트의 형성 원인과 블랙홀 주변 플라즈마의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계속 연구할 예정이다.
박종호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수십 년간 예측만 무성했던 블랙홀 부착원반을 사상 최초로 직접 영상화해 존재를 증명했다는 점에서 블랙홀 연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결과"라며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어떤 방식으로 흡수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막대한 에너지를 분출시켜 블랙홀로부터 멀리 떨어진 별과 은하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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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경북대학교 지구시스템과학부 교수는 "이전의 EHT 영상이 블랙홀 자체의 실존을 증명했다면, 이번 영상은 블랙홀 바로 주변의 복잡한 천체물리학적 과정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발견에는 한국천문연구원이 운영에 참여하는 ALMA의 역할이 컸다. ALMA는 이미지의 감도와 남북 방향 분해능을 크게 향상해 사상 최초로 3.5㎜ 파장대에서 고리 구조의 발견을 가능하게 했다. 한국 연구진은 초장기선 간섭계 데이터의 오차 제거와 데이터를 이미지로 변환하는 과정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