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빅테크 시장에 또다시 큰 싸움이 벌어졌다. 오픈AI의 챗GPT가 촉발한 초거대AI 경쟁이 그것이다. 챗GPT의 기세와 위력은 그야말로 공포에 가깝다. 출시 2개월 만에 월간 활성 사용자(MAU) 수가 1억 명을 돌파했다. 지금까지 가장 빠른 시기에 1억 명을 돌파한 서비스는 틱톡으로 9개월이 걸렸고, 인스타그램은 2년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챗GPT의 열풍이 얼마나 뜨거운 지 알 수 있다.
챗GPT 열풍의 근원은 인간의 언어에 대한 거의 완벽한 이해라고 볼 수 있다. ‘튜링 테스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은 ‘계산기계와 지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컴퓨터와 대화를 나누어 컴퓨터의 반응을 인간의 반응과 구별할 수 없다면 해당 컴퓨터가 사고(思考)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능력을 처음으로 입증한 서비스가 챗GPT다.
챗GPT의 출현으로 가장 곤혹스러운 곳은 구글이다. 구글은 이미 수년전 알파고를 앞세워 이세돌 9단을 꺾으며 AI의 위력을 과시한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이 AI 분야 최강자는 구글일 것으로 여겨왔다. 챗GPT 출시 이후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가 ‘비상경계령(Code Red)’를 내리고, 3년 전 회사를 떠난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불러들여 머리를 맞댄 게 엄살일 리가 없을 것이다.
구글이 생성 모델을 앞세운 초거대AI 경쟁에서 선수를 놓친 것은 어쩌면 기술 부족 탓이 아닐 공산이 크다. 그보다는 초거대AI의 수익 모델에 대한 고민과 AI의 윤리나 신뢰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속도를 조절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오픈AI는 그 세 가지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스타트업이었고, 더 속도감 있게 서비스를 내놓았을 터다. 이 지점이 결국 이번 싸움의 관전 포인트일 거다.
구글도 챗GPT 대항마를 내놓을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인공지능(AI) 언어 프로그램 '람다(LaMDA)‘를 활용한 '견습 시인'(Apprentice Bard)을 테스트하는 '아틀라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대표적이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도 2일(현지시간) 실적 발표 이후 컨퍼런스콜에서 이를 시인했다. 수주 혹은 수개월 안에 출시할 것이라고 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게 확실하다.
이 대결에서 승부처는 두 가지의 속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첫 번째는 구글이 얼마나 이른 시기에 챗GPT와 맞먹거나 그것을 능가할 서비스를 오픈할 수 있을지에 달렸다. 챗GPT가 2개월 만에 1억 명의 사용자를 끌어 모았고 현재의 추세를 감안하면 앞으로 그 속도가 더 가파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글의 오픈 시기가 늦어질수록 챗GPT는 추격할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갈 수도 있는 거다.
챗GPT의 속도도 중요하다. 특히 유료화의 진전 속도가 승부처가 될 듯하다. 챗GPT는 일단 인간의 언어로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검증받은 듯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간이 언어(프로그래밍 언어 포함)와 그림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을 상당한 수준까지 해낼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픈AI는 챗GPT의 이러한 능력을 돈을 받고 팔겠다는 의도를 처음부터 명백하게 보였다.
챗GPT가 구글 검색과 다른 핵심 포인트가 바로 이것이다. 검색은 이용자에게 지식과 정보의 위치를 알려준다. 이용자가 원하는 지식과 정보를 얼마나 정확하게 알려주는 지가 핵심 경쟁력이다. 수익은 정보가 노출되기를 원하는 곳으로부터 비용을 받는 것으로 충당한다. 챗GPT는 지식과 정보의 위치를 알려주기보다 이를 나름대로 종합해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다. ‘통합 지식의 제공자’라고나 할까.
챗GPT에 돈을 지불하는 것은 결국 지식을 통합하는 것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챗GPT의 향후 진로에 관한 핵심 관전 포인트가 바로 여기다. 곧 한 개의 유료버전이 공개된다고 하지만 어쩌면 이 버전은 아주 다양해질 수 있다. 지식을 통합하는 인간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듯 통합된 지식의 쓰임새와 가치도 천차만별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상품기획이 오픈AI의 향후 최대 숙제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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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의 진로가 그렇다면 구글은 더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길로 가 함께 경쟁하는 것은 기존 수익을 갉아먹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식과 정보에 대한 사용자 경험을 독점해오던 구글이 이제 새로운 전쟁터에서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앞세워 선발 주자를 추격해야 하는 형국이 될 수 있다. 무료 버전에 이어 유료 버전까지 돌풍을 이어간다면 ‘코드 레드’ 이상이 필요할 수 있다.
관건은 결국 챗GPT의 유료 버전이다. 소비자가 기꺼이 돈을 낼만한 서비스를 어떻게 구성할 지가 핵심이다. 그것에 대한 소비자의 인정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 무료 버전에서 지적된 정보와 지식의 ‘신뢰성’ 및 ‘최신성’을 어떻게 보강했을 지가 이를 판가름할 주요 열쇠일 수 있다. 무료 버전 공개 이후 불과 두 달 만에 유료 버전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봐 이에 대한 준비도 해왔다고 봐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