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약속, 그리고 선물

전문가 칼럼입력 :2023/02/13 16:59    수정: 2023/02/14 10:56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평범한 만남이 때로는 커다란 감동으로 밀려오기도 한다. 지난해 9월, 겸임교수로 있는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세이료대학에서 2학기 수업의 일환으로 9일간 한국 연수를 다녀왔다.

내가 지도하는 과목은 ‘정보화 사회론’이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화가 진행되면 정치·경제·사회·문화 세상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정보화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한국을 직접 보고 피부로 느끼는 프로그램이다.

대한민국은 성공적인 국가정보화를 이뤘다. 유엔이 평가하는 세계 전자정부 랭킹에서 10년간 1위 혹은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정보화 선진국이다. 한국은 과거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일본식 개혁이 진행된 탓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일본과 유사하다. 일본이 정보화를 진행하면 지금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학생들과 함께 한국 관공서를 방문해 행정서비스를 체험하고 전철·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거나 병원을 들러 의료서비스를 경험했다. 또 대학교를 들러 교육 정보화를 체험하고 일본의 국민 메신저 ‘라인’의 관계사이기도 한 네이버를 비롯해 카카오·티맥스소프트 등 한국을 대표하는 IT 기업을 방문하는 기회도 있었다.

한국 연수에 참여한 학생들 가운데 일부가 경복궁에서 한복체험을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일본 가나자와세이료대학 학생들이 한국 정보화연수에서 인천국제공항 정보화 설명을 듣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푹 빠진 일본 젊은이답게 대여 한복으로 예쁘게 단장하고 경복궁을 거닐며 산책도 했다. 동년배들의 학창 생활을 체험하고 한국 학생이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고 해 서울시립대를 방문해 한국 대학생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모두 태어나서 처음 와본 해외여행이기도 하고 요즘 일본에 거세게 부는 K-영화·K-팝 등 한류 붐을 타고 일본 젊은이들이 너무나도 방문하고 싶어 한 한국이었기에 이들에게는 단순히 정보화 사회론을 공부하기 위해서만이 아닌 불순(?)한 목적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여하튼 정말 즐겁고 소중한 추억도 많이 만들었겠지만 수업 본래 목적인 ‘정보화 사회가 되면 일본이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한국방문 첫날로 돌리자. 한국 시찰 첫날 인천국제공항에서 PCR검사를 실시하고 호텔로 이동했다. 일행 중 한 학생이 코로나 확진 판정 소식을 듣고 모두 패닉에 빠졌다. 동행한 교수들과 상의 후 당일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는 학생은 바로 호텔 방에서 격리하기로 했다. 나머지 일행도 다음날은 가급적 실내일정이 아닌 실외일정으로 진행했고 이후 나머지 일정은 정상적으로 진행했다.

꿈에도 그리던 한국까지 와서 관광은커녕 무려 9일 동안 좁디좁은 호텔 방에 격리 생활해야 하는 학생을 생각해 보니 인솔 교사로서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엄중한 현실을 무시할 수 없어 격리는 하더라도 격리 생활 동안 맛있는 한국 음식이라도 경험할 수 있도록 9일 치 아침·점심·저녁 식단을 짜서 음식을 배달해 주는 일로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

코로나 확진 판정으로 연수기간 내내 호텔에서 격리한 오카베 유리노 학생.

그럼에도 귀국하고 나서 친구들이 방문한 곳 사진이나 영상을 SNS 등에 올리며 즐겁게 대화를 나눌 때 소외되면 어떤 마음일까 하는 생각을 하니 안타까웠다.

일정을 모두 마쳐 갈 무렵 격리 생활을 보낸 학생이 너무 안타깝게 여겨져 귀국을 하루 정도 미루고 그간 동급생들이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한 장소를 전부 돌아보며 사진이라도 찍도록 해주고 싶었다. 추가로 발생하는 경비는 내가 부담하겠다고 학장에게 요청하고 허락을 받았다.

그렇게 모두를 먼저 보내고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학생과 함께 다른 학생들과 방문한 장소와 인스타바에(インスタ映え·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좋아요’를 많이 받을 만한 사진)가 될 만한 곳을 돌며 추억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학생과 둘이서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한국 중년여성이 “일본 학생인가 봅니다”며 말을 걸었다. 친절해 보이는 분이었는데, 젊은 학생이어서 더 귀엽게 보시고 말을 걸어오신 듯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학생이 BTS 팬이라는 말을 들은 여성분이 “그럼 내가 BTS 사인 받아 줄까”라고 하는 것 아닌가. 농담이라고는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연락처를 교환한 후 학생과 함께 귀국길에 올랐다.

그렇게 귀국 후 5개월이 지난 며칠 전 BTS 사인을 받아 주겠다고 말씀하신 한국 여성한테서 연락을 받았다. 시간이 많이 늦어졌지만 일본 학생 이름이 들어간 BTS 사인지를 전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BTS RM이 오카베 유리노 학생 이름을 넣은 친필 사인지.

기쁜 마음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일본 학생에게 사인지를 받았으니 전달해주겠다는 연락을 했다. 학생은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며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생면부지 남이지만 ‘한국이 좋아서 한국을 배우러 온 일본 학생’에게는 너무나도 멋진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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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학생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지 않았으면 실현되지 않았을 만남, 그리고 초면인 분의 호의 섞인 이야기도 흘려듣지 않고 진지하게 연락처를 교환한 믿음들이 믿을 수 없는 일을 만들어냈다.

한일 국가 간 관계가 험악하지만 개인과 개인, 그리고 조직과 조직 간 진심 어린 교류가 이어지다 보면 언젠가는 한일 양국 국민이 화해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싶다. 다시 한번 일본 학생을 위해 마음 써 준 한국 여성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일본계 부품기업에서 전산관련 업무를 하다가 일본 정보화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0년 이후 한국의 선진 정보기술(IT)을 일본에 소개하고 전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정보화컨설팅 비즈니스를 하면서 여러 지자체에서 정보화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겸했고 병원과 기업 등에서 IT어드바이저로,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30년간 일본인과 같은 신분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며 보고 겪고 느낀 점을 압축 정리한 ‘일본관찰 30년-한국이 일본을 이기는 18가지 이유’라는 일본 정보서적을 출간했다.