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KT 대표 자리를 탐내는 것일까

[이균성의 溫技] 잃을 게 없으니까

데스크 칼럼입력 :2023/02/21 14:09    수정: 2023/02/22 10:15

KT 최고경영자(CEO) 선출을 위한 공모에 총 34명이 응모했다고 한다. 내부 인사가 16명이고 외부인사가 18명이다. 외부인사는 다시 KT 출신과 순수 외부인사로 나뉜다. KT 출신은 11명이고 순수 외부인사는 7명이다. KT 출신 인사는 다시 순수 기업인과 정치 성향이 짙거나 정치인으로 변신했던 인물로 나뉘고, 순수 외부인사도 순수한 기업인 출신과 정치인이나 관료 출신으로 나눌 수 있다.

KT는 잘 알려져 있듯 민영화 이후 ‘특정된 오너’가 없는 이른바 ‘소유분산기업’이다. 그러다보니 CEO의 자리를 주인의 자리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운만 좋으면 돈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 시가총액이 10조원 안팎인 기업의 주인행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횡재도 이런 횡재가 없다. 정치권이 권력을 획득했을 때 KT CEO 자리를 탐내는 배경이 바로 그것이다. KT CEO 자리는 덤이다.

KT 사옥 (사진=뉴스1)

누군가는 경영을 ‘종합예술’이라 한다. 기업의 경영이든 나라의 경영이든 마찬가지다. 이 말의 본래 취지는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도 해석된다. 전문성보다는 총체적인 의사결정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식의 해석이다. 그럴 수도 있다. 정치 전문가를 제끼고 군인이나 검사가 정치를 하는 경우도 있다. 기자 출신이 뛰어난 경영자로 변신했던 사례도 적지 않다.

전문성은 어떤 경우에 약보다 독이 되기도 한다. 깊이 파지만 넓게 보지 못하는 약점을 가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엔지니어가 창업을 한 뒤 회사가 커지고 사안이 복잡해졌을 때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는 경우가 그런 사례일 것이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성장과 지속가능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애플도 구글도 그렇게 하고 있다. KT의 경우도 그럴 수 있다.

이 이론이 완전히 엉뚱한 것이라면, KT 출신이면서 경영에 집중하기보다는 정치인으로 변신했던 사람이나, 기업 경험이 전혀 없는 교수나 정치인 그리고 관료라거나, 기업 경영에 참여는 해봤지만 통신과 IT에는 문외한인 사람이, 시가총액 10조 거대기업의 CEO가 되겠다고 나서는 일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논리를 조금 비약하면 당구 최고봉에 오른 이가 KT CEO로 나선 것과도 같다.

이 이론의 오류는 그러나 쉽게 간파되지 않는다. KT는 CEO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굴러가는 거대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엉뚱한 CEO가 순식간에 회사를 망가뜨릴 수도 있지만 그러기보다 겉은 멀쩡하고 속으로 조금씩 멍이 들어갈 가능성이 더 높다. 누가 되든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 다만 조금씩 아프다가 점점 죽어가는 것이다. 그게 누구든 3년 임기 안에 완전한 바보가 될 리는 없겠다.

KT 지원자격에는 ‘▲경영·경제에 관한 지식과 경력이 풍부하고 ▲기업경영을 통한 성공 경험이 있으며 ▲최고경영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정보통신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보유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명시해놓았지만, 그리고 이는 충분히 합리적인 기준이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공염불일 뿐이다. 이 모든 세세한 조건은 ‘종합예술에 출중한 인물’이라는 이미지 속에 다 덮이기 때문이다.

KT CEO 자리가 그렇다. 엄청 중요하지만, 누가 되든 그 결과가 당장 드러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더구나 종합예술을 하는 존재라는 데 뭣이 문제될 게 있겠는가. 그가 누가되든 엄청난 횡재를 하는 셈이지만 그 대가로 그가 잃을 것은 거의 없다. 명예? 회사를 망가뜨렸다는 불명예를 안을까봐? 그럴 일은 쉽게 발생하지 않는다. 그가 떠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결과가 드러날 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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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KT CEO 자리를 함부로 보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지원자 34명 중에 일부는 여러 언론을 통해 정치 낙하산으로 평가되는 듯하다. 아마 그렇게 평가받는 사람들이 KT CEO 자리를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속으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 전문성이란 외피까지 두른 사람이 더 위험할 수 있다. 무슨 자리든 그 자리를 맡는 순간 잃을 게 많은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 사람만이 속으로 멍드는 것을 두려워한다. 결국 자신이 잃는 거니까.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KT 차기 CEO 선임에 관계된 사람들이 모쪼록 이 점을 잘 고민했으면 한다. KT가 한꺼번에 휘청거릴 수 있다는 식의 쓸 데 없는 우려는 하지 말고 속으로 조금씩 멍들게 할 자가 누구인지부터 파악해 한 명 씩 걸러내라. KT 주주와 사용자와 임직원의 생각이 이와 크게 다를 바 없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