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에 대한 찬사와 우려가 끊이질 않고 있다. 컴퓨터 스스로 언어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다루는 능력이 인간을 넘어섰다는 데 감탄을 금치 못 하는 것이 찬사라면, 그것으로 밥 벌어먹고 살았던 사람이 이젠 일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우려다. 왜 아니겠는가. 언어 작업의 가성비(價性比)에서 챗GPT가 인간보다 낫다면 기업이 무엇을 선택할 지는 불을 보듯 명확하다.
그 우려가 기우일 수만은 없다. 주지하듯 기업의 존재 이유는 자선이 아니다. 이익이다. 기업의 이익이 어디에서 나오는 지를 여기에서 따질 필요까지는 없겠다. 그렇고 그런 인간보다 챗GPT를 쓰는 게 더 낫다는 건 그냥 알 수 있다. ‘노동시간’을 팔아야 하는 사람은 그게 아니라고 여러 근거를 댈 수도 있겠지만, 이익 내기 위해 기업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척하면 삼천리 같은 이치일 것이다.
기계가 발전하면서 패턴화한 인간의 육체노동이 점차 기업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와 꼭 같은 방식으로 인공지능(AI)이 발전하면서 패턴화한 인간의 정신노동도 점차 기업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자선으로 바뀐다면 이런 우려를 가질 이유가 어디 있겠나.
영어 단어 패턴(pattern)은 한국어로 번역하기 참 난해하다. (정형화된) 양식, 모범, 귀감 등으로 쓰이지만 위에서 말한 ‘패턴화한 인간의 육체노동’이나 ‘패턴화한 인간의 정신노동’에서와 같이 꾸미는 말로 쓰일 때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한국어 단어를 찾기 어렵다. 챗GPT 이후 ‘패턴’이란 어휘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키워드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말을 깊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문자는 인간이 세상을 패턴화하는 방식으로 인식하기 위해 발명한 도구다. 문자는 물론 소통의 수단이기도 하고, 정보와 지식을 기록함으로써 저장하고 유통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때 중요한 것이 패턴화다. 경험으로 알게 된 세상에 대한 단편적인 인식이 정보라면 그 정보를 맥락을 따져 패턴화한 방식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 지식이다. 문명사는 그것을 잘 하기 위한 경쟁의 역사였다.
‘패턴 찾기’야 말로 인간이 더 유능한 인간이 되기 위한 지름길이었던 셈이다. 패턴 찾기는 다른 말로 하면 공부다. 인간 사회의 경쟁은 누가 더 패턴 찾기를 잘 하느냐의 문제였고 그 과정이 공부다. 인간은 왜 그런 경쟁을 했을까. 패턴 속에 ‘미래의 길’이 숨겨져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패턴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는 할 수 있는 행동이 다르고 그 행동은 미래에 다른 결과를 낳는다고 본 것이다.
챗GPT가 하는 일이 그것이다. 축적된 과거 인간의 경험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패턴을 찾아내는 일. 더 유능한 존재가 되기 위해 개별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더 소중한 많은 것들을 뒤로 미룬 채 사력을 다해 해야만 했던 바로 그 일. 타고난 재능과 거기에 들인 시간에 따라 지위와 서열을 갈라놓았던 그 일. 인간이 평생이란 시간을 바쳐야 할 그 일을 이제 챗GPT가 돈 몇 푼에 대신해준다.
이 사실이 ‘패턴 찾기’의 가치를 급격히 떨어뜨릴 수 있다는 데 주목한다. 챗GPT 이전 시대에는 ‘패턴 찾기’ 실력이 인간의 지위와 서열을 가르는 요체였으나 챗GPT 이후엔 ‘패턴 찾기’가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얻는 것과 비슷한 일이 될 수 있다. 약간의 돈은 들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문자를 아는 일이 인생을 바꾸어 놓을 때도 있었지만 문자를 모르는 이가 없을 때 문자 아는 게 덜 중요한 것처럼.
챗GPT 시대엔 그래서 패턴을 찾는 게 아니라 패턴을 벗어나는 일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게 더 중요한 덕목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위안을 갖는다. 패턴을 찾는 건 챗GPT가 돈 몇 푼에 알아서 해주기 때문에, 그렇게 얻은 결과물이 개별적으로 죽어라 노력한 것에 비해 사용 가치나 교환 가치에서 별로 뒤지지 않을 수 있기에, 패턴에서 벗어난 어떤 것의 가치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챗GPT를 통해 패턴을 알되 그 패턴에서 벗어나는 일. 그게 챗GPT가 인간한테 요구하는 길일 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그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이 지금부터 고민할 일이다. 그것도 챗GPT에 물어야 할까. 패턴으로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패턴이 되는 순간 가치는 뚝 떨어진다. 뉴스에 산 주식처럼. 엉뚱한 생각 그리고 그에 따른 용기 있는 행동. 패턴 벗기는 거기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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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챗GPT 이전에도 ‘미래의 길’이 항상 과거 패턴을 따랐던 것은 아니다. 과거 패턴을 따르다 망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새로운 승자는 늘 패턴을 벗어난 데서 나왔다. 더 큰 문제는 문맹이 사라지고 미디어가 급속히 발전한 데다 네트워크가 초고도화면서 패턴의 유효기간조차 갈수록 짧아진다는 데 있다. 모두 아는 것은 안다고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닌데 모두 아는 건만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엉뚱한 생각이란 그래서 남이 이미 아는 많은 것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모르는 걸 알려고 하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은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 그래야 죽이든 밥이든 지어낼 수 있다. 그런 자만이 챗GPT를 이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엉뚱한 생각과 행동이 없다면 그저 챗GPT가 판매한 패턴이란 상품을 구매하는 단순 소비자일 뿐이다. 어디에 쓸 줄도 모르고 상품을 사는 일과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