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패턴과 챗GPT의 패턴은 무엇이 다를까

[이균성의 溫技] 변수의 크기와 출력값의 불확실성

데스크 칼럼입력 :2023/02/06 13:41    수정: 2023/02/06 13:55

샘 알트만 오픈AI 대표가 “지금 당장 중요한 일을 챗GPT에 의존하는 것은 실수”라고 말한 것은 생각보다 의미심장하다. 챗GPT 열풍 때문에 혹시 망각할 수 있는 사실을 분명히 짚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는 “견고함과 진실성 면에서 (챗GPT를 더 진화시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덧붙였지만, 이 말 또한 시간이 지나 챗GPT가 더 진화하면 ‘완전한 존재’가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챗GPT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사려 깊은 판단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챗GPT는 딥 러닝(Deep learning)이라는 인공 신경망 기술로 훈련 받은 대형 언어 모델이다. 언어로 구성된 수많은 텍스트를 통해 패턴을 찾아내는 게 핵심이다. 인간이 수많은 경험을 통해 어떤 규칙을 찾아내듯 인공신경망도 빅데이터를 통해 패턴을 인식할 수 있는 거다.

패턴 인식은 알파고를 통해 일반인도 잘 알게 됐다. 알파고는 수많은 기보를 학습시킨 결과 이세돌 9단이 놓을 착점을 예측하고 이를 무력화할 수 있는 자신의 착점을 찾아낸다. 착수라는 행위는 같지만 착점을 찾는 과정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 알파고는 철저하게 과거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았다면 이세돌 9단은 정의할 수 없는 그 무엇에서 묘수(妙手)을 찾았을 수 있다.

이세돌 9단도 물론 기보를 통해 실력을 높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세돌 9단은 끊임없이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수를 찾아내고자 했을 것이다. 바둑의 창의성을 높이 사왔던 까닭은 그러려고 하는 자세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과는 이세돌 9단의 패배였다. 과거에 대한 물샐 틈 없는 학습이 미래에 대한 탐구를 이겨버린 것이다. 이 9단의 패배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런 미래 창의성의 허망함 탓이다.

인공지능이 엄청난 컴퓨팅 파워를 통해 과거를 모조리 섭렵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경험의 제한이라는 근본적인 한계 탓으로 결국 컴퓨터를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바둑에서는 이미 어떤 고수도 알파고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챗GPT는 이제 바둑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인간사 대부분의 일에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인간의 지성이 이를 능가할 길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왜 샘 알트만은 “지금 당장 중요한 일을 챗GPT에 의존하는 것은 실수”라고 말했을까. 그리고 샘 알트만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여기서 패턴은 패턴일  뿐이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바둑은 인간이 만든 놀이 중에 가장 복잡한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경우의 수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복잡할 뿐 무한하지 않다. 무한하지 않으면 파악이 가능해진다.

알파고가 모든 바둑 고수를 제압할 수 있는 것은 바둑이 인간에게는 경우의 수가 무한한 것처럼 보일 만큼 복잡하지만 알파고한텐 유한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럴 수 없지만 알파고는 모든 패턴을 다 인식할 수도 있는 셈이다. 바둑은 물론이고 인간이 만든 모든 게임이 그렇다. 복잡하기는 하지만 경우의 수가 결국 유한할 경우 인간은 인공지능을 결코 이길 수 없다. 패턴 인식 용량의 차이 탓이다.

문제는 인간사다. 인간사에도 패턴 인식은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패턴이 미래에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미래가 꼭 패턴을 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대표적인 게 투자시장이다. 패턴은 과거의 데이터를 통해 찾아낸 통계적 규칙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투자시장에서 패턴이 믿을 만한 것이라면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제한 없이 수익을 남겨야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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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그렇지 않다. 패턴은 그냥 패턴이고 예측도 그냥 예측일 뿐이다. 미래를 결정할 변수는 검토가 불가능할 만큼 무한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 사실은 챗GPT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챗GPT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주가 변동성을 예측해 논란에 휘말릴 일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다른 GPT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이미 있을 지도 모른다.

패턴은 단지 패턴일 뿐이다. 샘 알트만의 경계는 아마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패턴을 예언으로 뒤바꾸려는 무리를 조심하라는 뜻이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챗GPT는 과거의 패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좋은 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일에 대한 예언의 근거로 삼으려 한다면 위험할 수 있다. 중요한 일이라는 건 단지 과거의 패턴을 따라 그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